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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자유주의는 평등에 반대하는가?

입력
2018.06.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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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자유주의는 평등보다 자유에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해왔다. 심지어 일반인들은 평등을 자유주의에 적대적인 가치로 인식하기도 한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국가가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큰 위협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아마도 평등을 강조해온 사회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이런 대중적인 인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유주의를 평등에 반대하는 이념으로 보는 견해는 인간에 대한 자유주의자들의 낙관적인 신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대체로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라는 믿음을 견지해왔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과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도덕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유로우며, 모든 인간이 다 잠재적으로나마 그런 도덕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사회에 불평등이 만연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주의가 평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자유주의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심각한 불평등들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하는가? 자유주의 사회에 불평등이 넘치는 것은 자유주의가 본래 불평등을 조장하는 이념이기 때문은 아닌가? 이런 의문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자유주의적 평등 개념의 복잡한 구조와 작용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자유주의는 인간의 인격적·도덕적 평등(‘근본적 평등’)을 지지한다. 다시 말해, 현실적인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이 인격체로서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2015년의 땅콩회항 사건부터 최근의 폭언 사건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켜온 한진재벌 갑질사건이 전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것은 인간의 인격적 평등이라는 자유주의의 근본이념을 노골적으로 부정했기 때문이다. 직장의 상사가 직책 상 부하직원을 나무랄 수도 있고 처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급이 높은 상사라고 해서 부하직원을 인격적으로 학대하거나 모독할 권한은 없다. 그런 행위는 신분제사회나 파시스트 사회에서나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다.

인격적 평등이라는 자유주의의 근본이념은 소득, 권력, 학벌, 기회, 권리와 같은 주요한 사회적 재화들의 분배와 관련해서는 “같은 것은 평등하게, 다른 것은 차등적으로 분배하라”는 일반적인 정의원칙으로 구체화된다. 이 원칙의 앞부분은 ‘평등분배원칙’으로 그리고 뒷부분은 ‘차등분배원칙’(혹은 ‘정당한 불평등 원칙’)으로 부를 수 있는데, 자유주의 국가는 이 두 가지 원칙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모든 개인들을 평등한 인격체로 대우해주게 된다.

먼저 ‘평등분배원칙’은 모든 시민들에게 동일한 헌법적 기본권을 부여하거나 동일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지불하는 경우에서처럼 개인들을 차등적으로 취급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 적용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투표권을 주지 않거나 동일한 임무를 수행함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정규직 노동자보다 적은 임금을 지불하는 것은 그들을 평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에 엄격히 금지된다.

반면에 ‘차등분배원칙’은 개인적인 차이에 따른 차등 보상이 ‘근본적 평등’을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일 때 적용된다. 대학이 신입생들을 뽑는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지원자들이 인격적으로 평등하다고해서 그들을 모두 합격시킬 수는 없다. 이런 경우에는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여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된 지원자를 선발하는 것이 모든 지원자들을 평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는 공정한 방법이 된다. 자유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불평등들은 이렇게 정당화된다.

경우에 따라 ‘차등분배원칙’은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적용되기도 한다. 장애인들에게 휠체어 접근로나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줌으로써 일반인들처럼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이처럼 자유주의 사회는 어떤 때는 ‘평등분배원칙’을 그리고 어떤 때는 ‘차등분배원칙’을 적용함으로서 ‘근본적 평등’ 이념을 구현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 자유주의는 폭넓은 재분배 국가를 지향한다. 사회적 재화의 분배에 작용하는 운의 요소를 최소화하는 것이 ‘근본적 평등’ 이념에 부합한다고 보고, 개인의 선택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닌 운의 작용으로 인해 발생한 불평등을 최소화하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불운한 아이들에게 소정의 아동수당을 지급하여 원만만 발육을 돕고, 그들이 양질의 공교육을 받아 부유한 아이들과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혁신하는 것은 그런 시도의 일환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자유주의적인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모든 개인을 평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이 우리들의 의식과 공공문화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이름에 충실한 자유주의 사회는 ‘근본적인 평등’ 이념이 사회의 전반적인 인간관계에 깊숙이 스며들고, 국가의 확고한 행위준칙이 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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