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논설위원

등록 : 2015.07.28 10:49
수정 : 2015.07.29 03:02

찬거리 팔던 재래시장이 '2030 아지트'로

강북을 걷다 (2) 금천교시장

등록 : 2015.07.28 10:49
수정 : 2015.07.29 03:02

부암동과 홍제동 등에서 능선으로 올라타 정상에 도달한 다음 범바위를 지나 내려오는 인왕산 등산은 일종의 종주산행이다. 지리산(해발 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정도 되는 큰 산을 적어도 2, 3일 동안 힘들게 지나야 종주산행을 했다고 할 수 있으니 높이 340m의 이 작은 산을 두고 종주를 언급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내 능선을 따라 걸으며 서울시내의 다양한 경치를 구경하는 것은, 비록 두세 시간의 산행이라고 해도 여느 산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큰 즐거움이다.

금천교 시장 입구.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라는 간판을 설치해 놓았다.

인왕산 정상에 올랐다가 범바위를 거쳐 서울성곽을 따라 내려오면 크게 사직공원과 독립문 두 방향으로 하산하게 된다. 두 길에는 각각 금천교 시장과 영천 시장이 자리잡고 있어, 산행을 함께한 벗들과 가볍게 뒤풀이를 하기에 좋다.

이 중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와 연결되는 금천교 시장은 동네 이름을 따서 적선 시장이라고도 하는데 얼마 전부터는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로도 불린다.

수정강북을걷다지도

결혼 후 이곳 가까운 동네에 정착해 시장을 들락거린 것이 20년을 넘는다. 그때 시장은 좁은 골목을 따라 양쪽으로 채소, 고기, 쌀, 과일, 잡화 등을 판매하는 가게가 줄지어 있었지만 사실 재래시장으로는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당시 시장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뜻밖에도 떡볶이였다. 흔히 보는 고추장 떡볶이가 아니라 간장 떡볶이. 기름으로 볶고 간장으로 간을 하는 이 떡볶이는 빨간 고추장 떡볶이에 비해 비주얼은 약해도 독특함은 강했다. 그때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간 1970년대 후반에는 간장 떡볶이뿐 아니라 고로케도 시장의 명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장에서 간장 떡볶이도, 고로케도 보기가 쉽지 않다. 시장 입구의 한 평 남짓한 노점에서 아흔아홉 살 된 김정연 할머니가 유일하게 간장 떡볶이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저녁 때 주로 찾는 직장인이나 학생들은 할머니를 보기가 쉽지 않다. 개성이 고향이라는 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 대열에 끼어 가족을 두고 남하했다가 돌아가지 못한 채 지금껏 홀로 지내고 있다. 할머니가 떡볶이를 팔아 모은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 사연이 TV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여학생 시절에 금천교 시장의 떡볶이 집을 즐겨 찾았다는 한 중년 여성은 “당시 이 부근에 배화여중고와 진명여고가 있었는데 배화 친구들은 금천교 시장에서, 진명 친구들은 인근 통인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었다”며 “지금은 신당동 고추장 떡볶이가 유명하지만 옛날에는 금천교 시장의 간장 떡볶이도 그에 못지 않았다”고 추억했다.

금천교 시장의 이름은 금천교라는 다리에서 유래했다. 인왕산과 북악산에서 내려오는 시냇물이 이곳을 지나 서울 도심으로 흘러 들었는데 그 개천 위에 금천교라는 다리가 있었다. 원래 금천(禁川)은 경복궁 창덕궁 등 궁궐 안의 명당수로, 대개 산에서 내려오는 자연하천을 인위적으로 연결해 조성한다. 왕의 공간과 외부 영역의 경계가 되는 개천으로, 한자에서 보듯 그 안으로는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서울 남서부에 있는 금천(衿川)은 고려시대에 금주(衿州)라는 지역이었으나 조선 태종이 작은 군현은 주 대신 산(山)이나 천(川)으로 개칭하라고 해서 금천이 됐다고 하니 금천교와는 무관한 지명이다.

금천교가 언제, 어떤 이유로 설치됐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동아일보 1928년 6월 5일자는 “서울에 돌다리가 한둘이 아니로되…지금까지 남아있는 홍예교는 창경궁 홍화문 안에 있는 것과 이번에 헐리는 금천교 밖에 없으되…”라면서 당시 길을 놓느라 금천교를 헐어야 하는 아쉬움을 기사로 내보냈다.

요즘 금천교 시장은 먹자 골목으로 유명하다. 도심과 가깝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데다 먹을 것이 다양해 주머니 가벼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금요일 밤에는 젊은이들이 이 거리를 가득 메워 후끈한 열기를 뿜어낸다.

이른 저녁에 금천교 시장을 찾은 젊은이들이 음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확하게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최근 3, 4년 사이에 가게의 90% 정도가 바뀐 것 같다. 그래서 가게 딸린 방에서 나른하게 누워 TV를 보며 손님을 맞던 채소 가게 주인 아주머니도, 낮 시간에만 잠시 문을 열어 시래기국을 곁들인 소박한 밥상을 내놓던 할머니도 이제는 볼 수 없다. 그 같은 변화 속에서 금천교 시장 역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임대료 인상 등으로 주민과 옛 상인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대학로와 홍대 부근은 물론 금천교 시장과 가까운 서촌 마을 등지도 몸살을 앓았었다. 다행히 금천교 시장의 건물주와 세입자들은 지나친 임대료 상승을 자제하자는 협약을 지난 4월에 맺었으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하나 금천교 시장은 강남이나 남산 자락의 호사스러운 거리에 비해 아직도 소박하다. 일부 가게는 여전히 본래 모습을 지키고 있으니 그 대표 보기가 시장 중간쯤에 있는 순댓국 집이다. 순댓국과 소머리고기, 돼지머리고기가 유명한 이 집은 가곡 ‘가고파’를 작곡한 김동진이 즐겨 찾았던 곳으로 머리고기를 앞에 두고 소주와 막걸리를 기울이는 나이든 분들이 많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국숫집은 잔치국수, 칼국수, 수제비 등 밀가루 음식과 각종 전이 맛있다. 이 집을 찾았던 정치인, 문화예술인들이 맛있게 잘 먹었다고 쓴 친필 서명이 벽에 가득하다.

가곡 '가고파'의 작곡가 김동진이 자주 찾았다는 순댓국집.

3년 전 들어선 감자집은 시장의 분위기를 젊고 활기차게 바꾸었다. 그때만 해도 터줏대감이 많던 이 거리에 20대 젊은이들이 감자튀김과 맥주를 파는 가게를 열었는데 이들은 길에서 눈이 마주치면 손님이 아니라도 큰 소리로 먼저 인사하고 사진을 찍자고 해도 피하는 법이 없다. 이들의 씩씩한 이야기는 ‘청년장사꾼’이라는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됐다. 가수 김광석의 노래 제목에서 가게 이름을 따온 맥주 집에서는 애석하게 세상을 떠난 김광석과 비틀스와 7080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금천교 시장 안에 있는 감자집. 이 음식점을 운영하는 젊은이들이 늘 씩씩하게 손님을 맞는다.

요즘 금천교 시장은 경복궁 역 쪽이 아니라 반대쪽 그러니까 배화여대 쪽으로도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늘어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음식점과 주점이다. 시장의 주인공도 장을 보러 오는 주부가 아니라 친구나 동료와 술 한잔하며 정을 쌓고 피로를 푸는 젊은이와 직장인이다. 이제 재래시장의 기능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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