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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 리더] “비디오 연체료 40달러 억울해” 넷플릭스가 시작됐다

입력
2017.04.2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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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자체제작 '하우스 오브 카드' 에미상 등 휩쓸어

평균연봉 美 IT업계 1위… 매년 성과 하위 20% 해고

"성과만큼 권한 줘… CEO의 역할은 비전 제시"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한국을 포함한 130여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 제공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한국을 포함한 130여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 제공

1996년의 어느 날,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리드 헤이스팅스(당시 36세)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비디오를 빌려본 뒤 제때 반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왜 비싼 연체료를 물어야 하느냐’는 거였다. 당시 그는 미국 최대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터’에서 빌린 영화 ‘아폴로13’을 6주 늦게 반납해 40달러를 물어냈는데, 집에서 먼 대여점까지 갔다 와야 하는 데다 조금 늦었다고 연체료까지 내야 하는 게 억울했다.

그때 그에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거실에서 원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감상하고 즉시 무료로 반납할 수 있는 서비스. 한 편을 다 보고 난 뒤 그 후속 편을 바로 이어 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당시만 해도 황당한 아이디어로 여겨졌지만, 그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언젠가는 이를 가능하게 해줄 것으로 봤다.

헤이스팅스는 곧장 실행에 옮겼다. 옛 직장 동료인 마크 랜돌프와 캘리포니아 로스가토스시에서 새 회사를 만들었다. 회사 이름은 인터넷을 뜻하는 ‘넷’과 영화 주문을 일컫는 ‘플릭스’를 합쳐 ‘넷플릭스’라고 지었다. 말 그대로 인터넷에서 영화를 주문하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올해 스무살이 된 넷플릭스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1997년 미국에서 DVD 배송 업체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190개국에 진출해 있는 세계 최대 동영상 서비스 업체다. 한 달에 최저 9,500원만 내면 190여개국의 영화,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콘텐츠를 무제한 시청할 수 있다. 모든 콘텐츠는 전 회차가 한꺼번에 공개되고, 영상의 앞뒤 중간 어디에도 광고가 붙지 않는다. 가입자는 곧 1억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현재 시가총액은 615억달러(약 70조원) 정도다. 창립자인 헤이스팅스는 여전히 넷플릭스를 이끌고 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한국을 포함한 130여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 제공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한국을 포함한 130여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 제공

소프트웨어 개발자서 경영자가 되기까지

헤이스팅스는 1960년 10월 미국 메사추세츠 보스턴시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1983년 보든대학에서 수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평화봉사단의 일원이 돼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2년 동안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수학을 가르쳤다. 다시 미국에 돌아와서는 명문 스탠포드대학교에 진학, 1988년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헤이스팅스는 ‘아답티드 테크놀로지’라는 정보기술(IT) 회사에서 개발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소프트웨어의 허점을 찾아내 고쳐주는 도구를 만드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가 재직하던 시절 회사 CEO는 미국을 대표하는 직업여성 50명 명단에도 오른 적이 있는 오드리 맥린이었는데, 헤이스팅스는 훗날 “그에게 두 가지 일을 어정쩡하게 하는 것보다 하나를 제대로 하는 게 낫다는 집중의 가치를 배웠다”고 털어놓았다.

헤이스팅스가 사업가로서 첫 발을 뗀 건 1991년 소프트웨어 기업 ‘퓨어 소프트웨어’를 설립하면서다. 그의 첫 회사는 초기부터 빠른 성장 속도를 보였다. 매출은 매년 2배씩 늘었고 직원 수도 10명에서 40명으로, 120명을 넘어 640명으로 불었다. 자연스럽게 설립자인 그의 역할은 개발자에서 경영자로 바뀌어 갔다.

하지만 회사가 승승장구할수록 헤이스팅스는 회사를 이끄는 게 자신의 능력 밖이란 생각이 커졌다. “그럴수록 도전하기보다 현재 잘 할 수 있는 일에만 매진했고 비판에는 귀를 닫았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감을 잃은 그는 두 번에 걸쳐 자신을 해고하려 했지만 번번이 이사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회사는 1995년 기업공개(IPO)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결국 헤이스팅스는 1997년 퓨어 소프트웨어를 래셔널 소프트웨어에 매각했다. 래셔널 소프트웨어는 헤이스팅스에게 최고기술책임자(CTO)직을 제안했지만 그는 합병 직후 회사를 떠났다. 헤이스팅스가 매각을 통해 손에 쥔 금액은 7억5,000만달러(약 8,560억원). 이는 이후 넷플릭스 설립에 종잣돈이 된다.

