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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운명 좌우하는 제목... 개봉 직전까지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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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운명 좌우하는 제목... 개봉 직전까지 고친다

입력
2016.06.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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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왼쪽부터) ‘추격자’ ‘공동경비구역 JSA’는 개봉 직전 영화 제목이 바뀌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 ‘살인의 추억’(왼쪽부터) ‘추격자’ ‘공동경비구역 JSA’는 개봉 직전 영화 제목이 바뀌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목이 마케팅과 홍보 전략의 8할을 차지한다.” 한 영화 마케터의 말처럼 최근 영화 제목은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 됐다. 개봉 직전까지 감독을 비롯해 제작사, 배급사 관계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밤의 열기 속으로’가 ‘추격자’(2008)로 변하고, ‘판문점’이 ‘공동경비구역 JSA’(2000)가 되며, ‘날 보러 와요’가 ‘살인의 추억’(2003)으로 변모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조금이라도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변형 과정을 반복한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영화편수는 1,203편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17일 기준)에만 691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 홍수 속에서 흥행의 단 맛을 조금이라도 보기 위해선 영화 제목 정하는 일은 더더욱 소홀히 할 수 없게 됐다.

충무로 최신작 세 편도 치열한 제목 짓기의 산물이다. 원래 제목은 ‘가족계획’ ‘감옥에서 온 편지’ ‘불량소녀’. 어떤 영화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이들 영화는 개봉 직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부랴부랴 제목이 바뀌어 ‘굿바이 싱글’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특별수사) ‘비밀은 없다’로 각각 변신했다.

영화 ‘비밀은 없다’는 원래 ‘불량소녀’에서 ‘행복이 가득한 집’을 거쳐 최종 확정된 제목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비밀은 없다’는 원래 ‘불량소녀’에서 ‘행복이 가득한 집’을 거쳐 최종 확정된 제목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들 영화의 제목이 바뀐 이유는 간단하다. 철저한 “관객 배려 차원”이다. ‘가족 계획’이 ‘굿바이 싱글’(29일 개봉)이 된 건 “너무 친절한 제목 탓”이었다. ‘굿바이 싱글’을 제작한 이정은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영화의 내용을 전부 설명하는 듯한 제목 때문에 관객들의 상상력을 해칠 수도 있어 제목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평범하고 뻔했던 제목에 발랄한 영어 단어를 수혈해 코미디 장르라는 영화의 정체성을 부각시켰다.

‘특별수사’(상영 중)와 ‘비밀은 없다’(23일 개봉)는 오히려 제목과 영화 내용의 이질감 때문에 변경한 경우다. 시나리오 기획 단계에서는 휴먼 드라마를 표방했던 ‘특별수사’는 정작 영화 완성본에서 김명민 성동일 등이 펼치는 경쾌한 수사극의 면모를 드러냈다. 묵직한 느낌이 배인 ‘감옥에서 온 편지’는 자연스레 바뀌었다. ‘특별수사’의 투자배급사인 NEW의 관계자는 “관객들에게 사형수 순태(김상호)의 존재도 부각시켜 코미디와 휴먼 드라마라는 설정을 균형 있게 전달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비밀은 없다’는 세 번의 수술을 거쳤다. 이경미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던 초기에는 ‘불량소녀’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자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바뀌었다. 한 정치인 부부의 중학생 딸이 실종되는 사건이 중심인 영화에서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제목은 지나치게 반어적이었다.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관객들의 상상과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라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으로 내다봤다”며 수정한 이유를 들었다.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제목 전략’은 해외 시장에서도 적용된다. 지난달 칸영화제 경쟁부문과 비경쟁부문에 각각 초청된 영화 ‘아가씨’(영어 제목 Handmaiden)와 ‘곡성’(영어 제목 The Wailing)은 프랑스 배급사의 제안으로 각각 ‘마드모아젤’과 ‘더 스트레인저스’라는 제목을 별도로 얻었다. 프랑스 배급사가 프랑스 관객들의 정서에 맞는 제목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고, 감독과 국내 제작사 등의 동의를 얻어 제목을 변경했다.

영화 ‘아가씨’는 프랑스어 제목 ‘마드모아젤’과 영어 제목 ‘핸드메이든’ 등 제목만 3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아가씨’는 프랑스어 제목 ‘마드모아젤’과 영어 제목 ‘핸드메이든’ 등 제목만 3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100개국 내외로 팔린 두 영화의 제목은 아시아권에서 예측 불가능하게 바뀌고 있다. ‘아가씨’는 대만(24일 개봉)에서 ‘하녀의 유혹’, 홍콩(30일 개봉)에선 ‘하녀유죄’로 각각 개봉한다. ‘아가씨’의 윤석찬 프로듀서는 “해외 개봉 시 해당 배급사에 한 가지 당부를 했다”며 “원작소설 ‘핑거스미스’(소매치기)나 그와 비슷한 제목만 달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제목 마케팅은 외화라고 예외가 아니다. 지난 3월 개봉한 ‘런던 해즈 폴른’은 3년 전 개봉했던 ‘백악관 최후의 날’(원제 ‘Olympus Has Fallen’)의 속편이다. ‘백악관 최후의 날’은 관객 18만명이라는 저조한 흥행 성적을 남겼고, 수입사는 관객들에게 ‘런던 해즈 폴론’이 ‘백악관 최후의 날’의 속편이라는 사실을 굳이 알릴 이유가 없었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런던 해즈 폴른’은 3년 전 개봉했다가 실패한 영화 ‘백악관 최후의 날’의 속편이다.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지난 3월 개봉한 영화‘런던 해즈 폴른’은 3년 전 개봉했다가 실패한 영화 ‘백악관 최후의 날’의 속편이다.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런던 해즈 폴른’의 홍보를 담당한 영화 홍보마케팅 회사 영화인의 한 직원은 “전편의 흥행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속편이라는 것을 부각시키지 않으려고 했고 영어 제목 그대로 ‘국내 개봉 제목을 정했다”고 밝혔다. “제목을 너무 성의 없게 지은 것 아니냐”는 비판적인 의견도 마케팅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런던 해즈 폴른’은 전편에 비해 4배 가량 많은 73만 명의 관객을 불렀다.

속설을 바탕으로 한 제목 짓기 유행도 있다. 최근 한국영화는 제목이 짧고 분명해야 흥행에 성공한다는 믿음이 떠돈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 ‘국제시장’ ‘베테랑’ ‘도둑들’ ‘암살’ ‘변호인’ ‘해운대’ ‘괴물’은 다섯 글자를 넘지 않는다. 최근 흥행작 ‘내부자들’과 ‘히말라야’ ‘사도’ ‘대호’ ‘극비수사’ ‘연평해전’ 등도 제목이 간결하다.

한 영화 관계자는 “외화는 시리즈물이 쏟아지면서 영화 전체를 설명할 수 있게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처럼 부제가 붙는 제목이 유행하고 있다”며 “예전 충무로에서도 짝수 제목은 망하고 홀수 제목은 흥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화제목도 유행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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