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김영하 "블랙유머 구사할 수 없는 시대였다"

알림

김영하 "블랙유머 구사할 수 없는 시대였다"

입력
2017.05.29 04:40
0 0
올해로 등단 22년째를 맞은 김영하는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며 “독자가 단순히 종이책을 읽는다는 걸 떠나 ‘문학적 경험’을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올해로 등단 22년째를 맞은 김영하는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며 “독자가 단순히 종이책을 읽는다는 걸 떠나 ‘문학적 경험’을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잘못 예매한 영화가 예상치 못한 정서를 줄 때 기분이라고 할까. 김영하(49)의 새 소설집 ‘오직 두 사람’(문학동네)을 덮고 나면 찜찜한 끝에 공허함이 남는다. 김영하표 소설의 트레이드마크인 ‘이해타산적인 인물들의 얍삽한 선택’은 여전하지만, 그로 인해 꼬인 사건은 이전보다 한층 더 우울하고 희망이 없다. 영화에 빗대자면 블랙코미디 전문 감독이 만든 미스터리와 스릴러, 드라마로 구성된 옴니버스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25일 서울 연희동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책에 실린 단편을 일일이 자식처럼 소개하며 종종 “힘들었다”고 말했다. ‘오직 두 사람’은 장편 ‘살인자의 기억법’(2013) 이후 4년 만에 낸 소설이다.

하룻밤에 단편 하나를 썼던 ‘문단에서 알아주는 속필’이 소설쓰기 힘들어진 데는 주변의 영향이 컸다. 2011년 ‘옥수수와 나’를 쓸 때 미국 뉴욕에 살았던 작가는 5년 전 부산으로, 2년 전 서울 연희동으로 거주지를 바꿨다. 그 사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집 근처 언덕이 고급빌라단지로 재개발되며 집마당이 파헤쳐졌다. 작가는 “쉴 새 없이 공무원 만나고 원고료도 안 나오는 민원 서식 쓰며” 단시간에 현실과의 접점이 넓어졌다. 애묘인인 그는 ‘동물원법’을 대표 발의한 장하나 전 의원의 후원회장으로 지난해 총선 때 선거운동을 했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는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소설집에는 이런 변화가 담겼다. 가장 먼저 쓰인 ‘옥수수와 나’가 “더 뺄 것도 넣을 것도 없이” 작가의 특장을 잘 보여준다면, 그 이후 차례로 쓰인 ‘슈트’와 ‘최은지와 박인수’로 갈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암울해진다. 유괴된 지 10여년 만에 다시 만나지만, 더 불행해진 부모와 아이를 그린 ‘아이를 찾습니다’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반년 후 완성한 작품이다. 갇힌 방을 탈출하면 또 다른 방이 펼쳐지는, 극한의 절망을 보여주는 ‘신의 장난’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쓰였다.

그림 37년만에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을 낸 김영하는 "내 소설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그림 37년만에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을 낸 김영하는 "내 소설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연희동으로 이사하며 작가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2000년 총선에서 ‘투표하지 않을 권리’를 칼럼으로 썼는데, 작년 총선에서는 장하나 후원회장도 했다.

“이전에 아파트에 살았는데, 거기 살면 사회를 모른다. 문제 있으면 관리사무소에 연락하면 다 해결되는데 여기(개인주택)는 문제 생기면 구청, 다산 콜센터에 연락해야 된다. 지방자지단체, 공적 공간과 직접 만나면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됐다. 그 전까지 내가 세상을 좀 안다고 생각했다.”

-작년 총선 때 적극적으로 사회적 발언을 하다가 최순실 사태 이후에는 오히려 조용했다(지난해 작가 집 앞 궁동산 개나리언덕 재개발이 중단됐다.)

