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윤주 기자

등록 : 2017.09.14 13:28
수정 : 2017.09.14 13:59

[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날개가 있다면

한병호 ‘새가 되고 싶어’

등록 : 2017.09.14 13:28
수정 : 2017.09.14 13:59

고층건물 페인트공이 중얼거린다. ‘날개가 있다면 편할 텐데.’ 새가 된 주인공의 낯설고 놀라운 체험이 펼쳐진다. 시공주니어 제공

새가 되고 싶어

한병호 글, 그림

시공주니어 발행ㆍ34쪽ㆍ9,500원

자율주행차가 등장한 시대에 살면서도 명절 귀성길 걱정은 변함이 없다. 일상은 대체로 문명 저편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황금연휴 열흘의 이틀을 꼬박 할머니와 초등 2학년 아이까지 3대 5인이 함께 자동차 안에서 보내야 한다는 이에게 ‘날개가 있다면 편할 텐데’로 시작하는 그림책을 권해주었다. 이 변신담 그림책은 세련된 이미지와 함께 갇힌 듯 답답한 공간은 물론 현실의 한계를 훌쩍 벗어나는 데에도 요긴한 스위치가 될 수 있다.

이런 저런 모습의 새들 사이에 서있는 반인반조(半人半鳥) 그림 위의 표제 ‘새가 되고 싶어’는 주인공의 독백이다. ‘날자, 날자, 날아보자꾸나’라는 ‘날개’(이상) 주인공의 것과는 결이 좀 다른 갈망이라는 것을 첫 장면이 말해 준다. 외줄에 매달려 아찔하게 높은 고층 건물 외벽을 칠하고 있는 페인트공, 그가 중얼거리는 ‘날개가 있다면 편할 텐데’라는 독백에는 근육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이다.

고층건물 페인트공은 아티스트일지도 모른다. 가혹하고도 고단한 노동을 마치고도 책상 앞에 앉아 변신의 꿈으로 이어진 갈망을 구현하려 애쓴다. 애쓰고 애쓴 끝에 외친다. ‘어, 정말 새가 되었네!’ 이제 새가 된 주인공의 낯설고 놀라운 체험이 펼쳐진다. 아주 높은 곳에도 두려움 없이 올라갈 수 있고, 바다 위를 날아볼 수도 있고, 멀리멀리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도 있다. 물론 뭇 존재는 저마다의 고난을 겪는 법이니, 새에게도 궂은 날씨며 천적을 피해야 하는 새로운 두려움과 아픔이 따른다.

‘새가 되고 싶어’는 원래 글 없는 그림책으로 만들어졌다. 한국화를 전공하고 설치미술 작업에도 재주가 많은 화가 한병호는 우연히 어린이책 세미나에 들렀다가 그림책에 매혹된 이후 열정적인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 그림책은 한국 최초로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Biennial of Illustration Bratislava) 황금사과상을 수상했다. 유네스코와 IBBY국제아동도서협의회의 후원으로 1967년부터 홀수 해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전 세계 90개국 그림책 작가들이 주목한다. 그림책의 상업적 목표보다는 예술적 가치와 새로운 시도가 평가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랑프리 하나, 황금 사과상 다섯, 훈장 다섯, 열한 가지 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여한다. 황금사과상은 2위 격이지만, 정말 사과 모양의 매력적인 모뉴망이 주어지기 때문에 작가들이 열렬히 선망한다.

2005년 한병호 작가의 수상으로부터 ‘어느 날’(유주연),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노인경)에 이어 올해 김지민 작가의 ‘하이드와 나’까지, 한국은 ‘황금사과’ 네 개를 갖고 있다. 2011년 그랑프리를 받은 ‘달려, 토토’(조은영), 어린이심사위원상을 받은 ‘영이의 비닐 우산’(김재홍), ‘양철곰’(이기훈)과 훈장을 받은 ‘플라스틱섬’(이명애)의 성과와 함께 한국은 세계 그림책의 중요한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저 멀리 신화에서부터 등장하는 변신담은 인류가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근원적으로 지니는 심층 의식 가운데 하나이다. ‘새가 되고 싶어’의 주인공은 마음껏 하늘을 나는 새로 살면서 새로운 애환을 겪고, 다시 그를 벗어나고자 새로운 갈망을 품는다. 애환과 갈망의 삶은 계속된다는 이 그림책의 열린 결말은 해피엔딩 이상의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매력적인 그림책을 준비하면, 자동차에 갇히는 시간이 두렵지 않다.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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