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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갈등리포트] “과도한 규제로 생업 곤란” VS “2500만명 식수원 보호”

입력
2017.03.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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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45년간 재산권 침해”

그린벨트+상수원보호구역 겹지정

음식점 등 위락시설 일절 금지

관광객 늘자 업소들 불법 영업

당국 단속으로 주민 70% 전과자

◆정부 “수도권 식수원 오염 우려”

하수시설 설치 땐 총 호수의 10%

음식점 등 용도변경 허용했지만

“이웃 양수리와 형평성 안 맞아”

주민들 10% 제한 철폐 탄원서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도로변을 따라 죽 늘어선 현수막. 이곳 주민들은 재산권을 침해해 온 상수원 규제를 풀어달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조아름 기자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도로변을 따라 죽 늘어선 현수막. 이곳 주민들은 재산권을 침해해 온 상수원 규제를 풀어달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조아름 기자

지난 17일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에 들어선 취재차량을 가장 먼저 맞이한 건 도로변을 따라 죽 늘어선 30여개의 현수막이었다. ‘환경부는 재산권과 생존권을 적극 보상하라’ ‘팔당상수원의 규제를 풀고 현실에 맞게 규제완화 하라’.

일찍이 서거정이 동방 제일의 사찰이라 격찬한 운길산 수종사와 다산 정약용 생가가 있어 한때 연간 5만~6만명의 관광객들이 들락거린 지역이라고는 믿기 힘든 황량한 분위기 속에 현수막들만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도로 바로 옆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을 앞에 두고는 폐업 안내장이 붙은 음식점 30~40여개가 을씨년스럽게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김모(63)씨는 자소 섞인 말투로 하소연했다. "동네가 싹 죽어버렸어요. 우리 모두 망했다고요." 고개만 돌리면 북한강물이 넘실대는 이 지역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안면이 ‘불법영업’에 나선 이유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이다. 1972년 서슬 퍼런 군부정권인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부는 도시 난개발을 방지하고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목적을 내세워 조안면 일대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지정했다. 이듬해인 1973년 12월에는 경기 하남시 배알미동과 조안면 능내리를 잇는 팔당댐이 착공 7년여 만에 완공됐다. 정부는 댐 공사로 토지가 수몰된 일부 지역 주민들에게 평당 2,000~2,500원씩을 책정해 보상했다. 당시 시세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군부정권이 하는 사업에 토를 달 주민은 없었다.

댐이 생긴 뒤 조안면은 팔당 상수원보호구역으로도 함께 지정됐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수도법 등에 따라 음식점 등 위락시설 행위가 일절 금지됐다. 그렇게 팔당호는 2,5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이 됐다.

하지만 북한강변의 수려한 풍광을 업고 본격적인 관광수요가 생기자 주민들은 기존 농작물 재배시설이나 자택 등을 용도 변경해 크고 작은 음식점을 내고 영업을 시작했다. 음식점 수가 한때 150여개에 달했다. 물론 모두 ‘불법’ 영업이었다.

45년 단속과의 전쟁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이후 조안면의 45년은 단속과의 전쟁 역사다. 주민들이 수십 차례의 벌금형을 감수하면서도 영업을 계속하자 지난달 의정부지검은 민물장어구이 전문점 등 음식점과 카페 등 길게는 수십여년간 불법 운영해 온 업주 7명을 구속 기소하는 등 70여명에 달하는 주민들을 재판에 넘겼다. 박호선(61) 조안면 피해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그린벨트에 상수원보호구역까지 이중규제에 묶이면서 마을 사람 70% 이상이 전과자 신세로 전락했다”며 “50년 가까이 재산권 침해를 받으며 살아온 것도 억울한데 생계유지도 안 되게 생겼으니 마을이 망가져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이라고 규제의 필요성을 통째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들이 울분을 터뜨리는 건 인근 지역과의 형평성이다. 조안면과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1㎞도 채 떨어지지 않은 양평군 양수리의 경우 조안면과 같은 팔당호 유역에 포함되지만 각종 위락시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과거 면 소재지의 경우 지역활성화 등을 위해 반경 1㎞ 이내는 상수원보호구역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1986년이 돼서야 면 소재지로 승격한 조안면은 포함 대상이 아니었다. “지척의 양수리는 수질을 오염시켜도 되고, 조안면만 안 된다는 건 형평성이 어긋나도 너무 어긋나는 게 아니냐”는 불만들이 쏟아질 법하다. 최동교(61) 피해주민대책위 본부장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농사만 지으라는 건데 마트는 물론이고 목욕탕이며 미용실, 심지어 약국 하나 없는 면 소지재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느냐“며 “공산국가도 이럴 수는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전국적으로도 상수원보호구역 내 단속과의 전쟁은 갈수록 늘고 잇다. 환경부가 지난해 7~9월 전국의 상수원보호구역 297곳을 특별 단속한 결과 무허가 음식점 등 단속건수는 202건에 달했다. 전년도 172건에 비해 17%나 증가한 수치다.

‘재산권 침해’ VS ‘2,500만의 식수’

상수원보호구역이라 해도 합법적으로 음식점을 운영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일정 구역에 이른바 환경정비구역을 지정하면 하수를 처리하는 하수종말처리시설을 설치한 경우 총 호수의 최대 10%(방류수 수질이 기준 항목의 50% 이하일 경우)까지 음식점 용도변경(100㎡ 이하)이 가능하다. 조안면 능내리와 조안리도 2012년 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돼 현재 20여곳의 카페 및 음식점 등이 영업 중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10%라는 기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김지훈(38) 피해주민대책위 사무장은 “환경부가 1975년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이전에 이미 인허가를 받은 업소들까지 10% 기준 내에 포함시켜 당시 신규로 용도 변경한 업소가 고작 한 곳에 불과하다”며 “정말 수질이 걱정인 거라면 하수종말처리시설로 방류수 수질 기준을 만족하는 경우엔 영업을 모두 허가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피해주민대책위는 최근 환경부, 국토부 등에 이 같은 요구사항을 담은 탄원서를 제출한 상태다.

이에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상수원보호구역에 음식점 등을 제한적으로 허락한 법은 상수원 수질을 담보할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라며 “주민들의 요구대로 제한 자체를 풀어버린다면 수도권 수천만명의 식수원 수질 오염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각종 규제로 재산 상의 행위제한이 있다 보니 조안면 주민들의 불만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심정적으로 공감하지만 상수원 수질이란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글ㆍ사진=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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