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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정신건강 관리시스템은 신기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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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정신건강 관리시스템은 신기루다”

입력
2018.08.06 22:01
수정
2018.08.0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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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정신병 분야 세계적 석학’ 패트릭 맥게리 호주 맬버른대 교수 기고

'초기 정신병 분야 세계적인 석학' 패트릭 맥게리 호주 맬버른대 교수
'초기 정신병 분야 세계적인 석학' 패트릭 맥게리 호주 맬버른대 교수

최근 치료를 중단한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경찰관이 사망하는 등의 사건으로 사회적 안전에 대한 우려 및 지원ㆍ관리 필요성이 제기됐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에서 퇴원하는 정신질환 환자의 지속적 치료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다.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선진국의 하나가 바로 호주다. 호주는 1992년부터 정신보건시스템 개혁에 앞장 서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정신질환이 발병하는 초기부터 관리를 강화해 만성 정신장애로 가는 것을 예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호주는 2011년부터 4,000억원을 들여 정신건강조기중재센터를 설립했고, 2조원을 들여 정신보건개혁을 시행 중이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호주도 내부적으로는 문제점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호주 국립청년정신건강센터 ‘오리진(Orygen)’ 센터장인 패트릭 맥게리 맬버른대 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지난 달 23일 호주 일간 ‘헤럴드’에 기고한 글을 보면 우리의 정신보건시스템은 얼마나 부족한지 실감하게 한다.

맥게리 교수는 ‘헤드 스페이스(호주의 100여개의 청년 특화 정신건강센터)’ 모델의 핵심 설계자다. 그는 초기 정신병과 청소년 정신 건강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는 조기 정신병 예방 및 중재센터(Early Psychosis Prevention and Intervention Center) 모델을 기반으로 한 전국적인 초기 정신병 프로그램의 설립을 주창했다. 그는 호주 과학아카데미(Australian Academy of Science), 호주 사회과학아카데미, 정신건강연구협회 회장, 조현병 국제연구협회(Society of Mindship Research) 의장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다음은 패트릭 맥게리 교수의 기고문 전문.

“호주에서는 매일 8명이 자살한다(우리나라는 하루 36명, 2016년 기준). 자살자들이 불치병에 걸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이 전문적인 치료와 지원을 받았다면 자살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호주 보건시스템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자살은 빙산의 일각이다. 400만 호주인(우리 국민은 1,000만명)이 매년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정신질환은 대부분 다른 가족에게 영향을 미친다. 호주에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69만명(우리나라는 150만명)이다. 장애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NDIS(국가장애보험계획)를 이용하는 사람은 10%도 되지 않는다.

정신질환 치료비는 전체 건강비의 15% 정도로, 심장병, 암 치료비와 비슷하다. 하지만 정신질환 치료 예산은 겨우 5%(우리나라는 3%)밖에 할당되지 않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은 정신질환의 직ㆍ간접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4%로 추정한다. 암, 당뇨병 및 만성 호흡기질환을 합친 것보다 높은 수치다.

역설적으로 우리(호주) 사회가 정신질환에 대해 심각하게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낮은 정신질환 인식으로 정신건강 관리체계를 적절히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문제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게 장애물이라고 많은 사람이 입을 모은다.

나는 뉴캐슬의 낡은 수용시설에서 정신의학수련을 받았다. 하지만 수용시설은 점점 없어졌다. 정부는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헌신짝처럼 약속을 저버렸다. 정부는 지역사회 정신건강관리에서 손 떼고 투자를 중단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정신질환 때문에 위기상황에 처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정신질환자는 응급실로 밀려들었고, 거리와 감옥은 이들로 넘쳐났다. 응급실은 정신질환자에게 적합한 곳은 아니다. 초조하고, 자살충동을 느끼고, 정신병적 상황을 겪는 정신질환자들은 응급실에서 우선 치료순위에서 밀린다. 치료가 늦어지면서 그들은 더 초조해하지만 대개 강제로 억제되고 진정된다.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지만 상처 받거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간다.

뉴캐슬에 거주하는 케리 매튜스가 두 아들을 자살로 잃은 비극적인 사건이 상징적인 이야기이다. (정신질환을 앓는) 수십만의 호주인은 응급 치료를 받을 정도로 아프지는 않지만 1차 진료만 받기에는 심각한 중간지대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헤드 스페이스(head spaceㆍ호주의 100여개의 청년 특화 정신건강센터) 네트워크로 구축된 베이스캠프가 있어도 (정신건강의 취약 연령대인) 25세 이하 청년들은 많은 장애물을 직면한다. 헤드스페이스의 1차 진료 서비스를 받으려면 너무 힘들어 40%의 젊은이는 전문가를 만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전문치료를 받지 못한다. 이러한 건강관리시스템은 신기루와 같다.

청소년과 청년시절 정신적으로 더 많이 아플수록 30대 성인이 돼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수입이 적거나 복지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살이나 질병으로 수명이 20년 정도 단축된다. 암과 심혈관질환은 일반적인 조기 중재와 연속적인 치료를 받고 있지만 정신건강영역은 그렇지 못하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국가정신건강위원회(우리나라는 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는 정신건강관리시스템을 만들고, 응급실로 향하는 정신질환자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한 근본적인 투자인 ‘단계적 관리’ 모델을 제안했다.

이것은 어떤 모습일까? 모든 지역사회가 정신질환에 낙인을 찍지 않고 전문 정신건강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허브를 만들어 여러 전문가(의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건강 전문가, 중독 전문가, 24시간 가동되는 가정방문팀)로 구성된 협력팀을 운영해야 한다. 생애 주기에 맞춰 아동, 청년, 장년, 노인을 위해 1차 진료와 적절한 통합체계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가? 답은 정치적 의지다.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대중이 자신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Every Australian Counts(모든 호주인은 중요하다)’ 캠페인은 NDIS(국가장애보험계획)가 자금 지원하도록 하는데 일조했다. 1명의 정신질환자는 10명이 넘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 호주인은 정신질환자들의 공정 대우 요구에 대체로 침묵했다.

'정신건강을 위한 호주인(australiansformentalhealth.org.au)'은 정신질환을 앓는 호주인들을 위한 개혁과 건강관리 형평성을 확보하기 노력하는 자선단체다. 정신질환에 관한 생생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이를 이끈다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참여가 선거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 목소리를 높이고 양질의 정신건강 관리를 요구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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