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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노동시장 개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입력
2015.08.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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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개혁 논의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노동시장 개혁 주문으로 노사정위원장이 자리에 돌아왔고, 노동계도 협상장 복귀를 둘러싸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실 노동계와 정부는 노사정 논의가 중단된 지난 4월 이후에도 쟁점을 조율하기 위한 비공식 협상을 지속했다. 주요 의제별 쟁점을 분류하고, 논란이 되었던 항목들을 조정했으며, 거래의 조건을 조율했다. 그러나 이토록 복잡한 노동정치의 과정에서 기업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지난 노동시장 개혁 논의 과정에서도 경영계는 정부 등 뒤에 숨어 훈수 두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경영계의 역량 부재는 작금의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서 가장 큰 장애 가운데 하나다. 큰 문제는 리더십 부재다. 노동시장 구조 전환의 요구가 확산된 최근 몇 년간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단체들은 개혁을 위한 비전과 콘텐츠를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진지한 고민과 성찰적 탐색으로 개혁의 미래상을 제안하기는커녕 단기적 정책 과실 따먹기에 급급해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에 메뉴를 끼워 넣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임금체계를 개선하자고 목청은 높이고 있으나 업종에 적합한 임금체계의 모델을 개발하고 활용을 위한 실천의 방법을 제안했다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노동계가 자신의 발목을 자르면서 기업의 숨통을 열어줄 고민을 하는 동안 경영계는 어떠한 양보도 고려하지 않았다.

노사정 대화 재개의 가장 큰 걸림돌인 소위 저성과자 통상해고 문제만 해도 그렇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노동시장에서 노동력은 상품으로 존재하지만 그 특성상 다른 상품과 달리 사용 과정에서 상당한 제약이 수반된다. 근로기준법은 노동력 상품의 활용을 제약하는 대표적인 제도다. 또한 노동력은 상품 소유자인 근로자의 상태에 따라 그 산출가치 즉 노동생산성이 변하는 가변적 속성을 갖는다. 이렇듯 ‘불완전한 가변 상품’인 노동력의 사용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은 기업 인사관리의 핵심이며 경영 성과를 위한 관건이다. 요컨대, 인사운용의 핵심이 성과관리이며 이를 법에 위탁하는 일은 기업의 인사관리 역량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일 텐데 시야 짧은 재계는 정부의 등 뒤에서 통상해고의 제도화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

이제라도 기업들이 노동시장의 미래형 체제 전환을 원한다면 최소한 아래 역할을 고려해야 한다. 때늦은 감은 있으나 이제라도 국가와 국민 경제의 큰 그림을 구상하고 경제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노동시장 개혁의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다음으로,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이 노사간 비용의 공정한 배분과 효익의 공유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 제도 개혁의 편익이 가져다 줄 효용을 계산하기에 앞서 어떠한 책임을 부담할지 고민해야 한다. 고용과 임금 유연화로 겪게 될 근로자들의 불안과 위기를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었다면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합의는 의외로 쉽게 마무리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수천억 원의 사재를 털어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종잣돈으로 삼겠다고 선언하는 기업인이 한 사람만 있어도 개혁의 엔진은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전국민의 관심사인 일자리 공급을 적극 확대하는 데 책임의 방점을 두어야 한다. 지배구조상 기업 소유권이 시장에 분산되어 있어 주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기는 하나 우리 기업은 여전히 소위 재벌형 대주주 경영 시스템이다. 마음만 먹으면 양질의 일자리를 여럿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하도급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고용 및 소득 안정을 지원하는 일, 중고령 근로자들의 고용을 유지하고 퇴직자들의 전직을 지원하는 일도 개혁과정에서 기업이 부담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다. 아울러 연공형 임금 및 고용 시스템 개혁을 목표한다면 제도 전환의 과정에서 근로자들이 부담할 비용과 위험을 어떻게 상쇄할지 고민하는 일도 기업의 몫이어야 한다. 노동시장의 개혁을 원한다면 경영계의 혁신과 자기희생적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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