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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증세 논의 제대로 해보자

입력
2014.09.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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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ㆍ자동차ㆍ주민세에 부가세도?

헛된 ‘래퍼 곡선’ 따위 거론 말고

개인ㆍ법인 소득세에 초점 맞춰야

안전행정부 이주석 지방재정세재실장이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기자실에서 '지방세 개편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앞으로 2∼3년에 걸쳐 주민세와 자동차세가 100% 이상 대폭 인상되며 연간 2조원에 이르는 지방세 감면 혜택이 단계적으로 종료돼 세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연합뉴스
안전행정부 이주석 지방재정세재실장이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기자실에서 '지방세 개편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앞으로 2∼3년에 걸쳐 주민세와 자동차세가 100% 이상 대폭 인상되며 연간 2조원에 이르는 지방세 감면 혜택이 단계적으로 종료돼 세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연합뉴스

아직 담배를 피운다. 특별히 끊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굳이 피워야 할 이유도 없다. 그저 하던 짓 하는 수준이니, 애연가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흡연자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그런데도 정부의 담뱃값 인상 방침에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동남아보다도 싼 담뱃값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니 현재의 2,500원을 최종 4,000원쯤으로 올리더라도 끊을까 말까를 고민할 일도 없다.

정부 방침에 이렇게 우호적인데도, “담뱃값 인상은 세수 증대 목적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정부 설명은 요령부득이다. 보건복지부가 ‘금연정책’의 하나로 내놓는 절차를 거친 모양새는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이미 여러 차례 확인했듯, 청소년과 영세민의 흡연 욕구를 억눌러 거두는 금연 효과보다는 세수 증대 효과가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때마침 자동차세와 주민세 등 지방세 인상 방침이 뒤따랐다. 정부나 지자체의 설명대로 주민세와 자동차세(비승용 소유분), 담배소비세 등 정액분 지방세는 1991년 수준으로 묶여 온 까닭에 인상 압력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소비세가 오르는 김에 나머지도 덧붙이자는 생각을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눈살을 찌푸릴 수는 있어도, 정색하고 비난하기에는 지방재정이 너무 어렵다. 문제는 누가 보더라도 분명한 이런 증세 방침을 두고 애써 아니라고 부인하는 정부의 자세다. 아울러 이리 별난 ‘증세 인식’을 내세우다 보니 ‘직접세ㆍ누진세 강화’라는 시대적 요구와 어긋나는 세수 증대 방안에 치우치게 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공약을 했든, 현 최경환 경제팀의 재정운용 철학이 어떻든, 현실은 나날이 증세의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중앙정부만도 세수 부족이 8조5,000억원에 이르고, 올 상반기에도 그 폭이 커진 가운데 내년도 예산안은 다시 팽창했다. 공기업 채무를 제외한 중앙ㆍ지방 정부 부채가 500조원에 이르는 등 공공부채도 꾸준히 늘고 있다. 세금이 늘어나는 데 대해 본능적 거부감을 가진 국민들조차 증세 필요성을 거론하기 시작한 마당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자세는 이런 일반적 관측과는 딴판이다. 얼마 전 최 부총리는 “세금을 올리는 것은 위축된 한국경제 회복에 장애가 될 수 있다”며 “세수 증대 목적의 세제개편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중장기 조세정책 운용계획에는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시장친화적 조세 체계’가 언급됐다. 최 부총리의 단언이 개인소득세(소득세)와 법인소득세(법인세) 양쪽에 걸친 것이라면, 운용계획의 언급은 법인세에 치중한 듯한 차이는 있지만, 소득세율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뜻은 같다. 소득세 인상이 시장에서 소비 감소를 부르고, 법인세 인상이 기업의 투자 위축을 부르는 것은 경제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기초이론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제이론이 그렇듯, 이 또한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교과서가 상정한 완전한 자유경쟁시장은 없고, 수요 측면의 소득 격차, 공급 측면의 생산성 격차 등 수많은 간섭요인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과서의 이론은 참고용 사고ㆍ모의실험에 쓰면 그만이지, 눈앞의 현실을 외면할 근거로 삼을 게 아니다.

하기야 이미 오래 전에 허점을 드러낸 ‘래퍼 곡선(Laffer Curve)’을 거론하며 증세에 반대하는 논객들까지 줄짓는 마당이니 최 부총리나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을 탓할 일도 아니다. 세율이 늘어나면 세수가 늘어나다가 어느 시점(t)에서는 세수 감소로 돌아선다는 아서 래퍼의 직관은 그럴 듯했다. 그러나 당장 세수 증가의 정점, 즉 어느 시점이 t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주요 선진국의 자본주의 경제사 수백년을 관통하는 통계자료에 근거한 토마 피케티의 ‘증세와 누진세 강화’지적을 참고하는 게 낫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의 소득세, 실효 세율로는 아직 인상 여력이 있는 법인세를 곧바로 겨냥했으면 싶다. 당장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한국사회가 조세 체계와 세율 조정 등을 제대로 논의하기에는 충분한 때가 됐다.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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