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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뚜렷해진 사법 개혁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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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뚜렷해진 사법 개혁의 필요성

입력
2018.06.10 09: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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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와 그 주변의 법관들이 벌인 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혹자는 상고법원의 도입을 위해 문건을 작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특정 법관의 인사나 재판에 영향을 끼친 일이 없으니 문제가 없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사법권의 독립은 단지 한 명의 법관이나 재판 당사자의 승패에만 연결되는 명제가 아니다. 이는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의 필요불가결한 기초이다. 이 점에서 불이익 유무를 따지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일부 전ㆍ현직 법관들의 모습은 너무 가볍고 실망스럽다.

사법권의 독립은 법관들이 스스로 선언한 법관윤리강령에서 가장 첫 번째로 내세우는 의무이다. 법관윤리강령 제1조는 “법관은 모든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나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011년 2월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법관윤리’라는 책자에서는 사법권 독립의 전통적 의미를, 법관이 사법권을 행사할 때 다른 국가기관인 행정부나 입법부의 통제 또는 기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공정하게 재판한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나아가 사법부 내부의 영향, 즉 ‘동료 법관으로부터의 독립’과 ‘사법부가 가지는 최소한의 조직적 영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개념까지 포함하므로, 법관은 사법행정 사무에 관한 지휘ㆍ감독에 따르면서도 재판에 관하여는 독립해서 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분쟁의 해결 방법으로 선택한 ‘재판’이란 것은 사실 굉장히 모호하고 불안정한 전제 아래 그 정당성이 보장된다. 우수한 학업 성적과 법리적 지식을 갖춘 사람을 법관으로 임명하면 그들이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재판한다는 신뢰 아래, 우리는 소수의 법관이 내린 판결을 수긍하고 강제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법원행정처의 위 책자가 강조하는 바는, 이런 허약한 기초 위에 놓인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법관 스스로 독립성을 지키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법원행정처도 이 의무를 피할 수 없고, 오히려 일반 법관보다 더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한다.

문건을 보다 보면, 양승태 대법원 시절에 일어난 이 일들이 단지 상고법원의 도입을 위해 시행되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 하나의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했다고 하기엔, 문건에서 얘기하는 바가 너무 많고 넓다. 그 문건은 관료적 사법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은 법관들, 진보적 법관들과 재야 법조인들을 사법 시스템으로부터 배제하기 위한 방안들로 덮여 있다. 그리고 노동사건 등에서 보수 정부가 원하는 바를 재판 절차에서 관철시키려는 고민과 그 결과물들이 계속 출현한다. 즉, 상고법원의 도입은 그들이 최종적 목표로 삼은 어떤 것을 달성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고 그 과정에서 사법부의 독립이 훼손되는 걸 감수하려 한 듯하다.

지금의 논쟁이 단지 그 일에 관여한 전ㆍ현직 법관들에 대한 수사, 탄핵, 징계 등의 문제에 국한해서 진행되어선 안 된다. 문건에 드러난, 그들이 그렇게도 막으려 한 사법부의 미래 모습이 무엇인지를 되묻고, 왜 노동 사건과 같이 소수자 관련 재판이 쉽사리 흥정거리가 되었는지를 반성하며 이를 반면교사 삼아 사법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문건들에서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먼저, 법원행정처 조직을 개편하여 사법 행정 시스템이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본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가진 법률가들로 법원을 구성해야 한다. 대법원의 경우 당장 대법관 정원을 늘리는 것이 어렵다면, 그 일부라도 소수자 관련 쟁점과 법리에 밝은 법률가로 충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법원을 신설하여 노동사건이 정치적 흥정거리에서 벗어나 공정하게 해결되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법원이 이런 과제들을 신속하게 해결할 때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일부라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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