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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로봇보다 못한 인간 기자

입력
2014.11.0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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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면제를 위해 고의로 발치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무죄 판결을 받았던 가수 MC몽이 5년 만에 돌아왔다. 신곡은 음원 차트에서 수위를 차지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분노했다. 이들이 MC몽의 신곡을 차트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군가인 ‘멸공의 횃불’을 집중 검색하자, 멸공의 횃불이 실제로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라갔다.

내 주의를 끈 건 그 다음 벌어진 일이었다. ‘멸공의 횃불’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자 이 키워드를 제목에 넣은 기사가 쏟아졌다. ‘실검 낚시’가 시작된 것이다. 이중 한 기사에는 “MC몽의 컴백곡 멸공의 횃불이 화제인 가운데”, “MC몽은 ‘멸공의 횃불’ ‘내가 그리웠니’ 등이 수록된 앨범으로 컴백했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군가가 MC몽 신곡으로 둔갑한 것이다. 사안의 맥락조차 모르고 쓴 기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마지막 문장은 ‘MC몽’과 ‘멸공의 횃불’이라는 키워드를 무려 네 번이나 반복해 넣은 ‘네티즌 반응’으로 마무리됐다.

머릿속에 하나의 실루엣이 떠오른다. 벽 앞에 일렬로 나란히 놓인 책상. 그 위에 모니터와 키보드가 있다. 벽을 보고 앉은 아르바이트, 인턴기자, 계약직 기자, 닷컴 기자… 이들의 직책은 다양하다. 그러나 네티즌에게는 ‘기레기’라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네이버에 실시간 검색어로 배우 A의 이름이 떴다. 키워드를 클릭한다. “A가 B프로그램에 출연해 ~라고 말해 화제다”로 시작하는 기사들이 벌써 올라왔다. 복사한다. 편집기를 연다. 맨 윗줄은 키워드를 그냥 나열한다. 아까 복사한 기사를 붙인다. 조사나 어미를 살짝 바꾼다. 마지막 줄은 “네티즌은 ~라는 반응을 보였다”로 마무리한다. 기사를 송고한다. 바로 트래픽이 유입된다.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다. 불과 몇 분 만에 포털 검색 결과 첫 페이지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방금 쓴 기사의 제목과 내용을 조금씩 바꿔서 또 올린다. 옆에 앉은 동료는 다른 키워드로 실검 기사를 쓰고 있다.

실검 낚시가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에 앞서, 이러한 노동행위를 해야 하는 당사자의 정신과 영혼이 걱정된다. 사회의 부조리를 캐 내고 비판하는 멋진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에서 언론사 인턴으로 지원했는데 영혼 없는 로봇처럼 이런 업무만 한다고 호소한 실제 사례가 미디어 전문지에 보도된 적도 있다.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매체 기자는 회사에서 징계를 받은 후 이슈팀에 배치돼 이 같은 업무만 반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자의 모친은 “아들을 ‘기자’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관심 있고 궁금해 하는 사실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저널리즘의 본질이다. 그러나 아무런 취재 없이 같은 내용을 수십 개씩 찍어내는 것은 언론사가 할 일이 아니다. 인터넷 공간을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일이고 그런 기사를 쓰는 사람들에게도 못할 짓이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것 안다. 해묵은 얘기를 왜 지금 꺼내느냐고 오히려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닷컴 출범 후, “반칙 없는 뉴스, 누가 못 해서 안 하냐? 너희들 그렇게 폼 잡으면 돈 못 번다”고 말했던 타 언론사 선배도 있었다.

하지만 낚시로 트래픽을 늘리고 수십개 광고를 붙여서 당장의 수익을 좇는 방식이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수 있을까? 네이버가 ‘뉴스캐스트’에서 ‘뉴스스탠드’로 초기화면 뉴스 정책을 바꾸자마자 언론사 사이트 트래픽이 폭락했던 것처럼, 낚시에 의존하는 사이트는 플랫폼 사업자의 정책 변경 하나에 운명이 바뀔 수 있다.

적어도 사람들이 다 아는 이름의 언론사라면, 겨우 3명만 있어도 당장 창간할 수 있는 수백 개의 낚시 전문 매체와 경쟁하며 더 많은 낚시기사를 송고하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한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주제를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남 다른 방법을 연구하고, 저널리즘의 기본에 충실한 보도를 통해 매체의 신뢰도를 높이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아 다양한 실험을 해 나가야 한다.

해외에선 진짜 로봇(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간 기자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기사를 생산하고 있는 시대다. 사람이 로봇보다 못한 수준의 기사를 쓰고 있기엔 시간이 없다.

최진주 디지털뉴스부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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