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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하 기자

등록 : 2018.01.23 04:40

아동청소년극 맞아? 높아진 수준에 어른들이 더 감동

등록 : 2018.01.23 04:40

세대를 아우르는 소재를

높은 완성도로 표현해내

최근 국립극단 청소년극

관객 3분의 1이 성인

아동청소년극 한자리 모은

아시테지 겨울축제도 성황

국립극단의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청소년극이라는 소개에도 불구하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청소년들에게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선사한다.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의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청소년 연극이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등장하지 않아 정작 청소년들이 보고 놀랐다는 이 연극의 원작은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다.

못생긴 코 때문에 사랑에 실패한 남자 시라노의 안타까운 연정을 담고 있는 고전이다. 국립극단은 이를 변주해 사랑에 주저하지 않는 여인 록산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적 주제에 청소년들도 충분히 공감할 만했다. 2015년 초연 후 지난해 재공연에서 96.6%의 객석점유율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10월 공연된 국립극단의 또 다른 청소년극 ‘좋아하고 있어’는 문제적 작품이다.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거나 대학 입시에 부담을 갖는 등장인물의 모습이 우리 현실 속 여고생을 빼 닮았다. 여고생들 간의 사랑을 그렸다는 점이 이 작품을 논쟁적으로 만들었다. 고등학교 밴드 동아리 선후배인 소희와 혜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이 작품 역시 청소년극이라는 제한적 수식이 달려 있는데도 87.6%의 객석점유율을 보였다.

아동청소년 연극이 아이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흥행에서도 별 볼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지독한 편견이다. 어른들이 보러 갔다가 더 감동 받고 나온다는 공연 후기들이 줄을 잇는다. 국내 아동청소년극은 세대를 아우르는 주제를 높은 완성도로 표현해내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국립극단의 청소년극 '좋아하고 있어'는 여고생들 간의 사랑을 그린다. 청소년들의 소외와 핍박의 문제를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국립극단 제공

어른들도 고민하게 하는 청소년극

한국에서 청소년기는 대학 입시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 때다. 청소년극 시장이 크지 않은 이유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방황하거나 반항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그리는 게 청소년극 대부분의 모습이었다. 청소년극보다는 고정 수요가 있는 아동극 역시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과 같이 흥미거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을 거치며 연극의 소재와 공연의 완성도는 물론 미학적 측면에서도 아동청소년극의 수준과 개념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1997년 초연한 뮤지컬 ‘모스키토’는 유권자가 중학생으로 확대된다는 설정으로 정치권의 위선 등 현실의 문제를 다뤘다. 작품 제목 ‘모스키토’는 청소년들이 직접 창당한 정당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비슷한 시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아동청소년연극 과정이 개설됐다. 이 과정 졸업생들이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아동청소년극의 외연이 점차 넓어졌다.

요즘 청소년극은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더 이상 어른들이 교육해야 하는 대상으로 청소년을 다루지 않는다. 청소년의 주체성에 초점을 맞춘다.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어린이 청소년극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마약문제와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청소년극에서 가장 실험적인 형식을 시도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이러한 고민은 2011년 세워진 국립극단의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앞장서고 있다. 청소년의 연극적 의미와 역할을 고민하며 총 14편의 청소년극을 제작했다. 어른들에게 생각거리를 안기는 청소년극은 성인들도 찾아보는 연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좋아하고 있어’와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는 대학생과 청소년의 관람비율이 각각 62.2%, 73.5%이다. 관객 3분의 1이 성인인 셈이다. 김성제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장은 지난해 열린 간담회에서 “청소년의 목소리와 삶이 맞닿아 있는 것이 청소년극이지 작품의 양식이나 질적으로 성인극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청소년들의 생활과 학교 친구 우정을 넘어선 새로운 주제와 소재를 찾아가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청소년극”이라고도 주장했다.

“유치한 아동극은 가라”

청소년극보다 어린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는 아동극은 여전히 교육적 관점이 중요하다. 고정 수요가 있어 민간 극단들은 아동극과 가족극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작품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아동극이라고 해서 유치하거나 대충 만들어도 된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이윤택 연출가가 이끄는 연희단거리패는 안데르센의 작품과 우리나라 전래동화 등을 바탕으로 2014년부터 가족극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있다. 이 연출가는 “연극이 교과에 포함되는 등 연극이 담당해야 하는 교육적 기능을 생각하며 작품을 탐색하고 개발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극단 하땅세 역시 아동극 제작에 적극적이다. 윤시중 하땅세 대표는 “세계적인 연출가 피터 브룩은 새로운 공연을 만들면 아이들만 모아놓고 시연을 했다”며 “아이들이야말로 선입견 없이 가장 순수하게 반응하는 관객”이라고 말했다.

제14회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 무대에 오르는 극단 하땅세의 아동극 '거인이야기'.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 제공

아동청소년극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도 성황이다.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가 14년째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열린다. 연희단거리패의 ‘토끼와 자라’, 하땅세의 ‘거인이야기’ 등 12편이 무대를 장식한다.

아동청소년극은 어린이들이 한 인간으로서 성장해 가는 데 필수적인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는 중요한 장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유미 연극평론가는 “아동청소년극은 교육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교육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며 “문화예술적 측면에서도 중요성을 인식하고 유수의 아동청소년극 개발을 위한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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