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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도 모르는 ‘눈 먼’ 배구연맹…프로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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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도 모르는 ‘눈 먼’ 배구연맹…프로 맞나

입력
2017.02.1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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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한국전력과 한국배구연맹(KOVO) 모두 고개를 숙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프로배구 사상 초유의 부정 유니폼 해프닝은 선수와 구단의 부주의, KOVO의 무지가 빚어낸 촌극이었다.

한국전력 강민웅이 부정 선수로 간주돼 퇴장 당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한국전력 강민웅이 부정 선수로 간주돼 퇴장 당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도대체 무슨 일이?

한국전력 주전세터 강민웅(32)은 14일 대한항공 원정에서 남색 계열의 원정 유니폼을 챙겨야 했지만 붉은색 계열의 홈 유니폼을 가져가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범했다. V리그 운영요강에 따르면 리베로를 제외한 한 팀의 모든 선수는 같은 색과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강민웅이 뛸 수 없어 백업세트 황원선(22)이 1세트 초반 투입됐다. 한국전력은 숙소로 쓰는 아파트 인근의 마트 주인에게 급히 연락해 퀵 서비스로 보내달라고 부탁했지만 배달된 유니폼은 동료들처럼 반소매가 아닌 민소매였다. 이는 한국전력이 작년에 KOVO에 등록한 제품이었다. 한국전력 측은 박주점 경기감독관에게 민소매 유니폼 착용이 가능한 지 문의했고 ‘문제없다’는 답을 들어 1-4로 뒤진 상황에서 강민웅을 투입했다. 이를 본 박기원(66) 대한항공 감독이 규정 위반이라며 항의했지만 박 감독관은 그대로 진행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14-12로 앞선 상황에서 경기는 중단됐다. 현장 경기운영위원과 심판위원, 관계자들이 잘못을 알아챘고 상황을 파악한 뒤 강민웅을 부정 선수로 간주했다. 강민웅은 동료의 반소매 유니폼 위에 자신의 민소매 유니폼을 겹쳐 입으면서까지 심판진의 판단을 기다렸지만 결국 퇴장 당했다. 경기는 14-12가 아닌 14-1에서 속개됐다. 잘못이 없는 대한항공의 14점은 인정됐고 귀책사유가 있는 한국전력의 점수는 강민웅 투입시점으로 되돌려졌다. 이렇게 약 25분이 허비되는 동안 관중석에서는 “지금 팬들을 뭐로 보느냐” “집에 가버리겠다” 등 고함과 야유가 쏟아졌다.

규정도 모르는 감독관

KOVO의 운영 미숙이 화를 키웠다.

한국전력이 최초 민소매 착용 여부를 문의했을 때나 박기원 감독이 처음 어필했을 때 바로잡았다면 이 정도까지 사태가 커지지는 않았다. 팬들은 감독관이 규정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에 어이없어 하고 있다. KOVO는 관련 감독관과 심판들의 중징계를 예고하고 나섰다. 16일 상벌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번처럼 부정 유니폼은 아니지만 규정을 잘 몰라 경기가 중단되는 일이 올 시즌 몇 번 있었다. 작년 12월 16일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의 세 번째 비디오판독 요청은 규정상 거부돼야 하는데 감독관과 심판이 받아줘 나중에 벌과금과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지난 1월 13일에는 OK저축은행의 포지션 폴트(서브 전 자리 이탈)를 심판이 인지하지 못했다. 최태웅(41) 현대캐피탈 감독이 발견해 지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불만을 품은 최 감독은 나중에 선수들에게 지시해 코트를 이탈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심판진과 최 감독 모두에게 징계가 내려졌다.

작년 11월 13일 우리카드와 한국전력의 경기. 두 팀 유니폼 색깔이 비슷하다. 올 시즌 우리카드 홈 유니폼이 군청색이라 한국배구연맹(KOVO)은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카드와 원정을 치르는 상대 팀은 반드시 밝은 색 유니폼을 착용하라고 사전 고지했다. 한국전력은 이날 붉은색 유니폼을 입어야 했지만 ‘깜빡’ 하고 모든 선수가 군청색 계열을 입고 왔다. 경기는 그대로 진행됐지만 한국전력은 사후 징계를 받았다. 우리카드 제공
작년 11월 13일 우리카드와 한국전력의 경기. 두 팀 유니폼 색깔이 비슷하다. 올 시즌 우리카드 홈 유니폼이 군청색이라 한국배구연맹(KOVO)은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카드와 원정을 치르는 상대 팀은 반드시 밝은 색 유니폼을 착용하라고 사전 고지했다. 한국전력은 이날 붉은색 유니폼을 입어야 했지만 ‘깜빡’ 하고 모든 선수가 군청색 계열을 입고 왔다. 경기는 그대로 진행됐지만 한국전력은 사후 징계를 받았다. 우리카드 제공

무사안일 한국전력

한국전력도 1차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본보 취재에 따르면 유니폼은 한국전력처럼 선수가 스스로 챙기는 경우도 있고 구단 스태프가 일괄 준비하기도 한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어떤 구단은 아예 선수단 버스에 모두 선수들의 홈, 원정 유니폼을 한 벌씩 넣고 다닌다고 한다. 이렇게까지는 못해도 경기장에 오기 전 유니폼 확인은 상식이다. 하지만 한국전력은 선수도 한 눈 팔았고 구단도 소홀했다. 이날 유니폼을 잘 못 가져온 선수는 강민웅 말고도 한 명 더 있었다. 한국전력은 작년 11월 13일 우리카드 원정 때 군청색 유니폼을 입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우리카드의 홈 유니폼이 푸른색이라 원정 팀인 한국전력이 붉은색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고지 받고도 깜빡 잊은 탓이었다. 결국 경기 후 한국전력은 벌금을 물었다.

강민웅이 부정 선수로 간주돼 14-12에서 한국전력의 점수가 깎여 14-1로 바뀌었다. 인천=연합뉴스
강민웅이 부정 선수로 간주돼 14-12에서 한국전력의 점수가 깎여 14-1로 바뀌었다. 인천=연합뉴스

이런 경우 어떤 규정을?

KOVO가 한국전력의 점수를 몰수한 것이 제대로 된 규정 적용이냐는 논란도 일었다. 이에 대해 KOVO는 “유니폼을 잘못 입었을 때 부정선수가 된다는 규칙이 국제배구연맹(FIVB) 어디에도 없다. 처음 나온 사례라 이를 부정 선수나 불법적인 선수 교대, 포지션 폴트의 경우 해당 시점으로 되돌린다는 규정을 준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FIVB는 KOVO와 달리 경기 직전 심판이 양 팀 선수 유니폼을 체크해 문제가 있으면 경기감독관을 통해 아예 경기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KOVO 관계자는 “이런 경우 어떻게 규정을 적용하는 게 맞는 지 일단 FIVB에 질의해볼 계획이다”고 밝혔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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