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학교혁신 거부하는 '無 열정' 교사들… “무늬만 혁신학교”

알림

학교혁신 거부하는 '無 열정' 교사들… “무늬만 혁신학교”

입력
2016.03.07 04:40
0 0

열정 있던 초창기 교사들 전근 가고

무작위 인사 ‘준비 안 된’ 교원 늘어

57곳 중 7개교가 재지정 신청 안 해

교육청도 역량 있는 교사 양성 소홀

교육감 성향 따라 널뛴 정책도 한몫

올해로 제도 시행 6년째인 서울형 혁신학교 중 일부가 대내외 한계 요인에 부딪혀 ‘공교육 혁신’이라는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형 혁신학교의 우수 사례로 꼽히는 삼각산고의 수업 장면. 서울시교육청 제공
올해로 제도 시행 6년째인 서울형 혁신학교 중 일부가 대내외 한계 요인에 부딪혀 ‘공교육 혁신’이라는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형 혁신학교의 우수 사례로 꼽히는 삼각산고의 수업 장면. 서울시교육청 제공

“다른 혁신학교에 있다가 전근을 왔는데 분위기가 영 달랐다. 혁신학교라면서도 수업부터 여느 학교와 다를 바 없었다. 이전 학교에선 10명 내외의 교사들이 일주일에 몇 차례씩 모여 수업 혁신 방안을 연구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었는데, 이 학교는 그런 모임 자체가 없었다. 듣자니 애초 교장 주도로 혁신학교로 지정됐고, 열심히 하는 교사들은 교육혁신에 열의가 있다기보단 학교 행정에 충실한 분들이었다. 형식만 혁신학교였을 뿐 교사가 주도적으로 내용을 채우지 못해 피로감만 쌓였다.”(A교 교사)

“혁신학교가 교사들에겐 힘들다.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교육청에서 예산을 지원하는데 지정 첫 해엔 지원금이 1억원에 달했다. 그만큼 교사가 일을 해야 한다. 교과 수업이나 생활지도 외에도 할 일이 많았다. 예컨대 일반 학교는 문예체 활동을 한두 가지만 하는데, 우리 학교는 장구, 단소, 가야금, 보드, 수영 등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 강사 섭외, 장소 대관, 가정통신문 발송, 결과 보고 등 그에 따른 행정업무 부담은 고스란히 교사에게 돌아온다.”(B교 교장)

2011학년도에 제도가 도입된 서울형 혁신학교는 지금까지 119개 초중고로 늘어날 정도로 외형이 커지고, 일부러 혁신학교를 찾아 이사하는 학부모들이 있을 정도로 “공교육 혁신의 파일럿스쿨(본보기 학교)”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앞에 언급된 A, B교처럼 초창기 지정된 혁신학교들 중 재지정을 거부하며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혁신학교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교사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지만 주기적으로 전근을 가는 인사시스템에서 수업혁신이 지속되기 어려운데다, 서울시교육청도 걸맞은 정책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 도입 초기 수업혁신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분위기가 학교 내부의 갈등으로 바뀌는 등 혁신학교의 지속적 발전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학교혁신 거부하는 교사들

수업 방식이나 학교 운영의 틀을 바꾸는 혁신학교에선 교사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적지 않다. 강의 형태의 수업을 벗어나기 위해 수업방식과 교재를 연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참여를 유인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투입된다. 예산 지원을 받지만 그래도 교사들의 열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시범학교 등 다른 예산지원 사업을 시행하는 학교에 재직하는 교사들은 승진 가산점을 받는 반면 혁신학교는 이런 인센티브도 없다.

혁신학교 도입 초기엔 그래도 교사들의 열정이 넘쳐났지만, 몇 년이 지나 교사들 상당수가 바뀌면서 이런 분위기가 흔들리고 있다. 시교육청은 혁신학교 지정 첫 해엔 교육혁신에 뜻이 있는 교사를 충분히 확보하도록 전입희망 교사 영입을 허용하지만 이후엔 공립학교 교원 인사 원칙에 따라 무작위 전산 추첨으로 전입 교사를 결정한다. 하지만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준비 없이 혁신학교로 전근한 교사들 중에는 노골적으로 혁신학교에 반대하는 일이 생긴다. 한 혁신학교 학부모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대놓고 ‘이런 식으로 공부하면 다 도태된다’고 주장하는 교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인 C교에서 재직했던 한 교사는 “학내 폭력, 학생 흡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부 교사들은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문제 학생들을 선도하자고 주장했으나 징계 중심의 전통적 대응을 주장한 교사들에게 눌렸고, 이런 분위기에서 혁신학교 재지정마저 하지 않기로 결정됐다”고 전했다.

