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혜영 기자

박재현 기자

등록 : 2017.11.11 04:40

[인생 없는 교실] 꼭 알아야 할 것은 안 가르치는 학교

등록 : 2017.11.11 04:40

#1

입시교육에만 매몰된 교과과정

노동자권리ㆍ생활영어 등 실용지식

민주주의ㆍ인권 등 시민교육 소홀

졸업 후 사회적응에 도움 안 돼

그래픽 신동준 기자

#1. “엄마, 나는 공부하는 기계인가? 내가 이러려고 고등학교에 와있는 걸까?” 자율형사립고 학부모 C(49)씨는 최근 어깨를 축 늘어트린 딸 아이가 힘겹게 뱉은 한 마디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심정이었다.

중3 때까지 학원을 안 다녀도 집에서 복습을 열심히 하는 습관 덕에 좋은 성적을 유지하던 성실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도 대학 진학을 앞두고 경쟁이 치열한 교실 환경은 너무나 버거웠던 것이다.

“제가 봐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문제집을 많이 풀더라고요. 고민하는 아이에게 ‘네가 힘들면 학교 1년 쉬어도 된다, 천천히 하자’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막상 알아보니 질병 진단서를 받아 병가를 내지 않는 한 자퇴하는 방법밖에 없더군요. 1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내내 아이와 함께 등교하고 하교하며 다독여서 한 학기를 버텨냈죠.”

가능하다면 아이를 자유롭게 해 주고픈 생각에 틈틈이 아이와 토론과 대화를 시도하지만 대학입시 때까지 남은 과정을 생각하면 걱정뿐이다. “사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니까 학교에 보내고, 교육을 시키는 거잖아요. 세상에 나가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잘 아는 아이가 됐으면 하는 거고요. 그런데 자칫 방심하다 보면 입시와 문제풀이, ‘남들이 보는 나’만 남게 되는 것같아요. 공부를 시키더라도 갈등해결 능력, 생각하는 힘 등을 키워주는 학교가 될 순 없는 걸까요?”

#2. 고2 남학생 H(17)군은 입시 전쟁에 뛰어들 생각이 없어 대학에 가지 않기로 했다. 부모도 그 뜻을 존중해 줬다. 그런데 막상 이런 결심을 하고 보니 학교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초등 1학년부터 벌여온 등수, 성적, 별표 전쟁은 입시를 치르지 않을 H군에게는 ‘왜 이런 것만 가르치나’싶은 지식에 불과했다. 결국 그는 졸업 후 삶을 연습하기 위해 학교를 떠나 대안학교를 갔다. 대안학교에서 체험 삼아 농사도 지어보고, 세상과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에 대한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아직 진로를 정하진 못했지만 세상과 정치, 사회에 대한 관심이 늘어 혼자 2박3일간 팽목항 여행을 다녀오는 등 세상을 향한 탐구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H군의 어머니는 “학교 다니는 동안 자연,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으면 했어요. 문제만 열심히 풀다가 졸업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잖아요.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필요한 것을 배우는 게 낫겠다 싶어 대안학교에 간 거죠”라고 말했다. “한 편으로는 씁쓸했죠.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났는데 학교는 어쩜 그렇게 제가 다닐 때와 그대로인지. 입시를 최대 목표로 삼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삶으로 연결되지 않은 교육이었어요.”

삶과 괴리된 학교

과도한 입시경쟁과 사교육에 찌든 한국 중고생의 현실은 거론하기도 새삼스러울 만큼 오래된 비극이다. 그런데 내 꿈이 뭔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우겨 넣은 지식은 과연 졸업 후 사회에서 소용이나 있는 것일까. 좋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학생은 ‘알바하는 가게 점주에게 떼인 임금 받는 법’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했을 때 대처법’이 오히려 절실하게 궁금할 터. 시민으로서 어떤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노동자로서 무엇을 알고 익혀야 하는지에 대한 공부와 훈련, 즉 세상을 살면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입시를 생각하면 학교 교육은 안 시킬 수 없고, 추가로 필요한 것은 사교육으로 보충해 줘야 하고, 취업을 위한 스펙은 또 따로 갖춰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모든 교육이 다 따로따로 어긋나 있다는 생각, 학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에요.” (초등 학부모 41세 P씨)

“고3들이 수능 끝났다고 책을 모두 버리거나 심지어 찢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 어쩜 이럴까 싶어요. 학교에서 배운 내용 단 한 줄도 평생 간직하고 싶은 게 없다는 얘기 아날까요?” (김원태 학교시민교육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

