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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총리 후보자의 민낯

입력
2015.02.1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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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의혹들 제대로 해명 못해

선거가 검증절차라는 고정관념 깨져

흠투성이로는 ‘얼굴 총리’도 어려워

이럴 줄은 몰랐다. 3선 의원에 충남지사까지 지낸 그다. 여러 차례 선거를 치르는 동안 털릴 먼지는 충분히 털렸으리라 여겼다. 득표 경쟁이 치열하다 보면 으레 흠집내기 싸움으로 치닫게 마련인 선거보다 더 혹독한 검증절차는 없다는 오랜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 가시밭을 네 번이나 큰 상처 없이 빠져 나온 사람이라면 특별히 꼬집어 흠잡을 곳은 없을 만했다. 그러나 국회 임명동의 절차에 따른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언론을 통해 하나하나 드러난 그의 참모습은 그러고서 어떻게 선거전을 치렀는지를 의심스럽게 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게는 숱한 의혹이 제기됐다. 굵직한 것만 들어도 박사학위 논문 표절, 우송대 석좌교수 자리와 ‘황제특강, 부동산 투기, 병역기피,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구시대적 언론관 등이다. 하나 같이 국민의 부아를 끓게 할 내용이다. 이 가운데 최대한 귀를 순하게 해서 그의 해명과 인사청문회 증인ㆍ참고인 진술을 들으면 논문표절이나 ‘황제특강’, 부동산 투기 의혹은 찜찜하긴 해도 꾹 참아 넘길 만하다. 오해가 컸다거나 그의 행위가 궤도를 벗어난 적이 없어서가 아니다. 어지간한 원칙과 소신이 아니고서는 쉬이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으리라는 추측, 그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그런 원칙과 소신에 투철한 사람은 우리사회 지도층, 특히 공직사회 고위층에서는 쉽사리 찾아보기 힘들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더욱이 스스로 그런 기회를 망설임 없이 걷어 찰 수 있었으리란 자신감도 없었다. 그러니 기회가 없었다는 이유로 가슴을 펴고 남을 꾸짖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병역기피 의혹은 달랐다. 첫 신체검사에서 1급 판정을 받았다가 두 차례의 재검을 거쳐 끝내 병역면제(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아 낸 이 후보자의 ‘노력’은 보기 드문 것이었다. 신체검사 판정을 받으면, 입영연기 등 병역의무를 치러야 할 시기를 조정하는 데 신경을 썼지, 두 차례나 재검을 받아가며 악착같이 판정 등급 변화를 꿈꾸지는 않았다. 그의 해명은 의문을 더했다. 재검을 통해 등급이 달라진 이유로 그는 처음 신검을 받은 곳이 X선 검사장비가 없는 곳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거꾸로 첫 신검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를 갖춘 육군수도병원, 재검을 행정고시 합격 이후 부군수로 근무하던 홍성에서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래 전의 일이어서 착각했다고 변명하기도 쉽지 않다. 병역문제는 연애문제와 함께 청년기의 커다란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여서, 관련 기억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뇌리에 또렷한 법이다. 그런 기억이 정말 흐려졌다면, 그것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자신의 잘못과 비행(非行) 등의 그늘은 지우고 밝은 것만 기억하려는 적극적 뇌 작용 탓일 가능성이 크다. 이래저래 그의 병역면제에는 빛이 닿지 않은 컴컴한 구석이 그대로 남았다.

녹취록 공개로 드러난 그의 언론관도 짐작보다 훨씬 심각했다. 처음 대강의 내용을 들었을 때는 ‘성공한 정치인’ 특유의 자기 과시나 너스레이려니 했다. 그러나 속속들이 밝혀진 그의 언사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사실 여부와는 별도로, 언론사의 논조나 인사를 외부에서 얼마든지 좌우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있음을 드러냈다. 녹취록 유출과 보도 경위 등을 놓고 한껏 달아올라 뒤죽박죽으로 치고 받는 논란이 혼란스럽다. 그가 총리가 되어 수시로 빚게 될 ‘언론조작’이나 ‘언론탄압’ 논란은 또 얼마나 우리사회를 혼란과 혼탁으로 몰아넣을 것인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이 후보자를 통해 얻은 것은 오랜 착각의 수정이다. ‘정치인은 검증을 거쳤다’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선거는 검증절차의 하나일 수는 있지만 권투처럼 서로 치고 받는 싸움이어서 후보자 개개인의 흠집에는 유권자의 눈길이 좀처럼 머물지 않는다. 누가 몇 대를 얻어 맞느냐가 아니라 상대에 비해 얼마나 더 맞았느냐, 얼마나 충격이 큰 주먹을 더 맞았느냐가 문제다. 후보자 한 사람에 공격이 집중되는 인사청문회와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책임총리에 대한 헛된 기대가 식어 정치현실에 대한 국민 감각도 또렷해졌다.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의 헌법상 역할에 비추어 애초에 신기루였다. 하긴 빈 자리를 메우는 ‘얼굴 총리’라도 얼굴만큼은 매끈해야 할 텐데, 흠집투성이 얼굴을 가릴 화장술이 있기는 한 걸까.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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