혁신학교 재지정 공모 시기에 스스로 혁신학교 간판을 내린 학교들은 이런 식으로 교사들의 갈등과 반대를 겪었다. 2011~12학년도부터 4년 동안 혁신학교를 운영하고 2015~16학년도 재공모 기회가 주어진 57개 학교 중 7개교가 재지정 공모에 응하지 않았는데, 이들 학교 모두 교사 투표에서 혁신학교 운영 종료가 결정됐다.

혁신학교의 성과가 너무 좋아도 문제가 된다. “선생님들이 열심히 잘 가르친다”는 입소문이 난 혁신학교는 다른 지역에서부터 학생들이 몰려들어 인근 전셋값이 두 배나 오르고 위장 전입도 성행한다. 그러다 보니 학급당 학생수가 혁신학교 운영 적정선인 25명을 훌쩍 넘어 수업에 애로를 겪는다. D교 교장은 “4년 동안 학급 수가 5배가량 늘어나면서 새로 온 교사가 많아지고 초창기 교사 상당수는 다른 학교로 발령 나면서 혁신학교에 대한 견해도 달라졌다”며 “교사 대부분이 반대표를 행사해 혁신학교 재지정은 무산됐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혁신학교 질보다 양에 치중

도입 6년이 지난 혁신학교가 한 단계 성장하려면 시교육청의 정책도 발전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시교육청이 혁신학교의 양적 확대에 치중하면서 혁신교육의 질을 높이고 역량 있는 교사들을 양성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무작위 추첨으로 교원 발령을 내는 인사 시스템부터 그렇다. 한 혁신학교 교사는 “혁신학교에 오고 싶어하는 교사들이 많은데도 별 관심이나 의욕이 없는 교사가 배정되는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A교 교사는 “서울형 혁신학교 중 절반은 예전 수업이나 학교운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무늬만 혁신학교’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며 “교육청이 의욕적인 교사들을 지원하고 미진한 교사들을 설득해 혁신학교 내부 동력을 끌어올려야 할 텐데, 그럴 만한 철학이나 방향성을 갖췄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혁신학교 관련 포럼에서 이부영 강명초 교사는 “혁신학교를 운영하려면 교직원 연수 체제부터 혁신해야 하는데, 서울교육연수원의 연수시스템이나 내용은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한 지원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 재작년 혁신학교 재공모에 응하지 않은 E교 교장은 “혁신학교가 아무리 교사의 행정 부담을 덜어준다지만, 교사들은 예산 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 업무 때문에 수업에 전념할 수 없다며 불만이 컸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도입 후 진보(곽노현)-보수(문용린)-진보(조희연) 성향 교육감이 번갈아 맡으면서 혼란이 있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까지 혁신학교를 운영한 F교 교장은 “문용린 교육감 재임시엔 혁신학교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1년에 세 차례나 감사ㆍ평가를 받게 되자 교사들 사이에 ‘차라리 혁신학교 간판 없이 학교 예산을 아껴 수업을 운영하자’는 기류가 생겼다”고 말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혁신학교가 이념적 논쟁점이 된 터라 교사들로부터 공격적인 전화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올해 ‘혁신학교 일반화’를 정책 목표로 걸고 뒤늦게 이달 초 혁신학교 성과 정리 및 확산을 전담할 학교혁신지원센터를 설립했지만, 교원 인사 제도 등 현장의 당면 문제에 대해선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혁신학교 내부에도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며 “교사들이 토의 토론을 거쳐 자율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 혁신학교 운영 취지에 부합하며 교육청이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서울형혁신학교, 2011년부터 지정…초중고 119곳 운영

공교육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본보기 학교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재임시인 2011학년도부터 지정 운영하기 시작했다. ▦배움의 즐거움이 있는 교실수업 ▦교사들이 활발한 토론을 통해 학교운영을 주도하는 학교민주화 ▦공문 처리보다 교육과 돌봄을 우선시하는 학교행정을 표방한다. 지정 후 4년 동안 매년 6,500만원씩 예산이 지원되며 운영기간 종료 뒤엔 재공모 기회가 주어진다. 시내 초ㆍ중ㆍ고 119개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돼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