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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 도용 일쑤... PC방ㆍ술집 ‘10대 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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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 도용 일쑤... PC방ㆍ술집 ‘10대 포비아’

입력
2016.08.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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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법 4번 위반하면 영업정지

청소년에 술 판매 땐 징역 2년

업주만 처벌 받는 점 간파 농락

이용료 부족할 땐 악의적 신고도

경찰도 “처벌 규정 없어…” 손 놔

쌍벌죄 도입 등 미비점 보완해야

심야시간 청소년이 출입해 적발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PC방에 30일 청소년에게 성인 신분증 대여를 금지하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심야시간 청소년이 출입해 적발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PC방에 30일 청소년에게 성인 신분증 대여를 금지하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PC방을 운영하는 박영식(45)씨는 지난달 18일 밤만 생각하면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심야 시간대 미성년자를 PC방에 출입시켰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PC방을 찾은 청소년은 A(17)군 등 3명. 이들은 성인으로 인증된 선배 아이디로 로그인해 게임을 했다. 그런 다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후 10시가 지나 PC방에 왔다’는 글과 사진을 올려 자랑했고, 게시물을 본 다른 학생들이 신고한 것이다. 박씨는 이번이 두 번째 적발이라 과징금 150만원을 내야 했다. 1차 적발 때는 50만원을 물었다. 박씨는 30일 “물론 철저하게 검사하지 못한 잘못은 있지만 미성년자들이 속이려고 작정하면 잡아내기 쉽지 않아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10대들이 신분을 속이고 PC방과 술집을 드나들어 업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은 오후 10시 이후 출입이 금지된 PC방ㆍ술집을 찾아도 처벌은 업주만 받는다는 점을 간파하고 밤 거리를 맘껏 활보하고 있다.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게임법)상 미성년자의 PC방 출입 시간은 오전 9시~오후 10시다. 이를 어기면 처음에는 영업정지 10일이나 과징금 50만원 처분을 받고 4번 단속되면 아예 영업을 접어야 한다. 청소년보호법도 청소년에게 술 판매를 금지하고 있어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밤 늦은 업소 출입에 그치는 게 아니라 청소년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악의적인 신고를 한다. 지난 6월 고교생 B(17)군은 서울 도봉구 창동에 있는 한 PC방을 신고했다. 평소 친분이 있는 사장 조모(46)씨가 추가 이용 시간을 주지 않자 이튿날 아르바이트생만 있는 틈을 노려 오후 11시까지 머물다 곧장 경찰에 위반 사실을 통보한 것이다. 이용료를 지불하지 않으려 신고를 악용하는 경우도 많다. 경찰은 지난 6월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 PC방이 미성년자 심야 출입규정을 어겼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신고자는 10대 C(16)군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PC방비를 낼 돈이 부족해 업주를 고발했다고 진술했다.

영악한 10대에 휘둘리기는 술집도 마찬가지다. 신분증 도용은 기본이고 음주 사실을 SNS에 떠벌려 업주를 곤경에 빠뜨리곤 한다. 수유동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사장 박모(38)씨는 지난달 17일 여고생 2명에게 술을 팔았다가 30일 영업정지를 당했다. 두 사람이 제시한 성인 선배의 주민등록증 사진과 실물이 너무 흡사해 출입을 허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여학생들이 SNS에 남긴 인증샷을 본 친구 중 한 명이 박씨 가게를 처벌해 달라며 112에 신고했다.

업주들도 청소년들의 도 넘은 행태를 걸러내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으나 역부족인 상황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PC방 사장 김모(52)씨는 올해 1월 미성년자 출입 위반으로 과징금을 낸 뒤 오후 10시부터는 모든 고객의 신분증을 무조건 확인했고, 성인 인증이 돼 있는 회원도 신분증이 없으면 돌려보냈다. 이렇게 꼼꼼히 점검을 했는데도 4월 다시 적발됐다. 김씨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청소년들이 심야 출입을 시도해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강남을 중심으로 영업정지를 피하기 위해 아예 오후 10시까지만 문을 여는 PC방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경찰은 10대들의 악성 신고를 처벌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게임법에는 신고 고의성 여부와 관계없이 미성년자에게 책임을 묻는 규정 자체가 없고, 청소년의 신분증 위ㆍ변조 역시 청소년보호법의 처벌 대상이 아니다. 서울의 한 일선서 관계자는 “PC방 및 술집의 미성년자 출입규정 위반과 관련한 신고가 한 달에 평균 5건 이상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며 “10대들이 신고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처벌 근거가 없어 참고인 진술만 받고 돌려보내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쌍벌죄 도입 등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해 영세 사업자의 영업권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궁극적으로 목적성을 갖고 불법을 유발하는 신고 행위는 제재해야 한다”며 “현행법상 미성년자를 형사처벌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학교와 부모 등에게 통보해 잘못된 행동에 경각심을 갖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ㆍ사진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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