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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한민국의 노동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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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한민국의 노동은 울고 있다

입력
2015.12.1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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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

한국의 노동은 고달프다. 작년 한 해 한국의 취업자들은 연간 2,124시간을 일했다. 2013년보다 45시간이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770시간이니 하루 8시간 기준으로 치면 44일 더 일했다.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독일에 비하면 94일을 더 일한 셈이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1년도 일하지 못하고 직장을 떠난다. 반면 10년 이상 일하는 경우는 다섯 사람 중 한 명꼴로 적다. 일하는 동안 매년 2,400명 정도가 죽고 9만여명이 다치거나 병든다. OECD 1위이다.

한국의 노동은 가난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시간당 5,580원의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여덟 명 중 한 명이다. 김유선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시간당 6,000원을 기준으로 잡으면 그 수는 세 명 중 한 명이고 그 중 절반은 가계를 책임진 사람들이다. OECD 발표로도 우리나라 저임금 근로자의 비중은 부동의 1위다. 우리나라의 노동은 일해도 가난하다. 방법은 오래 일하는 길밖에 없다.

한국의 노동은 희망이 없다. 임금이 반밖에 되지 않는데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세 명 중 한 명꼴이다. 번듯한 기업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일하지만 사실은 파견되었거나 용역업체 소속인 소위 간접고용이 170여만명, 열 명 중 한 명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는 세 명 중 한 명으로 더 많다. 청년 네 명 중 한 명은 아예 일터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고 혹 중소기업으로 취업하면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만 받는다. 거기서도 여성이라면 남성에 비해 3분의 1은 덜 받는다. 55세 이상이 되어도 절반은 일한다. 그렇게 일해도 65세 이상의 절반은 가난하다.

한국의 노동은 외롭다. 노동자 스스로 노동을 지킬 수 없다. 노조에 가입한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을 행사하기가 너무 어렵다. 잘 못하면 국민적 원성은 그렇다 해도 손해배상소송으로 거덜난다. 경영권이나 정부 정책은 교섭의 대상이 아니다. 불법의 덫은 사방에 있다. 국가도 노동하는 이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전체 일하는 이들의 절반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가입해도 180일 이상 보험료를 냈어야 하고 해고를 당해야 내가 냈던 보험료에서 급여를 탄다. 그래서 세 명 중 한 명만이 실업 전 임금의 3분의 1 정도를 네 달 받는다. 그 후에는? 국가도 모른다.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을 내려도 수많은 불법파견은 여전히 그대로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일면이다.

그래서 노동은 슬프다. 노동이 기쁘지 않다. 노동을 통해 삶이 살아가지지 않는다. 노동으로 삶을 지키려면 양심, 자존심, 인간다움, 가족, 시간을 버려야 한다.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산다.

이런 ‘무너진’ 노동 앞에서 다시 노동은 개혁 대상이란다. 기간제를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고령자와 전문직엔 파견인력을 완전히 허용하자고 한다. 성과가 낮은 자라고 규정해 버리면 정규직도 언제든 해고 가능하게 하잔다. 불호령을 내리는 대통령은 모든 것이 ‘기-승-전-노동개혁’이다.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점점 늘어 500조까지 쌓여있다. 세금과 보험료, 임금으로 이를 푼다면?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대신 주당 52시간이 넘지 않게 하면 20만명 이상이 취업할 수 있다. 청년 고용 할당 5%를 실시하면 매년 10만명 이상 청년이 일자리를 얻는다. 세금으로 거두어 정부가 복지 분야의 일자리로 OECD만큼 하면 100만명 이상이 취업된다. 과연 개혁과 변화의 대상은 누구인가?

자본을 사회적 이익에 복속하도록 하는 것, 그건 결코 위험한 반자본주의의 발상이 아니다. 국민이 다 같이 잘 사는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선 오래 전에 선택한 국가 전략이었다. 노동과 자본이 적절히 공존하는 것이 복지국가의 요체다. 지금 대한민국의 노동은 울고 있다. 현재로는 스스로도, 그 누구도 그 눈물을 멈추게 할 가능성이 없기에 더 슬프다.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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