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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김민선과 오프라 윈프리

입력
2017.09.1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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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1996년 육류가공업계로부터 허위 비방 혐의로 고소당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광우병의 위험을 고발한 은퇴한 목장 주인의 발언에 “무서워서 더 이상 햄버거를 못 먹겠다”고 한 말이 문제가 됐다. 결과는 윈프리의 승소였지만 100만달러가 넘는 소송 비용 등 물질적, 심적 고통은 엄청났다. 윈프리는 소송에서 이긴 뒤 “언론 자유의 위대한 승리”라고 말했다.

▦ 10여년이 지나 한국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배우 김민선씨가 2008년 ‘광우병 사태’가 진행되는 시기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비난하는 글을 자신의 미니 홈피에 올렸다는 이유로 수입업체로부터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피소됐다. 당시 김씨는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안에 털어 넣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소송 역시 김씨의 승소로 끝났다. “개인의 사적 공간에 MBC ‘PD수첩’ 방송 소감을 썼을 뿐”이라는 게 법원의 설명이었다.

▦ 윈프리와 김씨의 소송 내용과 결과는 비슷했지만 그 후 두 사람의 진로는 판이했다. 윈프리는 아무런 제약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지금은 민주당 차기 대권 예비주자에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 밉보인 김씨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영화와 드라마 등 방송 출연이 뚝 끊겼다. 이름을 ‘김규리’로 개명까지 했지만 주홍글씨는 여전히 따라붙었다. 신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한 그는 홍상수와 김기덕 감독의 저예산 영화에 노개런티로 출연하며 열정을 보였다. 배우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김씨는 아프리카 오지 봉사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 ‘MB국정원 블랙리스트’의 피해자 배우 문성근씨는 18일 검찰에 출두하면서 김씨를 언급했다. 문씨는 “김민선 배우는 한창 자신을 키워갈 30대 초반에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으니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보내 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앞서 블랙리스트가 알려지자 SNS에 “나의 꽃다운 30대가 훌쩍 가버렸네. 10년이란 소중한 시간이”라고 탄식했다. MB에게 블랙리스트는 연못에 조약돌 몇 개 던진 것이겠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삶의 기반이 파괴된 잔혹한 범죄행위다. 실상을 낱낱이 파헤쳐 책임을 묻고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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