“입으로는 4차 산업혁명을 말하죠. 그러면서도 학교에서는 실제의 삶과 연관되는 역량 대신 지식을 소유, 암기하고 검사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이 상황을 언제까지 방관해도 좋을지 의문입니다.”(현장 사회교사 A씨)

인생에서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학교가 방치하는 교육의 범주는 노동자 권리, 생활법률, 안전기술, 실용영어 등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실용적 정보부터 민주주의, 인권, 토론 등 더불어 사는 인간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가치관까지 폭넓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이런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 공교육 안에서 이뤄지려면 근본적으로 지식 암기 위주의 교육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한국 교육과 입시에서 그걸 없애는 것만큼 어려운 과제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아이, 문제풀이에 능숙한 아이, 5지선다형 문제에서 정답을 쏙쏙 골라내는 아이를 주조하는 학교 대신 ‘삶을 위한 지혜와 기술’을 가르치고 닥쳐올 세상의 각종 위협에 대비하고 훈련할 수 있는 공간, 즉 내 인생을 위한 학교는 이 땅에서 요원한 것일까.

물에 빠지면 대학 졸업장이 살려줄까

학교가 대학 진학부터 직업ㆍ실용 교육까지 다 책임지라는 거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필요한 것’으로 기대되는 것들이란 따지고 보면 기초 중의 기초다.

초교 3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 P(42)씨는 아이가 2학년에 올라가던 지난해부터 주 1회 수영을 가르치며 생존수영 대회에 참가시키고 있다. “외국인 친구가 어느 날 묻더라고요. ‘한국에서는 도대체 왜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지 않는 거냐’고요. 수영 대신 영어, 수학만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다고요. 너무나 맞는 말이었어요. 자연을 극복하고 재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1차원 기술은 누구나 기본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요.”

학교에서 수영 교육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 교육이 그렇듯이 생존을 보장하기는커녕 발에 물만 묻히는 수준이다. “3학년 때 6번, 4학년 때 2,3번 하는 게 끝이에요. 학부모들이 ‘정말 맛만 보고 끝나는구나’ 생각하죠.”

매달 13만원에 육박하는 등록비도 그렇고 늦은 오후부터 저녁 시간에 하교한 아이를 다시 수영장에 보내야 하는 것도 모두 부담이지만 그야말로 삶과 생존에 직결된 문제라는 생각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는 “그나마 부모가 관심을 갖고 애를 쓰는 아이만 생존법을 체득하고 있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고교 졸업 후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던 L(21)양은 처음 자기 힘으로 돈을 버는 노동의 현장에서 예상치 못했던 CC(폐쇄회로)TV 감시에 시달렸다. 주방과 홀에 CCTV를 설치한 사장이 수시로 매장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왜 홀에서 일해야 할 알바생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느냐’ ‘왜 그렇게 식사 시간이 기냐’는 등 시시콜콜 잔소리를 했던 것이다.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던 L양이었지만 도저히 기분 좋게 일할 수가 없어 결국 식당을 그만뒀다. L양은 근로자 감시를 목적으로 한 CCTV 설치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물론 알지 못했다.

“졸업하고 나서 진짜로 겪을 일에 대해서는 학교가 안 가르쳐 줘요. CCTV가 불법인지 알지 못했고, 항의할 생각도 물론 못했죠. 그러고 보면 중고등학생 때 알바를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무조건 알바는 하지 말라고만 하죠.”

“인권” 수업하며 학생 짓누르는 학교

교과서에서 배우는 지식이 세상과 따로 노는 것은 비단 졸업 후의 일도 아니다. 당장 교내 생활부터 학생들의 배움과 삶은 심각하게 불화한다. 글과 말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가르치지만 정작 학교 문화는 경직되고 비민주적이다.

방황하는 중학생 딸을 둔 학부모 K씨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여학생들이 허가증 없이 체육복 바지를 입고 다니면 학생부 선생님과 선도부가 제재를 하는데, 딸아이는 치마가 불편해 차라리 남학생 교복을 입고 싶어 하지만 학교가 허용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립니다. 또 남학생 몇이 삭발하고 오자 ‘혐오감을 주는 용모’라며 벌을 주었다고 해요. 딸아이는 ‘교칙 위반도 아닌데 왜 삭발도 못하게 하느냐. 선생님들 말은 앞뒤가 안 맞는 것 투성이’라고 불평하며 학교를 다니기 싫다고 합니다. 아이 말이 틀렸다고만 할 수 없으니 답답한 거죠.”

