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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도전정신으로 글로벌 곡물기업 꿈 이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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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도전정신으로 글로벌 곡물기업 꿈 이룰 것”

입력
2015.06.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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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오션 인수로 발판 마련

미래에 수익성 높은 사업은 농업, 화물ㆍ곡물 운송 연계 경쟁력 확보… 100년 내다보면 카길도 이긴다

나폴레옹 모자 낙찰받아 화제

불가능을 현실화시킨 사람, 중학교 때 전기 읽고 롤모델로… 긍정적 정신 한국사회에 필요

“대기업 규제 많아 부담”

팬오션 인수로 대기업 집단 승급… 상속세율 높아 장수 기업 힘들어, 경제정책 온기 中企까지 흘러야

최근 선박회사 팬오션을 인수한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세계 최대 곡물기업인 미국의 카길처럼 사업을 키우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그는 “3년 안에 팬오션의 실적 개선을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최근 선박회사 팬오션을 인수한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세계 최대 곡물기업인 미국의 카길처럼 사업을 키우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그는 “3년 안에 팬오션의 실적 개선을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지난 겨울 이후 김홍국(57) 하림그룹 회장이 언론에 부쩍 자주 오르 내렸다. 재벌이나 대기업 인사가 아닌 중견 기업인이 정치ㆍ사회적 이슈를 제외하고 사업만으로 조명을 받는 일은 흔치 않다.

김 회장이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하림이 닭고기 전문기업에서 갑자기 대기업으로 부상하게 됐기 때문이다. 닭 가공업(하림)으로 시작해 사료(제일사료), 양돈(팜스코)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계열사를 31개까지 늘려 온 그는 STX 계열사였던 팬오션 인수로 해운업까지 진출했다. 하림그룹은 팬오션 인수로 자산총액이 4조8,000억원에서 9조원으로 늘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에 속하게 됐다.

김 회장이 팬오션을 인수하며 모델로 삼은 것은 바로 연 매출 140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곡물업체 카길이다. 미국의 카길은 곡물 재배부터 가공, 운송, 유통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그만큼 팬오션 인수는 글로벌 곡물사업이라는 김 회장의 오랜 꿈이 녹아 있다. 한때 그는 팬오션 소액주주들의 반발로 인수가 불투명해지면서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경기 성남시 하림그룹 본사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하는 동안 ‘설렘’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_팬오션 인수가 순탄치 많은 않았다.

“지난 12일 팬오션 관계인 집회에서 1.25 대 1 주식 감자를 포함한 팬오션 회생 계획안에 동의한 주주가 당초 예상보다 10% 많은 61.6%였다. 팬오션의 법정관리 기간이 길어지면 주주 이익도 줄어든다는 것을 다행히 주주들도 잘 알았던 것 같다. 막판에 문제가 됐던 일부 소액주주들의 회생계획안 반대 움직임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지다 보니 이를 무겁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_다른 운수업체들도 있는데 왜 하필 법정관리 중인 팬오션이었나.

“그룹의 비전인 곡물사업의 경쟁력은 해운에 있다. 팬오션 전에도 대한해운 인수를 검토했다. 그런데 때마침 2007년에 세계 1위 규모인 2,500만톤의 곡물을 운송한 경험이 있는 팬오션이 매물로 나왔다.”

_자연재해나 세계적 수요량 변동 등 곡물 사업은 위험 요인도 크다. 어떻게 곡물사업의 꿈을 품게 됐나.

“곡물 기업의 꿈은 10년 전부터 키웠다. 모든 에너지의 중심에 곡물이 있다. 곡물로 사료를 만들고 사료로 닭과 돼지를 키워 식품을 가공하니 하림의 현재 사업도 사실상 곡물 사업이다. 미국의 유명 투자가인 로저스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은 지난해 서울대 강연에서 미래에 농업이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곡물을 장악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도 수입 곡물 의존도가 높지만 이 때문에 50년 전부터 국제 곡물 유통업을 정책적으로 키워 왔다.”

_세계 곡물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카길을 모델로 삼았다.

“당장 내 세대에 카길 같은 회사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곡물 사업은 기초 사업이기 때문에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카길은 150년 간 4, 5대에 걸쳐 성장한 가족회사다. 카길은 곡물회사 안에 선박사업부를 뒀고, 나는 팬오션이라는 선박회사 안에 곡물사업부를 둘 계획이지만 결국 결론은 같다. 100년을 바라보고 집중하면 카길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심정으로 팬오션을 인수했다.”

_원대한 목표는 좋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기존 사업도 위태로워 질 수 있다는지적도 있다.

“대중은 가시적 성과가 나와야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는 것이다. 대중의 논리로 보면 모험이고 위험이지만 소수의 선각자들은 남이 보지 못하는 앞을 내다 본다. 나는 항상 많은 이들의 조언을 듣지만 의사결정은 혼자서 한다. 팬오션 인수의 성과를 3년 안에 보여 줄 자신 있다.”

