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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북한의 철도 ②

입력
2018.07.0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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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비롯한 사회간접자본은 경제발전의 필수조건이다. 해방 당시 북한은 경제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철도 총연장은 남한보다 장대 조밀했고, 인구 1인당으로는 일본 본토보다도 길었다. 남한에 비해 북한의 전력생산은 6배, 일인당 발전능력은 11배로서 일본 본토를 능가했다. 무연탄, 중석, 금은, 철, 마그네사이트, 중정석, 운모, 우라늄 등의 광물자원도 북한에 압도적으로 많이 분포했다. 실제로 북한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중화학공업지역이었다. 이런 북한이 70년 후 왜 남한에 철도개선을 요청할 정도로 비참해졌는가?

먼저 경제정책의 방향을 잘못 설정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1962년 8월 8일 이렇게 천명했다. “도시에만 공장을 집중시켰다가는 일단 유사시에 그것들을 옮기기도 힘들고 적의 공습이나 당하면 한꺼번에 다 마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 나라 방방곡곡에다 지방산업 공장들을 건설하여 놓으면 전시에 도시의 중앙공업이 마사져도 능히 먹고 입는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김일성저작집’ 16, 1982)

북한에서 수령의 교시는 금과옥조다. 6ㆍ25전쟁의 피해에 혼쭐난 김일성은 군 단위 자립경제노선을 추구했다. 이에 얽매인 북한의 폐쇄경제체제는 곧 철도의 발달을 저해했다. 각 군이 자급자족하는 경제구조를 갖추면 상품이나 인간의 이동은 대부분 군내에서 이루어지므로 원격지 간 교통망은 정비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각 군이 자기 지역에서 원자재를 조달하여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확대판인 국가차원의 자립경제노선도 성공한 사례가 없는 게 역사의 진리다.

게다가 북한은 철도를 주(主), 도로를 종(從)으로 삼는 교통정책을 표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이 중장거리 교통체계를 철도에서 도로로 전환한 것과 반대방향이었다. 북한은 자동차운행에 필요한 석유수요를 억제하여 대외의존도를 낮추고 싶었다. 다행히 북한에는 일제가 부설한 철도망이 상당히 존재했고, 열차운행에 필요한 석탄도 무진장이었다. 또 국내에 전기가 남아돌아 주요 노선을 전철로 교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북한이 철주도종(鐵主道從)의 교통정책을 추진한 데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었다. 철도는 개인의 이동을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반면, 도로는 개인의 이동을 비교적 자유롭게 만든다. 열차는 고정된 선로 위를 달리고 정해진 역에만 서는데 비해, 자동차는 가변(可變)의 도로 위를 달리고 아무데서나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북한은 인민의 이동을 통제하는 차원에서 철도위주의 교통체제를 강고히 유지했다. 그 결과 북한은 1970년대에 벌써 물자의 배분과 유통에서 심각한 경색국면을 맞았다. 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불평불만을 토로했다.

“온천군 같은 데서는 올해에 쓸 비료를 지금 겨우 소용량의 20% 밖에 받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군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그러므로 철도를 비롯한 모든 수송수단을 총동원하여 4월말까지 비료수송을 끝내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1975.3.31., ‘김일성저작집’ 30, 1985)

“지금 철도부 일군들도 일을 주인다운 립장에서 책임적으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철도운수 부문에서 석탄을 비롯한 원료, 자재를 제때에 실어다 주지 못하여 공장, 기업소들에서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농촌에 비료 같은 영농물자도 제대로 실어다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1980.3.5. ‘김일성저작집’ 35, 1987)

북한에서는 오로지 수령만이 현실을 비판할 수 있다. 김일성의 독려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에서는 1970년대부터 철도가 물자를 제때 수송하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자립경제노선과 거주이동통제가 상호작용하면서 철도교통을 부진의 늪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북한이 외국의 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여 경제를 발전시키기보다는 인민의 일상과 사상을 통제하여 체제를 존속시키는 데 중점을 둔 결과 철도를 비롯한 교통체계가 붕괴된 것이다. 따라서 남한이 북한철도를 개량(improve)하거나 개축(rebuild)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북한이 폐쇄경제체제를 버리고 인력, 상품, 자원 등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개방경제체제로 전환해야만 북한철도는 비로소 기사회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수령이 경제를 발전시켜 국민을 윤택하게 만드는 쪽으로 국가운영을 확 바꿔야 한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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