신호승(51)씨는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딸아이가 심하게 체벌을 받은 것을 계기로 고민을 거듭하다 아이를 초등 2학년이 되던 해 대안학교로 보냈다. “아이가 초등 1학년 때 단지 복도에서 뛰었다는 이유로 오리걸음을 하고 담임선생님에게 손이 벌겋게 체벌을 받고 왔어요. 힘든 일이었죠. 그런데 그때 시작된 고민이 줄줄이 계속되더라고요. 솔직히 학교를 보내는 게 더 겁이 났어요.”

과연 선생님 한 사람을 비판한들 학교가 바뀔까 싶었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비교하고 경쟁시키는 정신적 폭력, 결국 대학진학을 위해 모두 내달리는 경쟁 시스템, 그런 환경에 아이를 계속 노출하는 게 더 위험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컸어요.”

1일 서울 마포구 대안교육공동체 ‘공간 민들레’의 시민학 수업에서는 이와 관련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공간 민들레는 13~20세 학교 밖 청소년 5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곳이다. “일반 학교에서는 제대로 된 시민으로 교육받을 기회가 너무 적지 않냐”는 학생들의 물음에 최서현(27)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사무국장은 “비단 국영수 위주 수업만으로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은 매우 협소하다”며 “내 가치관과 나의 입장을 세워가는 과정과 기회가 점점 많아져야 하는 마당에 금기시하는 게 현재의 학교 문화”라고 공감했다. 임정빈(16)군은 “실생활에 유용한 것들로 수업을 해봤으면 좋겠다”며 “오로지 국영수, 공부, 이러는데 막상 세상에 나가면 실생활에 유용할 지식이나 기술에 대해선 막막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민학 담당 김준한 교사는 “민주시민 양성을 말하면서도 청소년들에게 ‘지금은 너희가 책임질 수 없는 문제들이야, 목소리를 내면 오히려 불이익 받을 거야’라고 가르치는 모습들이 안타깝다”며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면서도 권리를 추구하는 깨어있는 시민, 주체로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말도 안 되는 교칙이나 이걸 지적하는 학생들의 캠페인을 학교가 완전히 무시하는 문화부터 조금씩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답답한 마음에 학교 밖으로

절실하게 위협이나 갈증을 느낀 학생과 부모들은 대안학교, 홈스쿨링 등으로 탈주한다. 하지만 홀로 헤쳐나가야 하는 그 외로운 여정은 만만치 않다. 대안교육의 내용은 알아서 채운다 해도 세상의 편견이나 고등교육 진입의 문턱과도 싸워야 한다.

“교실에서 아이가 뭘 외우고 뭘 받아 써야 하는지 정답이 다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는 자유도 없지만 책임도 없는 거잖아요. 자유와 책임을 모두 체득할 수 있게,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고 배울 수 있게 가르치고 싶었는데 그게 어려우니 쭉 대안학교에 다녔어요.”

15세 딸을 둔 학부모 김태영(50)씨는 아이가 체험과 경험이 풍부한 시민으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줄곧 대안학교 교육을 시켜왔다. 아이의 의견을 물어 초등학교 6학년 한 해는 일반학교에 등교했지만, 이내 “너무 재미가 없다”는 답이 돌아와 대안교육으로 돌아왔다. 그는 “입시 위주의 교육 대신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왜, 무엇 때문이지?’ 등 정답이 없는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현장에서 체험하는 수업을 통해 아이가 지혜를 얻어나가다 보니 상대적으로 갈등이 적다”고 만족해했다.

고민은 코 앞에 닥친 고등학교 진학이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한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잖아요. 대안학교는 졸업장이 없다 보니까요. 아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게 도울 생각이지만 모든 것이 교과위주 점수제로 환산되고 입시에 반영되는 기존 학교 교육의 틀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긴 하죠.”

신호승씨 역시 대안학교를 거쳐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고 가족회의를 거듭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 딸은 본인 스스로 뮤지컬, 여행, 현장학습, 학교 밖 활동 프로그램 참여 등으로 구성된 생활 시간표를 짜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아쉬움이 있다.

“후회는 없지만 아이가 교복을 입고 함께 어울리는 학생들을 보고 부러운 기색을 비칠 때면 아쉬워하나 싶기도 해요. 독일에 유학을 가고 싶어하는데 그러려면 한국 학교의 공식 학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그렇고요. 한국 학교의 현실이 단지 더 좋은 대학을 향해 어린 시절과 청춘을 저당 잡히고, 엉덩이 짓물러 가며 문제풀이를 하는 곳이 아니었더라면. 아이들에게 사회관계 기술, 갈등을 해결하는 기술 등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곳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2

