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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한 미디어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5가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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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한 미디어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5가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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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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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컴퓨터 기술로는 인간을 달로 보냈는데,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이 더 좋아진 성능의 기계와 네트워크를 가지고 140자 잡담이나 나누고 있다”는 온라인 우스개가 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해도 우리는 그저 일상적인 사회의 모습으로 환원될 뿐이라고 비관하기에는, 미디어 기술이 더 나은 사회에 기여하는 매력적인 모습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한 해 동안 벌어진 그런 모습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미국 인종차별시위 중 흑인을 껴안은 백인 경찰.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인종차별시위 중 흑인을 껴안은 백인 경찰. 한국일보 자료사진

● 브라질, 인터넷헌장 제정하다

인터넷 강국이라고 하면 흔히 통신망 속도, 업무 활용도, 서비스산업 규모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사회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인터넷을 사용하는 정보 생활을 얼마나 기본권으로 인정해주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09년 처음 제안되고 올해 결국 만장일치로 정식 입법된 브라질의 인터넷 권리헌장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헌장은 인터넷 망중립성, 정보중개자 면책, 사용자 권리의 일반 원칙, 정부의 진흥정책이 지향해야 할 공익적 방향성 모두를 일관된 틀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처음부터 폭넓은 온라인 일반참여로 의견을 수집해 다듬어낸 개방형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규율하는 것은 국제적 속성, 시민권 행사, 다양성, 개방성, 자유경쟁 등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무언가를 추진하는 기본 원칙으로는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 개인 데이터 보호, 망중립성, 망의 안정, 참여적 속성의 증진 등을 천명하고 있다.

미디어 기술 변화를 쫓아가기에 바빠서 기존 법안들을 누더기 땜질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의 속성을 근간에서부터 반영한 이 법은, 인터넷의 당초 지향점과 현재를 구체적으로 반영한 진취적 틀거리로서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브라질의 인터넷 헌장은 미디어기술이 더 나은 민주제에 기여할 수 있음이 국가제도로 온전히 받아들여진 중요한 사례다.

● 인도 시민저널리즘, 디지털상 수상

올해 구글 디지털사회운동상을 수상한 것은 미 정부기관의 정보 감시 폭로로 세계를 뒤흔든 스노든이나 여느 정치적 격변기의 조직가가 아니라, 인도의 시골 지역을 대상으로 한 시민뉴스 프로젝트를 창안한 슈브란슈 초우다리였다.

인도는 국토와 인구가 방대한 다민족국가라서, 시골에 거주하고 소수민족 언어로 생활하는 주민들은 지역 현안들을 함께 숙고할 수 있는 발언 통로나 정보력이 부족할 때가 많다. 즉 더 나은 민주제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인 중 하나인, 공공사안 참여를 위한 개개인들의 기본적인 합리적 판단에 한계가 생기는 것이다.

초우다리가 만든 ‘시지넷 스와라’ 프로젝트는 시골 방방곡곡에 전국적 방송국을 새로 차린다거나 하는 거창한 접근이 아니다. 이미 어디에나 깊숙하게 보급된 핸드폰 매체를 고스란히 활용하여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로 소식을 보내고, 또한 여러 뉴스를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로 번역 제공받아 듣는다. 중간에 업체의 활동가들은 소식의 내용을 검토하고, 번역을 주선한다.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는 문맹자들도 얼마든지 편하게 함께 할 수 있다.

혁신이란 반드시 새로움에 대한 집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스와라의 기본 발상은 옛 단파 라디오 운동과 맞닿아있고 활용하는 매체 양식은 전화기 음성메시지다. 지금 그 사회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가능한지를 정확하게 포착할 때, 미디어기술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새로운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 미국 소셜미디어, 인종차별 이슈화

