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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 초등학교서 인질극… 뻥 뚫린 학교 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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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 초등학교서 인질극… 뻥 뚫린 학교 보안

입력
2018.04.02 18:1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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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성 “졸업생” 한 마디에

학교측 기본적인 신원확인조차 안해

흉기 들고 들어가 여학생 인질로

학생ㆍ교사 등 공포 휩싸여

“군 복무중 뇌전증, 조현병 발병

보훈처 보상 안해줘 범행” 진술

2일 오후 양모씨가 초등학생을 인질로 잡은 상태로 경찰과 대치하다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 서울 방배초등학교에서 한 어린이가 보호자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후 양모씨가 초등학생을 인질로 잡은 상태로 경찰과 대치하다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 서울 방배초등학교에서 한 어린이가 보호자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대 남성이 대낮에 서울 서초구 방배초등학교로 흉기를 든 채 침입해 여학생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였다. 학교는 졸업생이라는 말만 믿고 기본적인 신원확인 절차 없이 남성을 교정으로 들여보냈다. 당시 학교 안에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이 1,000명 이상 있던 점을 감안하면, 자칫 아찔한 참극으로도 이어질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2일 오전 11시47분쯤 이 학교 교무실에 들어와 4학년 A(10)양에게 흉기를 들이밀며 인질극을 벌인 양모(25)씨를 인질강요 및 특수건조물 침입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양씨는 당시 학교 관계자와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기자를 불러달라” 말한 것 외에 별다른 요구 사항을 밝히지 않았다. 인질극이 벌어지자 학교는 곧바로 교내 방송을 통해 교사들에게 학생들을 모두 각자 교실 안으로 들여보낸 뒤 문을 잠그라고 알리며, 상황 통제에 나섰다.

인질극은 1시간 정도 지난 낮 12시40분에 끝났다. 경찰이 양씨와 대화하던 중에 그가 요구한 물을 건네줬고, 이어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아이도 좀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빵과 우유를 건네주는 과정에 양씨가 오른손에 쥔 흉기를 책상에 내려놓는 틈을 보이자 흉기를 쳐낸 뒤 몸싸움 끝에 양씨를 제압했다. 인질극 도중 뇌전증(간질) 증세를 보인 양씨는 검거 직후 서울성모병원으로 후송했다. 그는 뇌전증 장애4급으로 확인됐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진 A양은 다행히 외상 없이 양호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치료를 받고 있으며 조만간 퇴원할 예정이다.

양씨는 경찰 조사에서 “군 복무 중 가혹행위로 뇌전증과 조현병이 발병했는데 국가보훈처에서 이에 대해 어떠한 보상도 해주지 않아 마지막 수단으로 인질극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또 다른 동기가 있는지 추가 조사를 벌이는 한편, 곧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방배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이다 체포된 용의자가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방배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이다 체포된 용의자가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양씨는 학교의 부실한 외부인 관리 탓에 아무런 제지 없이 학교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전 11시30분쯤 “졸업생인데 행정실에서 졸업증명서를 받겠다”고 한 뒤 정문을 아무렇지 않게 통과했다. 학교는 그가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신분증 확인 등 졸업생이 맞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2013년 1학기부터 시행된 교육부의 ‘학생보호 및 학교안전 표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학교보안관은 ‘서류발급 등 민원 업무를 위해 방문한 자’ 등에 대해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확인한 뒤 일일방문증을 발급하도록 돼 있다. 방문기록서 작성도 의무다. 신미애 교장은 “젊은 사람이 학교 졸업생이라고 말하길래 신분증을 받지도 않고 들여보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양씨는 이 학교 졸업생인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 관계자는 “평소에는 정상적으로 외부인에 대한 출입 통제를 하고 있으며, 이번만 예외적인 경우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학교가 평소에도 외부인의 신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학년 학부모인 B(39)씨는 “학교에서 학부모나 외부 강사에게 출입증을 나눠줬지만 (실제 본인 것인지) 확인은 잘 하지 않았다”라며 “외부인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환경이어서 평소 보안 문제가 걱정이었다”고 했다.

소식을 듣고 학교 앞으로 모인 학부모들은 “학부모 인터넷카페에 올린 글을 보고서야 인질극이 벌어진 줄 알았다. 글을 올린 사람도 ‘학교에 무장한 경찰들이 돌아다닌다’고 썼을 뿐, 정확한 상황은 모르고 있었다”고 학교에 항의했다. 학교 측은 “경찰이 학부모에게 알려선 안 된다고 해 그랬다”고 했지만, 경찰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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