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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웃어른을 공경하는 올바른 길

입력
2016.10.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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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에도 그랬고 50년 전에도 그랬듯이,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은 요즘도 화젯거리가 되곤 하지만 나에게 잘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니다. 무릇 잘 자란 청년이라면 웃어른을 공경하게 마련이고, 바로 나 자신이 공경을 인생의 모토이자 복음으로 여기며 살아왔으므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기성세대를 공경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사실 말이다.

어르신들이란 너무나 매력적인 존재라서 가끔 푹 빠지지 않기가 더욱 힘들다. 한번은 어느 카페에서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점잖은 베이지색 양장을 입고 가슴팍에는 수수한 브로치를 달고 있는 분이었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핸드백에서 책을 꺼냈다. ‘명탐정 코난’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매력이 마구 터지는 것이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대학로의 한 소극장 앞에 머리털이 발랑 까진 할아버지가 블링블링한 핫핑크 컬러의 한복을 입고 서 있었다. 잠시 후 똑같은 핫핑크 컬러의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나타났다. 둘은 손을 잡고 소극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역시 그 순간 매력이 마구 터졌다. 이처럼 어르신들은 홀로 앉아 만화책만 읽어도, 부부가 같은 옷을 입고 손만 잡아도 매력을 마구 터트릴 수 있다. 그래서 기성세대를 공경하는 청년들이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옷차림을 이야기하자면 등산복을 빼놓을 수 없다. 어르신들은 언제 어디서나 등산복을 입고 뽐낸다. 국토의 7할이 산지니까 언제 어디서나 어울린다. 가히 국민 패션이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옆 나라 중국의 인민복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기성세대가 얼마나 시대를 앞섰는지를 알 수 있다. 등산복은 가볍고 움직이기 편한 데다 여간해선 불에 타지도 않고 물에 젖지도 않는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스하다. 노인정에 가다가 걷기가 귀찮아지면 길에 드러누워도 된다. 유난히 눈에 띄므로 사고를 당할 위험이 적다. 앞으로 누우나 뒤로 누우나 마찬가지다. 신소재 기술과 3조 3교대 근무 초과생산의 하모니가 만들어낸 한국 문명의 걸작이다. 이처럼 어르신들은 최첨단을 사랑한다. 그래서 기성세대를 공경하는 청년들이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최첨단을 이야기하자면 제헌헌법을 빼놓을 수 없다. 나라를 세울 적에 어르신들은 이런 구절을 헌법에 써넣었다.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어르신들은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에 더하여 기업의 이익을 균점 분배 받을 권리를 노동4권으로 생각했다. 여기서도 우리나라의 기성세대가 얼마나 시대를 앞섰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기성세대를 공경하는 청년들이 있는 것이다.

기업의 이익을 노동자가 나눠 가지는 권리는 대한민국 헌법에만 있던 우리 고유의 법적 개념이다. 따라서 오로지 어르신들의 한마음 한뜻에서 솟아 나온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권리를 받드는 것이 웃어른을 공경하는 올바른 길일 것이다. 그런데 그 구절은 중간에 지워져 버렸다. 군사정권 때의 일이다. 이후 몇 차례 헌법 개정이 있었지만 이익 균점의 권리는 지금도 잠들어 있다. 현행헌법이 최첨단을 사랑하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담지 못했다는 얘기다. 기성세대를 공경하는 올바른 길이 막힌 셈이다.

세상은 10~60대의 청년세대와 70~110대의 기성세대로 나뉜다. 무릇 잘 자란 청년이라면 웃어른을 공경하게 마련이고, 이전세대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귀히 여기게 마련이다. 젊은 한국에 세대갈등은 그리 크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청년세대가 어르신들의 유산을 전달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큰 폭의 임금인상과 공정한 분배의 요구가 나오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웃어른을 제대로 공경하고 싶은 청년은 나 말고도 많이 있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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