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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조직노동, 재도약을 위한 깊은 성찰을

입력
2017.03.2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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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노동, 영어로 ‘organized labor’는 사회과학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다. 노동자들이 조직을 결성하여 하나의 대오를 형성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진화과정에서 자연스런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물론 결사의 자유가 자연스러운 권리로 인정받기까지 역사속의 노동자들은 격렬하게 투쟁했고,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그 힘을 가지고 노동과 삶의 안정적인 연계를 도모하기 위해, 사회 내에 다양한 제도들을 주창하고 꾸리는데 결정적인 힘을 보탰다.

한국의 노동운동도 그 사이 적지 않은 성취를 거두면서, 우리 사회의 실질적 발전을 위해 적지 않게 기여했다. 특히 민주화 과정에서 지난 80-90년대에 분출한 자주적 노동운동의 목소리, 그 역할과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그 결과 우리네 생업현장에서 노동조합은 조직, 교섭, 파업이라고 하는 현대적 노사관계에서 필요로 하는 일련의 기초자원을 확보한 제도화된 기구로 자리매김해 있다. 독일식 공동결정제와 같은 ‘타협된 계급질서’가 기업경영과 현장의 작업장에서 원활히 작동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정상적인 노조가 있는 일터라면, 사용자의 전횡적, 일방적 의사결정이 지배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조직율 10%의 정체기가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모습은 노동운동의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말해 준다. 현행 법률체계는 노동조합 결사의 자유를 충분히 향유할 수 있을 정도라고 국제적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고,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가입한 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약도 아직 비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게 다른 나라에 비해 더 까다롭다는 말이다.

지난 20년간 심화된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내지 양극화는 노동운동을 더 어렵고 딜레마적인 상황으로 몰고 왔다. 민간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자리잡은 노동조합에 의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정당한 산업행동(industrial actions)을 통해 얻어진 성취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보다 오히려 부추기는 결과를 의도치 않게 초래했다. 노동조합마저 정규직 특권 패키지의 일부로 생각되며, ‘사회적 질투‘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최근 늘어나는 서비스 부문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 지는 디지털 경제화의 경향과 맞물려서, 점점 더 ‘허접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 새로운 영역들에도 분명 노동을 매개로 한 비즈니스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안에서의 계약관계는 ‘고용’인 듯하기도 하고 아닌 듯하기도 한,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들이 발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따라가기에 당연히 벅차고 낯설다.

바야흐로 한국은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측면 등 모든 면에서 대전환이라고 할 만한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이는 조직노동에게도 새로운 의미와 각오를 다질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한다. 많은 왜곡된 시선들과 무관하게, 한국의 노동조합은 분명 우리 사회에서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할 권력자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조직노동은 노조권력의 새로운 행사방식을 발본적으로 고민해야 하며, 먼저 현실에 대한 과감하고 깊은 자기성찰부터 할 것이 요구된다.

혹시 결사의 자유가 덜 보장된 지금의 상황이 노조의 특권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고, 노조는 그것을 암묵적으로 즐기고 있지는 않은가? 사업장에서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막고 일감을 조금이라도 더 따서 그들이 길게 일할 수 있게 하고 임금교섭에서 혁혁한 공을 발휘하여 임금인상률을 높이는 식의 기업단위 조합주의의 우물 안에 여전히 웅크려 지내고 싶은 건 아닌가? 노동자들의 연대를 어렵게 만드는 다양한 새로운 고용관계들의 전개가 일터 안팎에서 진행되더라도 일단은 다른 세계의 한가로운 일로 간주해 놓고 노조활동을 논하는 것은 아닌가?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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