_ 팬오션 인수로 재무 부담이 증가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잘 알아보지 않고 하는 소리다. 팬오션 인수 비용 1조79억원 중 3,900억원을 은행 인수금융(브릿지론)으로 조달했다. 그룹 내 현금 보유가 8,000억원 이상이다. 그런데도 법령을 지키기 위해 브릿지론 방식으로 차입했다. 그 바람에 합병 때문에 하림 부채비율이 120%로 높아졌다. 하지만 법정관리에서 탈피한 팬오션 부채비율이 재상장과 사업 정상화를 통해 연말까지 80%대로 떨어질 전망이어서 합병에 따른 양 사 부채 비율을 합치면 하림의 부채비율도 100%로 떨어진다.”

_앞으로 인수한 팬오션을 어떻게 운영할 생각인가.

“카길은 곡물 유통회사지만 선박사업부가 따로 있고 화물전용 선박인 벌크선을 500, 600척 갖고 있다. 이를 통해 곡물뿐 아니라 철강, 석탄 등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실어 나른다. 그래야 사업 폭이 커져 경쟁력이 생기고 곡물 유통 경쟁력도 좋아진다. 철광석, 석탄, 곡물 등 벌크선 화물 운송에 경험이 많은 팬오션의 특징을 살려 벌크 운송과 곡물 사업부를 두고 곡물 무역의 연계 효과를 도모할 생각이다.”

김 회장은 대표적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11세 때 외할머니가 사 준 병아리 10마리를 정성껏 길러 시장에 내다 판 것이 오늘날 하림그룹의 시작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김 회장은 교직이나 공직의 길을 택한 다른 형제ㆍ자매와 달리 4남 2녀 중 유일하게 장사에 빠져 지냈다. 부모님은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역설적으로 그는 부모님 뜻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적성을 찾아 성공했다고 본다. “적성 대로 살면 보이지 않는 손이 성공으로 이끌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어린 시절을 중학교 때 읽은 나폴레옹의 삶에 투영해 보곤 한다. 그는 코르시카 섬 출신의 평민으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정신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나폴레옹의 상징 같은 이각(二角) 모자가 경매에 나오자 26억원에 낙찰 받아 화제가 됐다. 그는 “1% 가능성만 보고 100% 성공으로 만드는 나폴레옹의 정신이 부정적 에너지로 가득한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_나폴레옹 모자 낙찰이 크게 화제가 됐다.

“나폴레옹의 모자가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을 우연히 라디오 뉴스로 접하고 곧장 사겠다는결심을 했다. 코르시카 섬 출신의 시골 소년이 프랑스 황제가 된 것은 1%는 커녕 0.001%도 안 되는 가능성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나폴레옹은 세계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불가능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나폴레옹의 모자를 확보하기 위해 파리 퐁텐블로의 오세나 경매소에 직원을 급파했다.”

_이 일로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 상위권에도 올랐다.

“나폴레옹의 도전 정신만 생각하다 보니 관심의 대상이 될 줄은 몰랐다. 개인이나 회사의 마케팅 용도로 생각하지 않았다. 요즘은 모자를 어디에 놓을까 행복한 고민 중이다. 사실 집에 둘까 했는데 일이 커져 버렸다(웃음). 내년에 서울 논현동에 완공하는 하림그룹 본사에 전시할 계획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보고 긍정적인 사고를 배울 수 있도록 공개 장소에 전시하는 것이 하나의 큰 사회 기부가 될 것이란 생각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일찍 장사를 한 김 회장은 자신만의 경영철학이 뚜렷하다. 특히 그는 차별적 규제 해소를 한국 경제의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하림도 내년부터 대기업집단에 속하게 돼 상호출자와 채무보증 제한 등 각종 규제 대상이 된다. 이를 의식한 듯 그는 국내 각종 규제에 대한 불만을 작정한 듯 쏟아냈다.

_대기업 집단 편입으로 각종 규제를 받게 됐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갈수록 규제가 많아 아주 부담스럽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최대 65%여서 가족기업이 나오기 어렵고 기업이 단절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카길 같은 장수기업이 나오기 힘들다. 세계적으로 장수기업이 많은 독일의 경우 기업 상속 후 7년 이상 운영하면 100% 상속세를 면제해 준다고 알고 있다.”

_상속 규제 철폐가 기업 환경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뜻인가.

“독일은 히든 챔피언으로 불릴 만한 80~100년 된 장수기업이 1,300여개다. 전 세계 2,700개 히든 챔피언 중 절반이 독일 기업이다. 독일에는 대기업을 옥죄는 정책이 없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 비중이 99.8%다. 중견그룹 이상은 0.2%에 불과하다. 독일은 중견ㆍ대기업 이상이 9.5%, 이하가 90.5%다. 대동맥(대기업), 동맥(중견기업), 모세혈관(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해줘야 인체의 기능(경제)이 정상 작동할 수 있다. 우리는 모세혈관이 99.8%인 반면 대동맥이 0.2%인 셈이어서 아무리 경제정책을 잘 써도 중소기업까지 온기가 내려가지 않는 구조다.”

-앞으로 계획은.

“내게 새로운 사업이란 새로운 게 아니다. 모두 연결된 사업일 뿐이다. 병아리 10마리를 100마리, 1,000마리로 늘렸고 곡물과 해운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처음에 팬오션 인수를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원래 내 사업은 반대가 많다. 하림이 곡물 유통회사로 국제 경쟁력을 지니려면 최소 2, 3세대는 거쳐야 가능하겠지만 일단 내 세대에 어느 정도 토대를 다지는 것이 목표다.”

허재경기자 ricky@hankookilbo.com

김소연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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