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민승 기자

등록 : 2018.03.28 15:52
수정 : 2018.03.29 18:36

[짜오! 베트남]맹호부대 주둔했던 꾸이년, 상흔 딛고 다시 양국 교류 교두보로

등록 : 2018.03.28 15:52
수정 : 2018.03.29 18:36

<40> 상처 보듬는 손길들

1996년 용산구와 교류 시작

현 성장현 구청장 전폭적 지원

2016년엔 ‘국제교류사무소’ 개관

한국어 공부 열풍도 거세게 불어

이성진 순천향대병원 안과 교수

아모레퍼시픽 등 기업 후원받아

베트남에 백내장 치료법 전수도

이성진(왼쪽) 순천향대병원 안과 교수가 베트남 꾸이년병원에서 하 티 피 티엔(가운데) 안과 과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내장 수술 환자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26일 베트남 중부 빈딘성 꾸이년(Quy Nhon)병원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수술장비 기술자, 간호사와 함께 백내장 수술 의료봉사를 하기 위해 찾은 순천향대병원 안과 이성진(52) 교수였다.

그의 베트남 방문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하 티 피 티엔(51) 안과 과장은 “웬만한 수술은 이제 혼자서도 해낼 수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환자들이 많다. 나만 이 교수님을 기다린 건 아니다”며 활짝 웃었다.

부족한 의료 인력

이 교수의 방문에 맞춰 백내장 수술을 받은 환자는 모두 23명. 한쪽 시력을 완전히 잃었거나, 제거해야 할 수정체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환자, 합병증으로 녹내장까지 앓고 있는 중증 환자들이었다. 이 교수는 “수술이 실패할 경우 시력을 완전 상실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점점 높은 난이도의 수술에 티엔이 참여하면서 그의 실력도 몰라보게 향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튿날까지 이어진 수술에서 이 교수는 20건, 티엔 과장은 3건을 집도했다. 수술을 마친 티엔 과장은 “초음파 파쇄기로 깬 수정체 조각을 꺼내다 일부가 유리체 안으로 빠지면 큰일 난다”며 “뒤에서 이 교수가 백업(비상대응) 해준 덕분에 안심하고 수술에 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유리체 안에 빠진 수정체 파편을 건져 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이 분야 대가로, 매년 1,2회 이곳을 찾고 있다.

이성진(왼쪽) 교수가 티엔(가운데) 꾸이년병원 안과 과장과 함께 수술 환자 명단을 검토하고 있다. 고난이도 수술은 이 교수가 도맡아 했고, 상대적으로 쉬운 수술은 티엔 과장이 이 교수의 입회하에 집도했다. 이 교수는 2013년부터 이런 과정을 통해 베트남 의료진의 백내장 수술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날 손발을 척척 맞춘 두 사람의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꾸이년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던 서울 용산구의 제안으로 당시 처음 이곳을 찾은 이 교수는 깜짝 놀랐다. 투명한 수정체가 회백색으로 흐려져서 이름 붙은 백내장이건만 이곳 환자들의 수정체는 한국에서 보던 것과 달랐다. 그는 “‘흑내장’ 수준의 환자들이 수두룩했다”며 “장비와 인력만 있으면 치료 가능한 실명이지만 티엔 등 현지 의료진은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일부 부유한 이들만 하노이나 호찌민으로 가서 빛을 되찾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들면 당연히 어두워지는 줄로만 알았다. 이 지역은 자외선이 강해 백내장 환자가 유독 많다.

이 교수는 용산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모레퍼시픽과 병원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으로 이듬해 수술 장비를 들고 다시 찾았다. 티엔 과장을 옆에 세워놓고 첫해 33건의 수술을 직접 집도했다.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 티엔 과장은 이듬해부턴 이 교수의 입회 하에 칼을 들었다. 2014년 40여건의 수술을 마친 티엔 과장은 지난해에만 600건 가까운 수술을 혼자 해냈다. 이 교수는 “우리 돈 15만원이면 받을 수 있는 수술이지만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베트남에는 역부족”이라며 “꾸이년병원을 중심으로 중부지역 백내장 수술 전문인력 양성센터가 세워지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전 상흔의 도시

꾸이년은 끝없이 펼쳐진 하얀 모래 해변과 남중국해서 불어오는 깨끗한 바람, 투명한 바닷물 등 천혜의 관광자원으로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곳. 하지만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 피비린내 가득했던 전장이었다. 1965년 베트남전 당시 맹호부대가 상륙한 곳으로, 73년 철수 전까지 11만명이 투입돼 17만5,107회의 작전을 펼쳤다. 꾸이년이 속한 빈딘성에서는 민간인 희생도 따랐다. 꾸이년 용산국제교류사무소의 주남석 소장은 “맹호부대가 용산구에 본부를 두고 있던 데 착안해 1996년 교류를 시작했다”며 “이 고리를 통해 많은 기관과 단체들이 보다 쉽게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용산구는 특히 성장현(63) 구청장의 전폭적 지원 아래 의료봉사(순천향대병원) 외에도 우수학생 한국 유학(숙명여대 6명), 주거 지원(새마을운동용산지회 등, 15채), 공무원 교류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현대산업개발이 저소득층을 위해 유치원을 건립 사업도 시작했다.

지난 26일 꾸이년시 프억미 마을에서 열린 사랑의 집 기증식 행사에서 꾸이년시, 용산구 관계자들이 수혜자들과 함께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용산구의 활약에 꾸이년시도 화답했다. 2016년 교류협력 20주년을 맞아 용산구 관계자들에게 3층 규모의 건물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곳에 ‘용산국제교류사무소’를 꾸린 용산구는 한국 기업들의 현지 진출지원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베트남 중남부 지역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면서 현지 한국인들의 거점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현지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두환(63)씨는 “6,7년 전만 해도 한국어 구사자가 없고 정보도 부족해 한국 기업 진출이 힘들던 곳”이라며 “많은 한국기업들이 교류사무소를 통해 보다 쉽게 빈딘성, 꾸이년시와 접촉하고 있는 만큼 오랜 교류의 결실이 한국에도 곧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맹호부대 주둔지’ 정도로만 알려져 있던 이곳이 한국과 교류를 늘리면서 한국어 공부 바람도 거세게 불고 있다. 교류사무소 개소에 맞춰 2016년 3월 문을 연 한국어 교실의 수강생(40명) 모집에 800명의 중ㆍ고등학생, 대학생은 물론, 직장인, 시청 공무원들, 학교 교사들이 몰렸다. 용산구 관계자는 “도저히 우리 힘만으론 감당이 안돼 한국어 보급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다”며 “현재 300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고 전했다. 꾸이년 세종학당 이기순(52) 교사는 “주말에도 학당에 나와 한 마디라도 더 배우려고 할 정도로 학생들의 열의가 대단하다”며 “학생들은 물론 이곳 사람들 얼굴에서 베트남전의 그늘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꾸이년(베트남)=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베트남 꾸이년시가 개발중인 안푸팅 국제무역지구의 주거단지 대로 초입에 세워진 우호교류 20주년 기념비. 그 뒤로는 폭 22m, 길이 500m의 '용산거리'가 있다. 베트남에서 외국도시의 이름을 딴 도로는 용산거리가 처음이다.

꾸이년 시내 한 대로변에 핀 무궁화.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꾸이년시가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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