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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재난에 링거도 못 맞을 ‘필수의약품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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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재난에 링거도 못 맞을 ‘필수의약품 관리’

입력
2017.10.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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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90% 이상에 필요하지만

기초수액제는 비축 대상서도 제외

의약품 수급 시스템 총체적 부실

비상사태 때 의료 재앙 우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북핵 위기로 전쟁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비상사태 발생 시 신속하게 공급돼야 할 필수 의약품들이 제대로 비축돼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쟁이나 재난으로 환자가 대량 발생할 경우, 전국의 중대형 병원이나 지역별 보건소를 찾더라도 의약품이 갖춰져 있지 않아 치료할 수 없는 사태가 빚어질 위험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은 10일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필수 의약품 비축체계가 미비한 데다 비상사태 발생시 의약품을 어떻게 공급하고 운송할지에 대한 체계적 시스템도 없으며, 그나마 있는 매뉴얼대로 훈련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기초수액제 같은 의약품은 응급상황에 꼭 필요하지만, 정부의 비축 대상에서조차 제외된 상황이다. 최 의원은 “병원을 찾는 환자 90% 이상이 수액을 맞을 만큼 위급상황에서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하는 게 기초수액제인데도 국가 필수의약품 지정이나 비축의약품으로 관리되지 않고 있어 전쟁 등 위급한 상황이 닥칠 경우 의료재앙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초수액제는 수분을 비롯해 기본적인 전해질과 환자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고 농도가 높은 항생제나 항암제 등을 희석해 몸속에 공급한다. 국가 필수 의약품에 지정된 126개 품목 중 14개는 기초수액제가 없으면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의 필수 의약품 목록에는 포도당주사액, 포도당생리식염주사액, 염화칼륨주사액, 생리식염주사액, 탄산수소나트륨, 하트만액, 주사용수 등 7가지 기초수액제가 포함돼 있다.

현재 기초수액제 등은 비상대비자원관리법에 따라 국가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동원되는 의약품에 포함돼, 동원령 선포 후 3개월 분을 확보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는 필수 의약품의 수급 불안정성을 간과한 것이다. 현재 기초수액제는 JW중외제약(40%), CJ헬스케어(30%), 대한약품공업(30%) 등 3개 사가 국내 공급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평상시에도 이들 3사의 가동률이 100%를 넘는 상황이라 비상사태 발생 시 신속한 증산이나 적재적소 운송 등이 불가능하다. JW중외제약 관계자는 “2015년 12월 서해대교 화재로 서해고속도로가 장기간 통제됐을 때 충남 당진의 수액공장은 공급부족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기 위해 우회도로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지정 필수의약품도 너무 제한적이다. 현재 국가 지정 필수의약품은 126개, 국가 비축용 의약품은 36개만 지정돼 있다. 국가 비축용 의약품은 ‘방사능 방재 대책법’과 ‘감염병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의약품의 안정적 확보 및 공급에 대한 규정’에 의거해 지정되는데, 방사능재난 발생 대비 차원의 갑상선 방호약품들과, 대규모 감염병 유행에 대비한 항바이러스제들이 대부분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보건의료상 필수적이나 시장 기능만으로 안정적 공급이 어려운 의약품을 국가 필수 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어 현재 원활한 공급이 가능한 기초수액제는 제외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초수액제는 값이 싼 데다 부피가 커서 의료기관들이 장기간 보관을 꺼리는 형편이다. 대형병원들이 경영 효율화를 위해 창고를 최소화하는 추세이고, 규모가 크지 않은 병원은 창고조차 없어, 제약사와 병원 간 일일 직배송 시스템으로 수요량을 맞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상사태에 사용량이 증가될 의약품은 몇 주나 한 두달 분량 정도 주요 거점의 의료기관에 비축하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 의원은 “법 개정 등이 어렵다면 의료기관이 재난에 대비해 일정 물량의 의약품을 비축ㆍ관리하도록 지도하고 이를 의료기관 지정이나 인증 평가 때에 반영하는 방법도 있다”며 “보건복지부나 식약처 등이 해법은 찾지 않고 비상시 의약품 관리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만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성원 선임기자 sungwon@hankookilbo.com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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