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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사랑이 진실하기를 기원하는 것

입력
2017.09.2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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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동성 부부 로이와 실로는 사육사의 도움으로 딸 탱고를 키웠다. 사랑을 응원하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이니까. 담푸스 제공
펭귄 동성 부부 로이와 실로는 사육사의 도움으로 딸 탱고를 키웠다. 사랑을 응원하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이니까. 담푸스 제공

사랑해 너무나 너무나

저스틴 리처드슨, 피터 파델 글, 헨리 콜 그림ㆍ강이경 옮김

담푸스 발행ㆍ32쪽ㆍ1만원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 동물원에 펭귄 로이와 실로가 살았다. 둘은 언제나 같이 걷고 같이 노래하고 같이 헤엄치고, 서로 다정히 목을 비벼대었다. 사랑하는 사이. 사랑하므로 둘은 가족을 이루고 싶었다. 돌멩이를 모아 둥지를 짓고, 밤이면 둥지에서 다정하게 잠을 잤다. 여느 펭귄 부부들처럼.

그러나 둘에게는 여느 부부처럼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알을 낳는 일. 그들은 동성이었다. 수컷 로이와 수컷 실로는 알처럼 둥근 돌을 가져다 품어 보았다. 번갈아 자고 일어나 품고 헤엄치고 돌아와 품고, 몇날 며칠을 품고 또 품었다. 하지만 돌멩이는 돌멩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다. 돌멩이가 아닌 사람, 사육사의 마음이 움직였다. ‘둘은 서로 사랑하나 봐. 가족을 이루어 아기를 키우고 싶어 해.’ 사육사는 종종 부화에 실패하는 다른 펭귄 부부의 알 두 개 중 하나를 로이와 실로의 둥지에 넣어 주었다.

여느 부모처럼 로이와 실로도 정성이 지극했다. 둘은 알이 고루 따뜻해지도록 이리저리 굴려가며 아침에도 품고 밤에도 품었다. 점심 먹을 시간에도 헤엄칠 시간에도 저녁 먹을 시간에도. 그 달이 시작되던 날, 그 달이 끝나던 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날에 품고 품었다. 그리고 마침내 새끼가 깨났다. 둘만의 아기. 로이와 실로는 아빠가 되었다. 사육사가 말했다. “아기 이름을 탱고라고 짓자. 혼자서는 출 수 없는 춤.” 두 아빠가 한 아기를 정성으로 키웠다. 배가 고프면 무슨 소리를 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제 부리에서 먹이를 꺼내 먹여 주었다. 밤에는 꼭 안아 재우고, 둥지를 나올 만큼 자라자 헤엄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동물원을 찾은 사람들은 여느 펭귄 가족과 다르지만 같은 이 가족을 보며 외쳤다. “장하다, 로이!” “장하다, 실로!” “만나서 반가워, 탱고!”

이 그림책의 이야기는 실제다. 1998년부터 7년 동안 로이와 실로는 부부로 살면서 딸 탱고를 키웠다. 이 나라 동물원에서였다면?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사랑을 응원하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이니까.

그런데 동성 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랑을 저주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대통령감을 검증하는 자리에서건 법관을 살펴보는 자리에서건 ‘동성애를 찬성하느냐?’ 종주먹을 대며 혐오의 불씨에 부채질을 한다. 그러면서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혐오의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동성애는 고래류, 영장류를 비롯한 ‘자연’의 수많은 종들에게서 흔하게 발견된다. 동물들이 섭리를 어기는 걸까? 동성애를 저주하는 이들이 떠받들곤 하는 미국조차 두 해 전에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어째서 그들은 미국의 대통령에게 ‘우리나라에 핵무기를 배치해 달라’는 구걸을 할지언정, 미국의 법률은 모른척하는가?

본디 그러한 것-그렇게 생겨난 것을 ‘자연’이라 하고, 사람이 만든 것-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을 '인위'라 부른다. 차별, 전쟁, 핵무기, 4대강 사업, 국정 농단 등이 후자에 해당하고 강, 산, 바다, 꽃, 나무, 사랑 등이 전자에 든다. 찬반은 인위에 국한되는 행위다. 강과 산을, 꽃과 나무를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가?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내버려 두라. 센트럴파크의 사육사처럼 돕지는 못할망정 패악을 부릴 일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사랑이 진실하기를 기원하는 일뿐이다.

김장성 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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