미국에서 흑인 차별은 단순히 피부색에 대한 명시적 차별이라기보다는 계층 갈등, 지역 인구 편성, 사회문화적 편견 등이 결합된 것이기에, 전선을 긋는 방식으로는 사회이슈화가 쉽지 않다. 그보다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일상적으로 파고든 인종차별 인식을 제대로 표면화하여, 적어도 비무장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경찰이 기소조차 되지 않는 것이 가능한 현실을 문제 삼는 좀 더 어려운 현실 직면 캠페인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경찰이 비무장 흑인 소년을 사살한 퍼거슨 사태를 매개로, 거리 시위와 함께 소셜미디어상에서 활발하게 그런 캠페인이 진행됐다. 그 중 가장 널리 공감을 얻은 사진 가운데 하나가 프리랜서 사진가 조니 니구옌이 찍은, 백인 경찰이 눈물 고인 열두 살 흑인 소년을 포옹하는 장면이다. 이 사진은 단순히 백인 경찰을 악마화하거나 흑인들을 파괴분자로 모는 것이 아니라 인종평등 국가라면 당연히 이렇게 서로를 감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사회 개선을 위한 참여에 나서도록 유도하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해시태그 운동은 소셜미디어상에서 표어를 널리 뿌리며 사안에 대한 관심을 모으는 방식이다. 관심을 구걸해 내실이 부실한 경우도 적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퍼거슨 사태에서는 대단히 유효한 캠페인이 되었다. 거리 시위, 시민단체의 압력활동 등 여타 구체적 행동과 연동되기 쉬운 사건이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관심을 환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심이 곧 문제의 해결인 것은 아니지만 해결을 위해 관심은 필수다.

● 전세계가 양동이를 들어올렸다

올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머리에 얼음물을 부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로 명명된 이 행사에서 결국 가장 유행한 형식은, 스스로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고 다른 사람 세 명에게 당신도 한번 해보라고 지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루게릭병 연구재단에 일정한 금액을 기부한다. 이 행사는 각계의 스타급 유명인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세계적 유행이 되었다.

그런데 세계에는 사회적 관심과 모금이 더 급하게 필요한 다른 과제가 있는 곳도 있고, 양동이를 쏟는 것이 부적절할 정도로 물이 귀한 곳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 운동은 여러 지역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분화되었다. 인도 케랄라 지역에서는 묘목을 심고 다른 이들에게 도전과제를 던지는 ‘마이트리 챌린지’가 비슷한 형식으로 생겨났고, 어떤 곳에서는 양동이에 쌀을 한 가득 담아 필요한 이웃에게 기부하는 ‘라이스 버킷 챌린지’가 만들어졌다. 이스라엘의 폭격을 당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시민들은 ‘러블 챌린지’를 열어서 물 대신 폐허가 된 자신들의 집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퍼포먼스를 했다. 맥락에 대한 충분한 공감도 없이 다른 나라의 놀이를 맹목적으로 고스란히 복사하는 껍데기 유행이 아닌, 건설적 복제의 모습들이다. 이런 캠페인이 가능했던 바탕이 유튜브 같은 동영상 서비스와 각종 소셜미디어였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홍콩 '우산 혁명' 민주화 시위 확산. 우산혁명 플래카드. 홍콩=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홍콩 '우산 혁명' 민주화 시위 확산. 우산혁명 플래카드. 홍콩=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 모바일 분산 연결, 홍콩 시위를 돕다

홍콩의 차기 행정장관 직접선거를 둘러싼 중국 정부와의 마찰은 ‘우산혁명’이라고 별명이 붙은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낳았다. 크고 작은 정치경제 상황이 누적되고 맞물린 올해, 홍콩 시민들은 온전히 자신들의 손으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제를 요구하며 수개월 동안 도심을 점거했다.

그런데 조직 없이 모여든 개별 시민들이라고 해도, 대규모 점거는 조직화를 필요로 한다. 무슨 운동단체에 가입해서 헌신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점거한 상황에서는 점거 상황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물자, 공동생활을 위한 질서, 지금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온전한 정보 등이 필요한데 그것을 체계적으로 주고받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핵심은 소통이다. 사용자가 급증해도 망가지지 않고 점거를 막으려는 이들이 차단할 수도 없는 튼튼한 소통망이 필요하다.

우산혁명에서 그 역할을 결정적으로 도운 것이 바로 ‘파이어챗’이라는 스마트폰 채팅 앱이었다. 이 앱은 시위가 시작될 무렵 생긴지 반년도 안 된 새로운 앱이었으나, 홍콩에서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파이어챗의 특징은 통신사업자의 망 없이도, 개별 모바일 기기들이 서로 연결되어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일종의 임시 풀뿌리 통신망으로(‘메쉬 네트워킹’) 채팅을 나눌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파이어챗으로 주고받는 메시지를 통해 시위 현장의 시민들은 단속 길목을 알고 피할 수 있었고, 시위 메시지를 널리 알릴 수 있었고, 상징물이 된 우산을 고르게 보급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현장의 생생한 사진과 영상들을 전세계로 뿌릴 수 있었다. 사회변화를 바라는 시민들과 그것을 막고자 하는 지배세력의 무한한 경쟁 속에서, 시민측이 한 발짝 다시 앞서 나간 순간이었다.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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