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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태영호 공사의 망명에 거는 기대

입력
2016.08.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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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귀순한 가운데 사진은 지난 2014년 11월 3일 촬영한 영상. 연합뉴스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귀순한 가운데 사진은 지난 2014년 11월 3일 촬영한 영상. 연합뉴스

한 편의 첩보 영화처럼 흥미진진했다. ‘템즈강의 바빌론’이라 불리는 영국의 정보기관 MI6에다 미국의 중앙정보국인 CIA가 등장하고 우리의 국가정보원까지 거론되는 모양새가 영화 ‘베를린’의 스케일에 비견될 만하다. 영국 언론이 추적한 바에 따르면 독일까지 가세했으니 영화와 현실이 혼동될 정도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태영호 공사 스토리가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 리학수(이경영 분)의 망명시도는 안타깝게도 비극으로 끝났지만 태 공사는 망명에 성공함으로써 해피엔딩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뿐일 것이다.

그러나 태 공사의 망명 내지 귀순 드라마는 아직 미완성이다. 탈북 과정이나 이유가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김정은 정권에 대한 염증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동경’에 덧붙여 자녀 장래 문제에 토대를 둔 ‘이민형 탈북’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영국을 비롯한 외신들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효과를 집중 부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태 공사가 통치자금 580만달러를 챙겨 나왔다(통일부는 가능성을 부인했다)는 주장을 근거로 ‘먹튀형 탈북’까지 거론하고 있으나 북한이 비슷한 논리에 기대 태 공사를 범죄자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머쓱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태 공사의 탈북이 일반 주민들의 생계형 탈북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초기 언론 보도처럼 그가 이른바 ‘백두혈통’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런던에서 10년 가량 체류한 사실이나 외교관으로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는 이력 등으로 미뤄볼 때 ‘평양의 금수저’ 출신인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가 자금을 횡령하고 국가 비밀을 팔아먹은’ 강력범으로 몰아붙이는 북한 당국의 매도는 역설적으로 태 공사의 위상만 재확인시켜 줄뿐이다. 모든 정황에서 김정은 정권은 태 공사의 탈북을 일반 주민들의 그것과 달리 체제유지의 심각한 위기요인으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나아가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태 공사의 탈북을 북한 정권의 붕괴와 연결시키려는 섣부른 기대감도 꿈틀대고 있다. 태 공사가 입국한 뒤에 쓰여진 것이 분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도 북한 붕괴를 염두에 두고 정권과 주민의 분리를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엘리트 고위층이 망명 내지 귀순을 할 때마다 통제의 고삐를 더욱 옥죄었던 북한 당국의 과거 행적을 감안하면 태 공사의 탈북과 북한 정권 붕괴를 바로 연결시키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도리어 태 공사의 탈북을 계기로 북한이 국제적 고립의 심화를 감수하면서 내부통제를 강화시킬 공산이 커 보인다. 태 공사의 탈북에 격노한 김정은이 외교관 가족들의 본국 소환령을 내렸다거나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해외 각지에 검열단을 급파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김정은 정권은 이미 ‘고난의 연대’를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지점 정도에서 희망 섞인 기대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가 극에 달하면 북한 주민들이라고 마냥 압제를 감내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도로 통제된 사회이긴 하지만 북한 일부 도시의 소요사태가 탈북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사례가 없지 않다.

실제 국정원 주변에서는 북한 정권의 붕괴를 전쟁보다는 인민들의 내부소요와 상층부의 권력투쟁이라는 급변사태에서 비롯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최고 실세로 꼽히던 장성택이 숙청된 이후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포함한 당ㆍ군ㆍ정 실세 3인방 사이에 충성경쟁이 시작됐다는 권력투쟁설이 외교가 주변에서 나돈 지도 이미 오래됐다. 부마항쟁의 혼란 속에 대통령경호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이 언쟁을 벌이다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장면을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입한다면 심한 상상과 비약이 될까?

김정곤 국제부장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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