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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꿈꾼 유학생, 면세점 오너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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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꿈꾼 유학생, 면세점 오너로 돌아왔다

입력
2018.03.14 18:42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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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유학 가서 사업 시작

가전 면세점 10년 공들여 키워

25개 점포 연 5000억원 매출

“코스닥 통해 한국에 400억 투자

제주ㆍ부산 면세점부터 오픈 계획

도쿄올림픽이 관광사업에 호재”

구철모 JTC 사장. JTC 제공
구철모 JTC 사장. JTC 제공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관광학을 공부하겠다며 현해탄을 건넌 스물여섯 살 한국 청년이 있었다. 일본 도쿄(東京)의 명문 사립 릿쿄(立敎)대에서 석사 학위를 딴 그는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관광학 박사 과정이 있었던 미국 코넬대에서 유학하고 모국의 대학 강단에 서겠다는 꿈을 꿨다. 그러던 그가 25개 점포에서 연 500억엔(5,000억원) 매출을 올리는 일본 면세점 기업의 오너가 되어 30년 만에 금의환향했다. 일본 기업으로는 6년 만에 한국 주식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JTC(Japan Tourism Corporation) 구철모(56) 사장 얘기다.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 JTC 서울사무소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구 사장은 일본 땅에서 사업을 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어릴 적 기억을 꺼냈다. 일본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해방 후 부모님과 함께 귀국해 고향 대구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구 사장을 낳았다. 사정상 일본에 남았다가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고향을 찾은 작은 할아버지가 어린 그의 손에 쥐어준 선물들, 트랜지스터 라디오, 연필깎이 등 당시 한국에선 진귀했던 물건들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구 사장은 “그때 선물가게를 차리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며 웃었다.

석사 학위를 받고 관광연구소 연구원 생활을 하던 그는 미국 유학의 꿈을 접고 1993년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부인이 안정된 생활을 원하며 미국행을 만류하기도 했지만, “여가를 가장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여행이므로 관광산업은 항상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학창 시절의 배움을 현실화하고픈 욕구도 컸다. 일본의 대표적 온천 관광지로 한국인들이 많이 찾던 오이타(大分)현 벳푸(別府)에 단체관광객을 상대로 한 60평 규모의 가전제품 면세점을 열었다. 어릴 적 바람대로 ‘선물가게’를 차린 것이다. ‘선물에는 주는 사람의 애정과 받는 사람의 감동이 담긴다’는 사업 철학에 따라 값싼 수입품이 아니라 일본 제품만 취급했다.

10년을 공들여 점포를 키운 후에야 그는 나가사키(長崎)현 츠시마(対馬)섬, 도쿄 신주쿠(新宿)를 필두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구 사장은 “완벽한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다른 지역에 진출하면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벳푸에서 기반을 다졌다”며 “10년쯤 지나니까 자신감이 생겼고 급속히 가게를 넓혀 나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사업 확장이 마냥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아시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대형 악재로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다. 최악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었다. 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후쿠시마(福島) 원전 폭발사고까지 일어나면서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뚝 끊겼다. 구 사장은 3개월 휴업을 단행했다. 전 직원에게 유급 휴가를 주고 자신은 중국에 가서 현지 어학원에서 중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사업을 재개한 뒤엔 한 달에 보름은 중국 대륙을 누비며 관광객 유치를 위한 영업에 전념했다. 구 사장은 “위기를 겪을 때마다 ‘관광 수요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잠시 뒤로 미뤄지는 것’이라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며 “일단 관광객이 돌아오기 시작하면 수요는 한꺼번에 몰려든다”고 말했다.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상장을 결정한 JTC는 일본과 한국 주식시장 두 곳을 저울질했다. 직원들은 일본에 터를 잡은 기업인 만큼 일본 시장에 상장을 하자고 주장했지만, 구 사장은 자신이 일군 기업을 고국에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직원들을 움직인 것은 김재준 당시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장의 JTC 본사 방문이었다. 구 사장은 “한국에서 상장하려면 일본과 한국의 관련법과 회계기준을 동시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컸던 것이 사실”이라며 “코스닥 시장의 열정과 설득 덕분에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한국 상장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JTC는 내달 초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오는 20~21일 수요 예측을 거쳐 26~27일 공모 청약에 나선다. 공모 예상가는 주당 6,200~7,600원 수준으로, JTC는 이번 상장을 통해 최대 8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JTC는 새로 조달한 자본의 절반인 400억원을 한국 시장 진출에 투입한다. 우선 제주와 부산에 면세점을 낸 뒤 수도권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구 사장은 “제주와 부산은 중국~한국~일본을 잇는 크루즈 선의 기항지”라며 “중국인 관광의 ‘빙하기’가 풀리면 본격적으로 한국 사업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400억원은 일본 내 신규 면세점 출점에 사용될 계획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은 JTC를 비롯한 일본 관광산업계의 대목이다. 정부 차원의 관광 진흥책과 각 지역의 호텔 건설 붐이 일본 관광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킬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구 사장은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 4,000만명, 2030년에 6,000만명이 일본을 방문할 것이란 분석이 있다”며 “인프라 확충이 관광객 증가로 이어지면 자연히 면세점 고객도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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