교과서로 민주주의 가르치지만

학교 문화는 경직되고 비민주적

살면서 필요한 지식은 각자의 몫

학부모들 대안학교ㆍ홈스쿨링 선택

#3

생존수영ㆍ성희롱 대처법 등

학교에서 책임지고 가르쳐야

체험ㆍ토론 중심으로 접근하고

교사 스스로도 시민성 갖춰야

공간 민들레에서 시민학 수업을 듣는 11명의 학생들과 선생님이 서울 종로구 서점 '풀무질' 옆 책 놀이터에서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더딘 변화는 시작됐지만

공교육의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고생들에게 노동자의 권리 교육을 의무화한다는 내용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일본 등이 노동권에 대해 가르치는데 상당시간을 할애하는 것과 달리 우리 학교에서는 제대로 된 노동의 의미와 철학, 노동자의 권리, 최저임금, 근로계약서 등의 이슈를 외면하고, 마치 노동의 세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르치다 보니 ‘청소년 노동인권’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생긴 변화다. 정부는 2018년부터 전국 모든 중고생이 최저임금, 노조활동 등에 대해 의무적으로 배우도록 했다. 중학교는 ‘사회’, 고등학교는 ‘통합사회’, 특성화고는 ‘성공적인 직업생활’ 교과서에 노동 3권, 노동권 침해 사례, 청소년 노동권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줄곧 지적돼 온 안전교육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늦게나마 시작됐다. ‘2015 개정교육과정’은 안전교육 강화를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교과 및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 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했다. 초등 1~2학년은 주당 1시간 늘린 수업 시간을 체험 위주의 ‘안전한 생활’로 채우도록 했고, 초등 3학년부터 고교생은 관련 교과에 ‘안전’ 단원을 신설하도록 했다.

하지만 단원만 신설한다고 체화될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온정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다른 교과 내용도 사실은 실생활과 연계돼 있지만 지식 암기로만 접근해 그 실질적 맥락과 의미를 학생들이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개념과 내용을 프로젝트 중심으로, 체험과 토의를 통해 익혀나가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정답찾기’에 그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입시 제도와 시험의 방식으로는 단기간에 해결해 나가기 어려운 문제들”이라고 덧붙였다.

사회가 변해야 함께 변한다

교사의 노력이 학교 안팎의 반대로 좌절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가 일각의 비난과 신상털기에 시달리고, 보수단체로부터 고발까지 당한 서울 송파구 한 초등학교의 최현희 교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 교사는 “학교에 떠안기기만 한다고 삶을 위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사실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학교문화 자체가 민주적이어야 하고, 삶을 위한 교육을 사회와 가정이 깊이 이해해야 하며, 수업에서 토론 및 체험 학습이 가능한 여건이어야만 현실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제가 페미니즘 동아리를 꾸릴 수 있었던 것도 애초에 ‘별난 교사’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학교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교사들이 처한 문화, 업무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좋은 가치를 가르치라고 하면 피로도만 쌓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실에서의 시민 교육은 교사 자신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교사가 삶의 역량을 지닌 시민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다양한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교사 자체가 시민성을 박탈당하기 때문이에요. 교사 스스로 시민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한, 그 안에서 학생만 시민으로 길러질 수 있다라는 건 착각입니다.”

고유경 참교육 전국학부모회 부회장 역시 “학교에서 아무리 ‘사는 것이 곧 노동’이라는 것을 경험시키고 노동인권, 노동법에 대해 가르치고, 임금격차는 당연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게 가르친다 한들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순종하는 교육을 받는 게 나을 뻔 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흔히 교육이 변해야 사회가 변한다고들 하는데 함께 변해야죠. 노동, 인권, 페미니즘 교육이 불필요하고 갈등만 유발한다고 세상이 여기는 한, 틀에 짜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손해를 보게 돼 있는 한, 학교가 어떻게 삶의 기술을 토론하고 체험시키겠어요?”

김원태 공동대표는 “학교에서 ‘학생이 사회의 주인공’이라고 가르치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 발전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겠다는 목표는 지식체계 위주의 수업과 문제풀이식 입시 등 모든 것을 뒤바꾸는 어마어마한 개혁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는 “어쩌면 당장 필요한 것은 그런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궁여지책”이라고 했다. “유럽 선진국이 하는 교육을 단 한 과목만이라도 해보는 거죠. 아이들을 어린 시민으로 대우하고 제대로 가르치기 시작하는 겁니다. 공동체 속에서 나의 권리와 의무, 책임을 이해시키는 것을 통해 과거의 교실에 균열이 가기 시작할 때, 그렇게 순한 양 대신 진짜 시민이 나올 때, 학교폭력, 일베 고교생 등의 문제들도 조금씩 해결돼 나가리라고 봅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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