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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걱정스러운 통신정책

입력
2018.04.20 17:2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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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얼마 전까지 통신사들에게 통신기본료 폐지, 보편적 요금제 도입 등을 밀어 붙였다. 통신사들은 이에 반발하였고, 최근에는 보편적 요금제 도입 압박을 피하기 위해 ‘요금인하상품’이라며 새로운 요금제를 발표하였다. 휴대폰요금 원가자료를 일부 공개하라는 며칠 전 대법원 판결도 통신요금 인하 압박에서 파생한 사건이다.

정부 주식이 하나도 없는 민간통신사의 요금수준이나 체계에 정부가 간섭하고 압박을 가하는 발단은 통신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이다. 정부가 통신요금을 인가제와 신고제로 일일이 규제하다 보니, 정치권에서 통신요금을 내리겠다고 공약하고 그 공약을 지키려다 보니 정부와 통신업계간에 ‘팔 비틀기’와 ‘힘 겨루기’가 계속되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사물인터넷,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 등으로 대표되는 제 4차 산업혁명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통신과 방송의 경계는 IPTV에서 보듯이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아마존, 애플, 삼성, 구글, 알리바바 등 세계의 모든 IT 기업과 통신사들이 연구ㆍ개발(R&D) 에 집중 투자하고 다른 기업과 합종연횡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KT가 지역민방(SO)들을 제치고 유료방송시장의 선두주자가 되었고, 네이버와 카카오도 조만간 통신사업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각국 정부는 규제 완화, R&D 투자, 인력 양성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지원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이를 위해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정작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중심적 플랫폼이 되는 통신산업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통신요금 수준이나 체계에 직접 개입하거나 강제적 인하에 진력하고 있다.

통신사업에 대한 인가제와 신고제는, 유선ㆍ무선ㆍ국제 등 분야별 사업자가 한두 개이던 90년대에 설계된 제도로서, 유선ㆍ무선, 방송ㆍ통신의 구분이 없어지고 유선ㆍ무선ㆍ인테넷ㆍSNS 등이 국내외 시장에서 상호 경쟁하는 오늘날에는 유효하지 않은 규제체계이다. 정부는 유선ㆍ무선ㆍ인터넷ㆍ콘텐츠를 결합한 복잡하고 다양한 상품가격의 적정성을 심사할 회계ㆍ기술 정보와 전문성도 부족하거나 없다.

정부가 요금규제를 통해 추구하고 있는 디지털 격차해소나 저소득층에 대한 보편적 통신서비스 제공은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이것은 통신요금에 대한 정부개입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복지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즉, 저소득층이나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통신바우처 제공, 디지털 교육의 확대 등을 통해 접근하고 그 재원도 전파사용료와 주파수 할당대가로 징수하는 년간 약 1조 5,000억원의 정보통신진흥기금이나 방송통신발전기금 같은 정부기금을 활용하여야 한다. 통신사의 주머니를 강제로 털어서 정부가 해야 할 통신복지 정책에 쓰려 하니 문제가 커지고 정책이 꼬이는 것이다

이제 통신정책의 접근방식을 바꿔야 하며, 정부가 할 일과 통신업계가 할 일을 새롭게 설계하여야 한다. 정부는 통신요금 허가제와 신고제를 폐지해 요금 수준이나 체계에 대한 간섭을 중단하며, 통신산업에 대한 진입 및 영업활동 규제도 폐지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는 사전ㆍ직접적 규제보다는, 소비자의 합리적 의사결정에 필요한 상세한 통신요금 비교정보의 공시, 사업자의 담합 및 지배적지위 남용에 대한 감시 강화, 통신서비스 관련 효과적인 분쟁조정절차 및 피해구제절차 마련 등 사후적ㆍ간접적인 방식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통신산업은 지금 중대 기로에 놓여있다. 정부의 시대착오적 요금규제와 ‘팔 비틀기’ 요금인하 압박으로 통신사와 정부의 역량이 낭비되고 환경변화에 맞춘 정책 전환의 기회를 헛되게 하고 있다. 미래의 중요한 일거리와 먹거리가 될 통신 및 인접 산업의 발전에 중대한 장애가 초래되고, 다양한 통신서비스의 도입이 지연되고, 소비자의 선택과 후생도 저하하고 있다. 이것이 걱정이다.

김병배 공정거래실천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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