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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입춘 부근

입력
2018.02.01 12:2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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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언어 속에 사는 사람이지요. 언어를 여러 날 여러 시간, 여러 각도에서 겪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짧은 시를 써도 시인은 바쁘지요. 사람은 생각이 머무는 곳이 사는 곳이지요. 회사 책상 앞인데 엄마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엄마에 살고 있는 것이지요.

간결한 끼니예요. 끓인 밥을 퍼다 식탁에 놓았어요. 창가인데 커튼을 내렸어요. 숟가락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소리 없이 벌어지는 입, 끓인 밥은 씹을 필요도 없이 술술 넘어가죠. 적막과 고요 사이에서요. 식탁의 시간은 알 수 없어요. 다만 기러기는 북쪽으로 떠나고 땅 밑으로는 동풍이 불어오는, 24절기 중 첫 번째인, 입춘 부근이에요. 입춘은 태양의 황경이 315°에 이를 때, 올해는 2월 4일 오전 6시 28분을 가리키고 있지요.

시인은 별걸 다 걱정하는 사람이지요. 예감으로 먼저 마중 나가고, 다 돌아가고 난 뒤에도 혼자 남아 배웅하는 사람이지요. 벽 곁에 앉아 있을 때, 벽과 내가 일치하는 순간이 있지요. 침침해진 벽이 ‘나’지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순간이지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하지요. 땅에 닿아야 하는 발과 꽃을 밟을 수 있는 발 사이의 난처함, 이것이 지상의 리듬이며 현재의 감각이니까요.

장석남은 ‘신서정’으로 대표되는 시인이지요. 직접적 토로가 주를 이뤘던 서정시에 이미지를 적극 넣었지요. ‘묘사적 진술’, 즉 이미지와 말이 동시에 설득되는 세계를 구축하였지요. “흰 그릇에 그득하니 물 떠놓고/떠나온 그곳”(‘고대(古代)에서’)까지 다녀온 시인이어서, 짧지 않은 시간 시를 써왔어도, 쓰는 손끝에 힘을 빼지요. 그 물맛, “물의 빛”<‘고대(古代)에 가면’>이 장석남 시지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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