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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는 남이다

입력
2017.02.2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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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내년에 성인이 된다. 그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제가 알아서 해야 한다. 아이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내년 1월 1일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 날 샴페인을 터뜨리고 축하 파티를 할 거다. “이제 우리는 남이다!”

그렇다고 인연을 끊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성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부모에게 기대지 말라는 거다. 대학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학비의 일정 부분은 알아서 벌었으면 좋겠다. 워낙에 학비가 비싸지만 아르바이트를 좀 해서라도 보태 주는 게 도리다. 대학을 졸업하면 돈 달라고 손 벌리는 건 그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엊그제 한 젊은이의 결혼식에 갔을 때 그가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빠가 신혼 집 살 때 보태주질 않아서 고생했다.” 참 이상하다. 왜 인생의 시작부터 60 ㎡ 방 두 개가 있는 아파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떤 국회의원의 딸이 아니고서야 20대 때 누가 할아버지의 용돈만으로 2억원의 전세금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사랑한다면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원룸에서 시작할 수 있다. 다행히 나는 한 때 사랑을 알았는데 그때는 어디에 사는가보다 누구와 함께 사느냐가 훨씬 더 중요했다. 사랑보다 허세가 강한 사람만이 “요즘 누가 그렇게 신혼을 시작하느냐”고 반문한다. 나는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아들에게 말하곤 한다. “결혼할 때 집 같은 거 사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마라.”

결혼식 자체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문제다. 나는 특급호텔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결혼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입고 바로 돌려 줘야 하는 예복과 30분 만에 거둬 가는 꽃과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동영상 제작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는 것도 우습다. “일생에 한 번이니까”라고 말하지 마라. 주위에는 일생에 두 번, 세 번 결혼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식을 올리는 데 수천만 원이 들어간다는 건 넌센스다. 세상에서 제일 쓸 데 없는 것 중 하나가 상견례라는 거다. 한 마디로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데, 이거 하다 파토 나는 커플이 꽤 있다. “결혼하면 며느리는 우리 교회에 다녀야 한다”부터 “혼수가 적네 많네” “신혼집이 크네 작네”까지 사랑의 결실을 위한 소통이 아니라 가문의 영광이 걸린 거대 비즈니스 협상은 종종 결렬 선언으로 끝난다. 나는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아이에게 세뇌시킨다. “무조건 작은 결혼식이다.” 심지어 나는 “작은 결혼식과 원룸을 받아들이지 않는 여자랑은 결혼할 생각을 말라”며 벌써부터 꼰대 짓을 했다. 내가 말하기 전에 아들이 먼저 “우리는 남이우!”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최근에 종신보험까지 깼다. 죽은 뒤 천금이 무슨 소용이랴. 해지금으로 여행을 갈 거다. 밥벌이는 절벽 같다. 빈약한 탄약으로 인해전술의 적을 맞다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종종 꾼다. 6세기경 인도의 위대한 브라만인 샹카라에 따르면, 모름지기 남자의 인생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태어나서 25세까지는 ‘학생’이다. 스승을 찾고 학문을 익혀야 한다. 진리와 도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스물다섯부터 쉰 살까지는 ‘가장’이다. 가정을 돌보고 가정을 위해 재산을 모아야 한다. 당연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등골이 휘도록 일하는 게 맞다. 하지만 오십이 되어 자식들이 또 다른 가정을 이루면, 남자는 숲으로 간다. 처자식도 친구도 필요 없고 더 이상 돈도 중요하지 않다. 50년 세월 동안 잊었던 자기를 찾아 떠나야 한다. 옆에서 아내가 묻겠지. “나는?” 구도를 위해 떠나는 사람이 어찌 세간의 인연에 얽매이랴? 우리는 남이라니깐. “아, 됐고, 애 학원비나 빨리 부쳐요.” 내가 빌빌거리던 10년 동안 가장 노릇을 했던 그녀의 한 마디에 나는 재빨리 입금을 한다. 샹카라여, 나는 언제나 숲으로 떠날 수 있을까?

명로진 인디라이터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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