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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블랙리스트, 우리는 어디에 있었나

입력
2017.09.2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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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국정원의 범죄 낱낱이 밝혀야

블랙리스트 흑역사 되풀이 막으려면

눈감고 귀 막은 언론인들 자성 절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19일 피해자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방송인 김미화씨. 그는 “이 같은 일을 단죄하지 않고 일어난 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고소 방침을 밝혔다. 신상순 선임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19일 피해자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방송인 김미화씨. 그는 “이 같은 일을 단죄하지 않고 일어난 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고소 방침을 밝혔다. 신상순 선임기자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원태연 시인이 1993년 낸 시집 제목이다. 한 시대를 매혹했던 이 달달한 시어를 엉뚱한 데 쓴 것에 미리 미안함을 전한다.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좁게 그걸 뺀 나머지는 다 적이야’. 이미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문화예술계 인사만 수천 명에 달한 ‘검은 명단’의 실체를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어찌 보면 어설프고 황당한 이 공작이 착착 이행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뭘까. 이명박 전 정권의 공(?)을 첫손에 꼽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의 탄생 자체를 아직도 전모가 다 드러나지 않은 국가정보원 댓글부대의 활약과 떼어 생각하기 어렵지만, 특히 공영방송의 무력화는 MB정권이 물려준 가장 유용하고 추악한 유산이었다. 공정보도를 요구하는 언론인들,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냈던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가혹한 배제와 탄압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원 안에 들어온 한줌을 뺀 나머지 국민을 모두 적대시하는 만용을 저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오래 입길에 오른 ‘이명박근혜’란 말이 괜한 명명이 아니다.

MB정권 당시 방송 장악과 문화계 탄압의 배후가 드러났다. 법원은 7월 박근혜 정권 블랙리스트 관련자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지원 배제 행위가 은밀하고 집요한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공개된 문건들과 증언들을 보면 MB정권 국정원이 계획하고 실행한 배제와 탄압은 은밀하고 집요함을 넘어 노골적이고 지독했다.

2011년 MBC의 ‘소셜테이너 출연금지’ 조치의 첫 희생자는 배우 김여진씨였다. 나는 그의 용기보다 ‘밥 한끼 먹자’ 같은 행사를 꾸려내는 발랄하고 유연한 태도에 더 끌렸다. 당시 쓴 ‘말할 자유를 허하라!’란 칼럼의 한 대목. “이 땅에서 내가 가진 무엇인가를 잃을 각오를 하지 않고도 정치적 견해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김여진의 존재는, 이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뛰어 ‘비장함을 덜어낸 즐거운 투쟁’이 가능한 사회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아닐까.” 후일담을 돌이키면, 내가 틀렸다. 순진했다. 김씨는 19일 검찰에 출석해 피해자 조사를 받은 뒤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실제 국정원 문건을 보니 다시 한번 마음 한 켠이 무너졌습니다. 그래도 설마 직접 그랬겠나 하는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그들이, 직접, 그랬더군요.” 마지막 문장이 가슴에 박힌다.

이제 칼끝은 MB로 향했다. 국가안보에는 한없이 무능했고 정권의 흥신소 노릇에만 골몰했던 국정원의 흑역사를 뿌리까지 파헤쳐야 한다.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한 ‘공범자들’은 얼른 물러나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블랙리스트가 노린 건 명단에 오른 이들만이 아니다. 불안과 공포를 부추겨 알아서 입 닫고 몸조심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공범자들’에서 보듯 숱한 이들이 싸웠고 다쳤다. 바로 그 곁에서 더 많은 이들이 눈 감고 귀 막고 고개 돌리지 않았다면, 이 추악한 범죄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 없었을 터이다. 낡은 유물이 된 듯한 직업 윤리를 꺼내 먼지를 털어내야 할 때다.

미국의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폭정-20세기의 스무 가지 교훈’에 이렇게 썼다. “일개 개인과 정부가 윤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직업은 이 일을 가능하게 한다. (중략) 지금은 예외적인 상황이라는 말을 듣는 바로 그 순간, 직업 윤리는 우리에게 따라야 할 지침을 제공한다. 그러면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직업 종사자들이 그들에게 요구되는 윤리와 순간의 감정을 혼동할 경우, 그들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들을 말과 행동으로 옮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나치에 협력한 의사, 공무원, 법조인, 기업인 등을 예로 들었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언론인들에게 더 절실한 말이다.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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