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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수면 아래 세월호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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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칼럼] 수면 아래 세월호를 바라본다

입력
2014.04.2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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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말을 생각한다. 깃털 하나가 낙타의 등을 꺾는다. 힘 좋고 튼튼한 낙타지만 많은 짐이 실리다 보면 마지막에 얹은 하나의 깃털 때문에 등이 부러져 주저앉게 된다. 얼마 전 이를 인용한 적이 있다. 올해 초(2월 17일) 경주 마오나리조트 체육관이 붕괴되어 부산외국어대 신입생들이 사망했을 때였다. 붕괴의 직접 원인이었던 ‘폭설과 관리소홀’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하필, 그때’라는 안타까움이 없도록 ‘깃털과 같은 만에 하나’를 염두에 둔 안전규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세월호 침몰에 대해 합동수사본부가 원인을 공식 발표했다. 과도한 오른쪽 급선회, 화물적재 잘못, 복원력 약화, 이 세가지를 지적했다. 합쳐진 세가지 원인이 침몰의 원인이었다는 결론은 이 중 하나라도 승객안전을 염두에 두고 정상 상태에 있었다면 적어도 이번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급선회는 선원들의 운항, 화물적재는 선급회사와 해운조합, 복원력은 선박회사 등과 직접 연계되어 있다. 급선회를 야기한 선원들의 문제만 보더라도 많은 이유들이 깔려 있음이 뚜렷이 드러났다. 그렇게 확인된 많은 이유들 가운데 한두 가지만 정상적인 모습으로 이뤄졌다면 세월호가 급선회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화물적재와 복원력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많은 이유들이 빠짐없이 비정상이었기에 하나의 원인이 생겨났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세가지 원인 역시 비정상일 수밖에 없었기에 참사로 이어졌다.

참사의 세가지 원인을 야기한 많은 이유들, 이들 하나하나에도 허다한 핑계와 구실, 관행과 타성이 없을 수 없다. 결국 세월호 참사가 세가지 원인으로 정리됐지만, 그 원인을 만든 이유들은 3의 몇 제곱 가지가 될 것이고, 그 많은 이유들이 생겨난 토양에는 다시 몇 제곱 가지의 잘못과 부조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거대한 다단계판매조직처럼 원인과 이유와 핑계들이 피라미드 형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번져있다는 의미다.

여객선의 경우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다. 버스나 지하철, 열차나 항공기 등 많은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교통수단도 다르지 않다. 호텔과 백화점, 합숙소나 공연장 등 공중이용시설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그 동안 ‘운이 좋아서’ 불행한 사건을 요리조리 피할 수 있었던 셈이다. 시한폭탄을 깔고 앉아, 옆에 두고 살아간다는 말들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등이 부러져 주저앉은 낙타 옆에서 마지막 깃털을 누가 왜 얹었는가를 묻는 일은 물론 빠트릴 수 없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일은 누가 왜 그러한 상황에 이르도록 했는지를 따지고 책임과 의무를 확인하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 언뜻 살펴본 것만 해도 주변의 모든 낙타들이 ‘깃털 한두 개’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임이 확인됐다. 한두 개의 깃털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어느 낙타의 등에라도 얹혀질 수 있다. 국가와 사회 전체에 대한 개조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저 아래에서부터 퍼져나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 안보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없으며, 청와대가 앞장서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는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전체의 한 귀퉁이에 불과한 선수(船首)바닥만 드러낸 채 한 동안 누워있었다. 사진과 화면에 보인 것은 그것이었지만 온 국민의 시선은 수면 아래 잠겨있는 객실과 그 안의 움직임에 쏠려 있었다. 지금은 두 개의 튜브만이 물 속의 흔적을 기억시키고 있으며, 얼마 후면 그것마저 없어질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시선도 국민과 함께 ‘수면 아래 객실’로 향해야 한다. 세월호가 물 속에 잠겼다고 잔잔한 해수면만 훑고 다녀서는 안 된다. 깃털 몇 개 덜어냈다고 등이 부러져 주저앉은 낙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는 없다. 도처에 흩어져 있는 낙타들의 등짐을 새로이 점검하는 일에 국가의 존재 이유가, 박근혜 정부의 향후가 달려있다. 열흘 내내 분노의 마음으로 사건 현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모든 국민들은 이제 충혈된 눈으로 정부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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