“탄핵이 가능했던 게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했기 때문 아닌가. 총선이 굉장히 중요한 분수령이 됐다고 생각한다. 최순실 사태 후 국민행동 1,2차 촛불시위에 바로 나갔다. 느낌이 좋더라. 나는 87년 6월 항쟁 때 대학교 2학년이었다. 역사가 변할 때 느낌이 있다. (재개발 주민 반대)싸움에 뛰어들고 판이 커지면서 두 부분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언론하고 의회 제도다. 우리사회에서 가장 욕먹는 두 분류인데 최순실 국정 농단 보도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면을 봤다. 사회부 기자들은 문화부 기자랑 눈빛이 다르다. 우리가 ‘입수한’ 공문을 보여주면 그 언어를 쭉 훑으면서 금방 스토리를 이해하고 허점 파악하고, 집요하게 취재하더라.”

-조짐이 좋아서, 최순실 사태 때는 굳이 앞서 나서지 않았다?

“3차 촛불시위 때 신문사에 르포를 썼다. 이미 그 국면에서는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잘하고 있었으니까. 현장에서 사람들 구경하고 기록하고, 이런 게 작가 아닌가.”

-소설집으로는 7년만이다.

“장편이 (현실과) 다른 세계를 사는 거라면, 단편은 내가 이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준다. 초반에 유머도 있고 발랄하다가 점점 어두워지더니 2014년 작부터는 출구 없는 무간지옥 같은 얘기가 계속되더라. 뭔가를 잃어버리고 고통받는 사람들, 되찾았음에도 고통을 끝내지 못한 사람들의 얘기가 많다. 우리사회가 그런 거 같지 않나.”

-이렇게 빨리 읽히는데 찜찜한 소설집은 처음이었다. 힘들 게 쓴 작품 있나?

“‘아이를 찾습니다’ 쓸 때 너무 힘들었다. 2010년 장편으로 시작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 뒀다. 내 서랍에 쓰다만 장편이 정말 많다. 서두만 엄청나다. 글이 안 풀리면 늘 그 서두를 살피는데, 세월호 참사 후에 이 작품이 생각나 단편으로 만든 거다. ‘오직 두 사람’도 장편으로 쓰려다 단편으로 발표한 거고, ‘신의 장난’도 굉장히 오래 걸린 작품이다.”

-세월호 이후 단편(‘우리 두 사람’ ‘아이를 찾습니다’ ‘신의 장난’)은 이전 김영하표 소설과 뚜렷하게 다르다.

“(세월호 희생자) 예은이 아빠 유경근씨가 ‘아이가 돌아오면 다 될 줄 알았다. 이렇게 긴 싸움을 할 줄 몰랐다’고 했는데, 나는 이게 세월호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겪는 전반적인 정서라고 생각한다. 고도성장 시대가 끝나고 기대 감소시대가 되면서 뭐 하나가 해결돼도 끝나는 게 없다. 대학 간다고, 취업한다고, 결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를 낳으면 신경증의 세계에 들어가고. 그 모든 게 공포다. 사회전체가 그런 정서에 갇힌 것 같다.”

-‘아이를 찾습니다’, ‘신의 장난’처럼 단편 발표 시기가 우리사회 큰 국면과 맞닿아있다.

“마음 깊은 곳에 직감이 있지 않겠나. 이 얘기를 써라는. 영향을 받았을 텐데 직접 암시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충분한 시간적 거리가 확보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더라. 평론도 나와있다. ‘세월호 문학’이라고. 작품은 뭐 이미 나가면 내 것이 아니니까. 해석하기 나름 아닌가.”

-‘신의 장난’은 대단히 연극적인 작품같다. 읽는 내내 무대가 머릿속에 그려지더라.

“작년에 ‘빛의 제국’이 연극으로 만들어졌을 때 내가 (문화예술계)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걸 알았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 뉴욕타임스 아시아판에 쓴 칼럼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이라고 썼는데 이게 문제가 된 모양이다. 독재자 아들도 아니고 딸이라고, 팩트도 맞게 썼는데(웃음). 연극 제작한 국립극단 관계자가 청와대에 3번 불려갔다고 한다. 아무튼 이 작업 후에 아예 희곡을 하나 썼다. 궁중에서 사람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이는 샤머니즘도 등장하는 잔혹극이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최순실 사태 났을 때 썼다. 시대가 거대한 그물 같아서 작품 제목이 ‘그물’인데, 변정주 연출, 극단 돌곶이가 연극으로 만들 예정이다. ‘신의 장난’은 ‘그물’ 쓰고 바로 뒤에 쓴 소설이라 연극적일 수밖에 없다.”

