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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전쟁터는 軍 내무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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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전쟁터는 軍 내무반이었다”

입력
2016.11.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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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미숙 등 이유로 지속적 폭행

어머니ㆍ누나에 성적 모욕 발언도

가해자에 집행유예… 처벌도 관대

軍, 유족에게 “언론 알리지 말라”

“朴정부의 병영혁신 헛구호” 지적

군 최전방 경계초소(GP)에서 선임들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사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군 당국이 축소ㆍ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대 내 폭력이 자살로 이어지는 사건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군 당국은 해결책 마련보다 덮기에만 급급해 ‘병영문화 개선’이 헛구호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인권센터는 24일 서울 중구 NPO지원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선임병의 지속적인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강원 철원군 6사단 7연대 소속 박모(21)일병이 올해 2월 초소에서 총기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인권센터에 따르면 박 일병은 지난해 9월 당시 유모(21) 상병으로부터 근무 미숙 등을 이유로 총기 개머리판과 주먹으로 폭행을 당했다. 이를 발견한 분대 맞선임이 분대장 제모(21) 상병에게 보고했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또 부GP장은 한달 뒤 폭행 장면을 상황실 폐쇄회로(CC)TV로 확인하고도 유 상병에게 GP철수 처분만 내렸다.

부대는 폭행 사실을 인지한 후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박 일병은 올해 1월 제 상병을 비롯해 분대선임 김모(20) 상병과 임모(21)일병 등에게서 머리를 맞는 등 가혹행위에 시달렸고 어머니와 누나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발언도 들었다. 당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남북 대치 국면이 고조돼 근무가 늘어난 상황에서 선임들이 떠넘긴 교대 근무를 서느라 영하 10도의 혹한을 견디며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해야 했다. 빨래 등 분대 업무까지 처리하고 나면 수면 시간은 늘 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그는 숨지기 며칠 전 후임병들에게 “전쟁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만날 북한 쪽을 보면 뭐하나. 진짜 전쟁터가 있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역시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현재 민간인 신분인 제씨는 올해 6월 군사법원 1심 재판에서 전과가 없고 범행을 인정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군 당국이 유족을 회유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인권센터 측은 “유족들은 ‘언론에 알리지 말고 우리를 믿으라’는 군 관계자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 진상조사에 착수한 인권센터는 박 일병의 생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일기, 친구 증언 등을 토대로 심리부검을 진행한 결과, 교우관계나 정신상태에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박 일병의 죽음은 여전히 군대 내 피해자 고충처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입증한다”며 “박근혜정부가 4년간 추진해 온 병영문화혁신의 참담한 성적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육군 관계자는 “군 수사기관이 엄정한 수사를 거쳐 8명을 폭행ㆍ강요 혐의로 기소했으며 집행유예에 불복해 항소했다. 사건을 은폐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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