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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모터에서 제너레이터까지

입력
2016.09.1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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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과로 불립니다. 사과로 불리니 식탁이 어울립니다. 나는 사과에게 출발, ‘가고 있고’의 시간을 지나 도착합니다. 닿은 곳이 견고하므로 나는 기다립니다. 사과라 불리는 이것이 바나나로 불리는 이것이 된 것은 내가 내 허리의 색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고 나서입니다.

갈변은 사과의 것입니다. 견고한 사과 앞에서 내 허리의 색이 변한 것은 나의 사과로의 침투, 나아가 부른 존재와 불린 존재의 상호침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과가 사과를 벗어나 바나나로 불리기까지. 바나나로 변화한 것보다 사과가 사과라는 말에서 놓여났다는 것이 문제적이지요.

동일한 제목의 시가 한 편 더 있습니다. 흐름상 그 시가 먼저 써졌을 것입니다. 이것을 나는 사과라 부른다. 시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두드리고 문이 열리지 않고 나는 기다리고 사과가 썩고 다시 두드립니다. 사과가 열릴 지도 모르는 그 순간 누군가 나를 토마토라 부릅니다. 내내 나로 사과를 두드린 내가 한 순간 토마토로 불리게 된 사태가 벌어집니다. 나는 여전히 사과를 두드릴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모터에서 제너레이터까지라는 제목에 시인은 일렉트릭 모터(전동기)와 제너레이터(발전기)의 구조 차이는 없다는 주를 달았습니다. 사과에서 바나나까지, 나에서 토마토까지, 다시 바나나에서 사과까지, 사물은 말을 벗어날 수 없고 말은 명명을 멈출 수 없다에서 발생하고 회전하는 사이클입니다.

이 시인은 사물과 말 사이의 탐구를 계속 해 오고 있습니다. 둘 사이의 좁디 좁은 골목이 힘들 법도 한데요. 이 미세한 싸움에 힘겨운 재미가 들려 있습니다. 미끄러지는 식도의 질감을 알아차린 것이지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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