-표제작 ‘우리 두 사람’은 독특한 부녀관계인데, 딸이 아버지를 싫어하면서 삶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으로 삼는다. ‘아이를 찾습니다’에서 윤석이 미쳐버린 아내 미라를 대할 때 태도도 이와 닮았다.

“한국의 가족 관계가 그렇지 않나. 부모는 아이한테 ‘너 때문에 이 고생한다’고 하고, 아이는 부모 때문에 공부하고. 모두가 이타적인 행위를 했는데, 세월 지나면 모두가 불행한 관계다. 서로 진심으로 원한 것도 아닌데 남을 위해 살면서 가족이 유지된다. ‘우리 두 사람’은 내 주변 얘기다. 20년 전 다닌 연구소에서 똑똑한 미모의 30대 선생님이 주말마다 아버지랑 영화보고 등산하는 걸 보면서 언젠가 소설에 써야지 했는데 20년 만에 쓰게 됐다. 어떤 작가는 멋진 문장, 어떤 작가는 사건인데 내 소설은 인물이지 않나.”

-‘오직 두 사람’은 탄핵 후에 쓴 작품인데, 그래도 어둡더라.

“블랙유머를 쓰려면 사회가 굉장히 잘 돌아가야 된다.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만하고 바르게 살면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희곡의 광대처럼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은 말도 하고. 세월호 이후 대부분의 작가들이 (블랙유머를) 포기했다. 어디 밝고 명랑한 작품이 있나? 여유가 사라졌다. 이제 워낙 선량한 대통령이 됐으니 매일 올바른 말만 10년쯤 듣고 살면 저 같은 사람이 또 쓸 수 있을 거다.”

-올해로 한국 나이 쉰이다. 불혹까지 지나고 나니, 달라진 점 있나?

“글쎄, 아직 나를 ‘젊은 작가’로 보는 분들이 있다. 한국 문학계가 ‘젊은 트로트 가수’하면 설운도 생각나는 것처럼 굳어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작가 등단 때와 비교하면 국내 순문학 독자는 확실히 많이 줄었다.

“확실히 위축됐는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으니까. 번역되는 해외문학도 많고 번역의 질도 높아졌고 선택지가 넓어졌다. 독자가 단순히 종이책을 읽는다는 걸 떠나 문학적 경험을 하고자 하는 걸 원한다. 잘 만든 미드(미국드라마)를 볼 때도 (문학적 경험이) 나온다. ‘나르코스’ 같은 드라마를 보면 중남미 소설을 읽는 것 같다. 여러 콘텐츠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영향력이 준 거다.”

-변화에 상당히 적응을 빨리 하는 작가다. 그래서 계획은?

“예를 들어 팟캐스트 하고 있지 않나. 작가가 예전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독자에게 문학적 경험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책을 쓰고, 동시에 책을 들려주기도 하고. 강연, 낭독회에서 독자에게 문학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독서 에세이를 쓰고 이게 다 문학적 경험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희곡도 그런 일의 연장선이다.”

-구상하는 작품은 있나?

“서랍에 많다, 서랍에. 실패를 뚫고 부활할 소설들. 컴퓨터에 ‘절대 쓰지 않을 이야기’란 폴더가 있다. 그럼 자유롭게 아이디어가 나온다. 재미있겠다 싶으면 서두 쓰고 막히면 또 넣어놓는다. (장편)‘살인자의 기억법’도 거기서 나왔다. 모든 이야기가 적절한 때를 만나야 한다. 작가가 성숙하거나, 맞는 문체가 생기거나, 맞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거나.”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소설가 김영하. 문학동네 제공
소설가 김영하. 문학동네 제공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