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영하 기자

등록 : 2018.05.08 04:40

맞춤법 틀리고 글씨 어색하지만… 외국인 학생들 “부모님 사랑해요”

등록 : 2018.05.08 04:40

중앙대서 한국어 배우는 유학생들

어버이날 맞아 모국에 손편지 보내

“전화하거나 만나서는 못할 말들

거리낌 없이 담아서 표현했어요”

[저작권 한국일보]어버이날 기념 한글 편지쓰기에 도전한 외국인 학생들. 왼쪽부터 보드체렝 게렐트래뒤씨, 도티 튀엣씨, 도 티 마이씨, 응웬 티 화이 프엉씨, 레투짱씨, 우갈용씨. 손영하 기자

‘난 여기 잘 살고 있다.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도(아니어도) 사람들에게서 도와를(도움을) 받기 때문에 잘 지내고 있다.

(중략) 나는 엄마에게 우리 가족, 우리 엄마를 많이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중앙대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베트남인 도 티 튀엣(23)씨가 쓴 어버이날 편지다. 삐뚤삐뚤한 글씨에 어색한 문장,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이 잔뜩 담겨 있지만 부모 걱정을 덜어드리고 그리운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어버이날을 맞아 본국에 있는 부모에게 한글 편지쓰기에 도전한 외국인 학생 6명을 4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한 강의실에서 만났다.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혹은 한국 문화가 좋아 이곳을 찾은 학생들이다.

외국인이, 그들에게 외국어인 한국어로 쓴 글이지만 안에 담긴 내용만큼은 부모와 떨어져 사는 한국인이 썼을 법한 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비용을 부모가 지원한다는 중국인 우갈용(21)씨는 ‘돈을 많이 써요. 미안해요’라고 솔직하게 용서를 빌며, ‘(이번 여름) 방학 때 중국에 돌아갈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방학 때 친구들과 놀기 위해 한국에 계속 있을 계획이란다. 베트남에서 온 레투짱(24)씨는 ‘사실은 엄마와 성격이 잘 맞지 않아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운을 뗀 뒤 ‘(한국에 오고 나서야)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화해의 손길을 건넸다.

홀로 있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걱정이 앞섰다. 얼마 전 아버지가 숨졌다는 베트남인 응웬 티 화이 프엉(24)씨는 본국에 혼자 사는 어머니에게 ‘어떤 일이 있든지 아빠 대신 나와 동생은 엄마를 챙겨 드리고 사랑하겠어요’라고 밝혔다. 프엉씨의 남동생 역시 한국에 함께 와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베트남인 도 티 마이(22)씨는 한국에서 만난 제2의 아버지를 소개하며 부모를 안심시켰다. ‘바람에 눕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핀 꽃들이 어디 있더냐? 결국 그 바람이 너의 뿌리를 굳세게 할 것이다’라는 시구를 편지에 썼는데, “제목은 알지 못하지만 제2의 아버지가 날 위로해주기 위해 알려준 시”라며 “어머니가 내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실 걸 알기에 이 시를 썼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제2의 아버지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음식점 주인 아저씨다.

어버이날 편지쓰기를 통해 손편지의 매력에 빠진 학생도 있다. 몽골에서 온 보드체렝 게렐트래뒤(29)씨는 “전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면 부끄러워서 아버지에게 사랑한단 말을 하지 못한다”라며 “이번 손편지엔 내 감정을 거리낌 없이 담았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이메일과 휴대폰을 통해 소통한 세대인 이들 6명 중 4명은 “태어나서 처음 손편지를 써 봤다”고 했다.

6명의 고국인 중국 몽골 베트남엔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념하는 날이 따로 있고, 부모에게 동시에 감사를 전하는 날은 없다. 이번 편지가 이들 부모가 받는 최초의 ‘어버이날 편지’인 셈. 한글 편지는 모국어로 쓰인 같은 내용의 편지와 함께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배달된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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