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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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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입력
2018.06.19 16:36
수정
2018.06.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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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가 박만순씨 민간인학살 총정리 ‘기억전쟁’발간

16년간 2,000개 마을 발품팔아 2,578명 피해사실 밝혀

박만순씨가 19일 충북도청 기자실에서 ‘기억 전쟁’출간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전쟁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평화’를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했다. 한덕동 기자
박만순씨가 19일 충북도청 기자실에서 ‘기억 전쟁’출간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전쟁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평화’를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했다. 한덕동 기자

‘군인들은 양곡창고 안에 있던 벼가마니 위에 기관총을 설치한 뒤 마구 쏘아댔다. 수백 명의 비명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류탄까지 던졌다. “일어나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면 살려주겠다”는 말에 총에 맞지 않은 사람과 경상자가 여기저기서 일어나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장교의 한쪽 손이 올라갔고, 동시에 기관총과 소총이 다시 불을 뿜었다’

1950년 7월 11일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충북 청원군 오창 양곡창고에서 일어난 보도연맹 학살 현장에서 먼저 쓰러진 시신 속에 묻혀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임만호(작고)씨의 증언이다.

한국 전쟁 당시 충북지역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을 총 정리한 책이 출간됐다. 시민운동가 박만순(52)씨가 최근 펴낸 ‘기억 전쟁(기획출판 예당)’은 한국 전쟁 때 정당한 이유나 절차없이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아픈 사연을 담고 있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수백 구의 시신 더미 속에서 자신이 직접 바느질해준 바짓단으로 남편을 찾아낸 아내, 보도연맹원이 아닌데도 이름이 같아서 총살된 남자, 총 8발을 온몸에 맞고도 살아난 임산부 등 피맺힌 사연들을 하나 하나 기록했다. 또한 죽음의 아수라장 속에서 총살 직전에 주민들을 구한 의인의 이야기도 새롭게 조명했다.

이 책 2부에서는 충북지역 민간인 학살을 사건 유형별로 정리했다.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부역혐의자 학살, 형무소재소자 학살, 미군에 의한 학살, 북한군과 지방좌익에 의한 학살 등 유형별로 구분해 사건 경위와 피해 지역, 피해 현황을 상세히 담았다. 아울러 2,578명에 이르는 피해자 명부도 실었다.

‘기억 전쟁’은 박씨가 두 발로 뛰어 쓴 역사 기록이다.

2002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충북대책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은 그는 지난 16년 동안 충북 전역을 돌며 현장 조사를 벌였다. 영동군 고자리에서 단양군 느티마을까지 도내 2,000여개 마을을 다니며 6,000여명의 피해자와 유족들을 만났다. 청원군 강내면과 단양군 곡계굴은 10번 이상 찾기도 했다.

진실 규명을 위한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6.25때 학살이 있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면 으레 방해꾼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부 마을 어르신들이 나타나 “빨갱이들 죽은 걸 갖고 이제 와서 왜 마을을 들쑤시느냐”고 문전 박대하거나 증언 청취를 방해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박씨는 “인내심을 갖고 설득했더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노인들도 결국 마음을 열었고, 사건의 진상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충북지역 피해자를 900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제로 조사해보니 1,600여명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어서 구성돼 민간인 희생을 더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일 오후 옛 청주 연초제조창에서 출판기념회를 여는 박씨는 “여전히 많은 전쟁 피해자들이 상처를 호소하고 있다. 국가가 이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고 진정한 평화를 꿈꿀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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