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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포기하지 않는 벌새들, 녹색당

입력
2018.03.01 16:4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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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에 큰 불이 났습니다. 모든 동물이 달아나는데 벌새 한 마리가 불을 끄겠다고 물을 머금고 분주히 날갯짓을 합니다. 코끼리가 한심하다는 듯이 그 정도로 불을 끌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 벌새가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은 일을 할 뿐이야. 벌새 같은 사람들이 모여 한국사회를 바꿔나가려고 합니다.”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한 녹색당 신지예의 이야기다.

2012년 창당한 녹색당은 현재 활동하는 정당 중 동일당명을 가장 오래 사용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탈핵과 에너지전환, 농업과 생태적 지속가능성, 차별금지법 제정, 기본소득 도입, 청와대와 국정원을 상대로 한 정보공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의원이 한 명도 없지만 ‘벌새’같은 당원들의 정치는 꾸준하다. 지방선거에서 27세 신지예가 서울시장에, 33세의 고은영이 제주도지사에 출마한다. 이제껏 가져보지 못한 청년후보들이다.

정치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골고루 나누는 일이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누구의 처지와 이익을 대변하는가가 중요하다. 국토 어디를 어떻게 활용하고 보전할지 계획하는 일부터 시민들이 살고, 먹고, 일하고, 휴식하는 삶과 관련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역할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전국토가 난개발이고, 빈부격차는 극심하며,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청년들이 설 곳이 없다. 삶은 날로 팍팍해지는데, 이를 돌파해야 할 정치가 시민의 삶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 쏠림 현상도 심하다. 국회 300석을 50대 전문직 남성이 주도한다.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법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정작 먹고 살기 바쁜 시민들과 일, 가정,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들은 정치에 참여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거대정당의 공천이 당선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시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려면 기탁금을 5천만 원을 내야하고, 방송토론에도 참가자격 제한이 있다.

고액기탁금과 돈이 많이 드는 선거제도는 가난한 후보들의 출마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이런 현실에 맞서 경기녹색당은 6ㆍ13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녹색당 후보 전원에게 선거운동기간 4개월간 4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원하기로 했다. 선거재정 모금에서부터 자원봉사, 홍보 등 모든 선거준비는 후보자 개인이 아니라 당원이 함께 뛴다는 것이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출마를 주저하는 청년들이 후보 기본소득으로 인해 보다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고액 기탁금은 시민모금이라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13일까지 ‘만원입니다’ 캠페인을 벌였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예비기탁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원모금을 시작했고, 1002명이 모은 2100만원으로 두 후보가 등록했다. 넘어야 할 산은 높지만 현실에서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골고루 잘 나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헌논의에 선거제도의 비례성 원칙을 명시하고, 연령, 성별, 직업, 지역의 장벽을 없애는 선거제도 개혁이 시급하다. 그러나 그 임무를 맡은 국회는 마땅해 해야 할 일은 안하고 있다. 2월 임시국회에서 6ㆍ13 지방선거 선거구획정이 통과되지 못했다. 국회 헌정특위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2일, 오늘부터 예비후보 등록일이지만 선거구 획정이 안 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 기득권 지키기에 여념 없는 정치인들 빼고, 시민들이 직접 정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한 모금을 물을 머금고 불길로 뛰어드는 벌새처럼, 포기하지 않은 꾸준한 발걸음이 정치를 바꿔나갈 것이다. 다가오는 봄, 미세먼지와 꽁꽁 언 땅을 뚫고 뾰족이 고개를 내미는 초록 잎 새싹을 보고 싶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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