미 최대 DVD 대여 회사 쓰러뜨리고, 세계 최대 동영상 업체로

1997년 넷플릭스를 설립한 그는 1998년 4월 30명의 직원과 고작 925개의 DVD를 갖고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사업으로는 이미 시장을 장악한 블록버스터와 경쟁이 될 리가 없었다.

이듬해 헤이스팅스는 실험에 나선다. 매달 일정 금액(5달러)을 내고 넷플릭스에 가입하면 넷플릭스가 보유한 DVD를 무제한 임대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은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연체료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블록버스터의 연체료 폭탄에 신물이 나있던 미국인들은 이 같은 서비스에 열광했고, 넷플릭스는 빠르게 가입자를 늘려 나갔다.

2000년 헤이스팅스는 경쟁사 블록버스터를 찾아가 넷플릭스 지분 49%을 인수하라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이후 그는 2002년 보란 듯 넷플릭스 IPO에 성공했고, 2003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2007년 DVD 누적 주문 10억개를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헤이스팅스는 오히려 그때부터 사업의 중심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1년 넷플릭스의 DVD 대여 수익은 대략 2006년의 절반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전체 매출은 성장했다. 반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DVD 사업만 고수했던 블록버스터는 2010년 파산했다.

그 뒤 넷플릭스의 발자취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2013년 처음으로 내놓은 자체 제작(오리지널) 콘텐츠 ‘하우스 오브 카드’로 그 해 미국 골든글로브상과 에미상을 휩쓸며 파란을 일으킨 뒤 자체 제작 비중을 늘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케이블TV나 인터넷(IP)TV같은 유료 방송을 끊고 넷플릭스로 몰려 들었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에도 진출했다. 넷플릭스가 역대 한국 영화 중 가장 많은 57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올 여름 전 세계 공개를 앞두고 있다.

넷플릭스가 제작비 570억원을 투입한 봉준의 감독의 영화 '옥자'가 6월 개봉한다. 옥자는 산골소녀 미자와 비밀리에 태어난 거대 동물 옥자의 우정을 그렸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가 제작비 570억원을 투입한 봉준의 감독의 영화 '옥자'가 6월 개봉한다. 옥자는 산골소녀 미자와 비밀리에 태어난 거대 동물 옥자의 우정을 그렸다. 넷플릭스 제공

최고만이 살아남는 넷플릭스 기업 문화

넷플릭스에 관한 책 ‘넷플릭스드’를 쓴 지나 키팅은 헤이스팅스를 “내가 만나 본 가장 이성적인 CEO”라며 “넷플릭스와 헤이스팅스는 떼려야 뗄 수 없고, 그의 성향은 넷플릭스에 점점 더 많이 투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직원 처우가 좋기로 손 꼽히는 기업이다. 모든 직원이 억대 연봉을 받고, 근무 시간 제한도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상사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바로 추진할 수 있고, 자기가 맡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언제든 휴가를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 직원들에겐 그만큼 엄격한 조건이 따른다. 근속 연수나 회사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헤이스팅스의 관심사가 아니다. 만약 누군가 100%의 노력을 기울였는데 80%의 성과를 냈다면 아쉽게도 그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 넷플릭스는 매년 전 직원의 성과를 평가해 하위 20%를 해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퇴직금은 두둑이 챙겨준다. 반대로 성과가 뛰어난 직원에게는 연차와 관계 없이 더 많은 권한과 혜택을 부여한다. 헤이스팅스는 “우리는 프로스포츠 팀이지 아이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팀이 아니다”라며 “넷플릭스 직원은 스타 플레이어인만큼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뛰어난 인재를 찾아 성과만큼 권한을 주는 그의 경영 방식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보인다. 2013년 넷플릭스가 ‘하우스 오브 카드’를 준비할 때, 헤이스팅스는 이 제안을 단 30분 들춰봤을 뿐 실질적인 제작 결정은 테드 사라도스 최고콘텐츠책임자(CCO)가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넷플릭스가 미국 내에서만 사업을 하던 때에도 헤이스팅스는 해외 진출을 목표로 제시하기만 하고 언제, 어느 국가에 나갈지는 실무진의의 결정에 따랐다. 헤이스팅스는 “나는 CEO로서 가능한 적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내 역할은 비전을 제시하는 일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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