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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 태연은 더이상 ‘아이돌’이 아니다

입력
2015.10.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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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당연히 태연의 ‘보컬’로 수렴된다. 그 어떤 곡에서든 연주는 태연의 보컬을 ‘돋보이게’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라면 장르를 한정적으로 운용해도 괜찮을 거라는 판단이 뒤따랐을 게 틀림없다. 비단 장르 뿐만이 아니다. 곡의 ‘속도’라는 측면에서도 프로듀싱(producing)을 통한 통제가 확 감지된다. 그 어떤 곡에서도 전체적인 속도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빨라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곡을 이끌고 가는 주역은 어디까지나 태연의 목소리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환기하는데 성공한다.

태연 I 뮤직비디오 한 장면
태연 I 뮤직비디오 한 장면

기실(其實) 앨범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는 않고 있었다. 지금껏 ‘정규 솔로작’보다는 OST 쪽에 특화되어 온 태연의 커리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대는 기분 좋게 배신당했다. 첫 곡 ‘I’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장르적으로 보자면 모던 록으로 구분될 이 곡에서 태연은 극적인 가창을 통해 곡 전반을 리드하고 장악한다. 음정, 호흡, 표현력 등에서 나무랄 데가 거의 없는 보컬이다. 무엇보다 의외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 이 곡의 사운드를 아주 능숙하게 이끌고 가는 모습은 베테랑의 그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간 템포 정도의 이런 곡에서 태연의 보컬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어떤 확신이, 곡 전체에 은근하게 배어 있기도 하다.

☞ 태연 I 뮤직비디오 보기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곡의 크레디트다. 기존 SM의 작업 방식과 마찬가지로 작곡과 편곡에 총 7명이 투입되어 곡을 매만지고 또 매만졌다. 나는 이 칼럼을 통해 K팝의 무국적성이 장점으로 전환되는 어떤 지점에 대해 논했던 바 있다. ‘I’는 그런데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이 곡의 멜로디가 뭐랄까, 한국 대중에게 '먹힐 만한' 펀치 라인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게 중요하다고 본다. 전체적으로는 무국적의 감성을 지향하면서도, 그 근간에는 활동의 기반이 되어 줄 공간의 정서를 튀지 않는 한에서 흩뿌려 놓는 전략이라고 할까.

이어지는 ‘U R’는 발라드의 곡조를 띈 노래다. 자연스레 태연의 보컬이 더 부각된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결과는 예상 그대로다. 피아노 발라드의 어떤 정석을 일궈낸 이 곡은 영화 OST로 쌓아온 그간의 경험을 통해 뽑아 올린 최상의 결과물이다. 이 외에 'U R'보다 조금 더 리듬을 강조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쌍둥이자리', 몽롱하면서도 강렬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중심을 잡고 있는 '스트레스' 등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는 앨범은 슬로 템포의 ‘먼저 말해줘’로 차분하게 마무리된다. 단 5곡에 불과한 앨범이지만, 명백히 '흐름'을 의식하고 배치한 곡 순서임을 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N 포털 사이드의 사전에서 웰 메이드(Well-Made)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해석을 찾아볼 수 있다.

1. <체격이> 균형이 잡힌, 날씬한

2. <수공품이> 잘 만들어진

3. <소설·극이> 구성이 잘 된

앨범은 이 모두에 해당하는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오버하지 않는 진행은 균형이 잘 잡혀 날씬하고, 곡들의 구성미 또한 빼어나며, 이를 통해 ‘잘 만들어진 앨범’이라는 인상을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전개된 아이돌의 역사는 곧 ‘편견을 극복하는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극복된 요소를 꼽는다면, 아무래도 ‘가창력’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그 누구도 아이돌의 가창력에 딴지를 걸지 않는 풍경이 이를 말해주는 증거다. 태연이라는 가수는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는데 가장 크게 공헌한 주역으로 기억될 것이다. 보컬뿐만이 아닌 곡의 구성미와 사운드에 있어서도 섬세함을 포착한, 이 앨범이 증명하고 있다.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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