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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일제 코흐 (1.15)

입력
2018.01.15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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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헨발트의 마녀' 일제 코흐에게 49년 오늘 종신형이 선고됐다.
'부헨발트의 마녀' 일제 코흐에게 49년 오늘 종신형이 선고됐다.

일제 코흐(Ilse Koch, 1906~1967)는 나치의 악마성을 부각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그는 부헨발트와 마이다네크 강제수용소 소장을 지낸 카를 오토 코흐(Karl Otto Koch, 1897~1945)의 아내이자 히틀러 친위대(SS, SchutzStaffel) 여성대원으로 악명을 떨쳐, ‘부헨발트의 마녀’라고 불렸다. 그는 1949년 1월 15일 독일(서독) 법정에서 열린 두 번째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고, 항소와 가석방 탄원, 국제인권위원회 제소 등이 모두 무위로 끝나자 자살로 생을 마쳤다.

독일 드레스덴의 농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기엔 비교적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다고 알려져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장 직공을 거쳐 도서관 사서가 됐고, 20대에 나치당에 가입해 베를린 인근의 유대인 수용소 경비원으로 일하다 30세에 수용소장이던 카를 오토 코흐와 결혼했다. 수용소는 그의 제국이었고,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재판 과정에서 논란이 된 그의 혐의는 엽기적이다. 해부 기술을 배워 재미 삼아 시신을 훼손했고, 시신의 피부를 벗겨 전등갓이나 책 장정, 장갑 등을 만들었고, 문신을 새긴 피부를 수집했고, 탐나는 문신을 얻기 위해 처형을 독려했고, 식탁에 두개골을 장식품으로 두는 것도 모자라 두개골을 모아 압축ㆍ성형해 테이블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수감자들의 성기를 훼손하는 등 성적 학대를 일삼았고, 남성 수용동에 여성을 나체로 수감한 뒤 관찰했다는 주장도 있다.

부부는 수용소에서 압수한 현금과 귀중품으로 호화 실내 스포츠센터를 건립하는 등 사치를 일삼았다. 횡령 사례들이 적발돼 남편 칼 오토 코흐는 43년 게슈타포에 체포돼 친위대 재판을 거쳐 패전 직전인 45년 4월 처형됐다. 일제 코흐는 석방됐다가 45년 6월 미군에 의해 체포됐다.

그는 47년 미군 전범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가 이듬해 6월 “잔혹 범죄에 대한 확정적 증거가 없다”는 임시군정장관의 판단으로 4년 형으로 감형됐다. 그는 49년 석방됐지만, 다시 독일 법정에 세워졌다. 법원은 43~45년 범죄만 판단한 전범법정과 달리 39년 이후의 모든 죄상을 따졌다. 그의 혐의 중 일부만 진실이어도 종신형이 결코 무거운 형벌은 아닐 테지만, 죄목이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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