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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사교육, 로맨스도 불륜일 수도 없는 이유

입력
2017.08.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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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는 여느 친구들처럼 학원 뺑뺑이를 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아이가 몇 개의 학원을 얼마나 많이 다니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평일 오후엔 그렇게 좋아하는 휴대폰 오락을 하기 힘들 정도로 시간이 빠듯하다는 것, 그리고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을 계속 다닐 수 있기 위해 엄마와 밤마다 씨름을 한다는 것 정도만 안다. 그게 아이의 창의성을 무참히 짓밟는 거라고 간혹 아이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며 내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할 뿐, 아이에 대한 사교육 ‘학대’를 중단할 어떤 조치도 취한 적은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교육의 노예가 되지 않고서는 아이가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내 뇌리에 똬리를 틀고 있음이리라.

얼마 전 진보교육감의 대표주자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두 자녀를 외고에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방아에 올랐다. 그가 외고ㆍ자사고를 특권학교로 규정하고 폐지 당위성을 누차 강조해 왔으니, 학부모들로선 배신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불편한 시선이 쏠린 건 당연했다. 그는 결국 사과했다. 마치 지금 자녀를 외고와 자사고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들이 모두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모로서 아이들 선택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었던 면이 있다. 하지만 교육감으로서 공적 책무를 다해야 하는 입장에서 매우 무겁고 불편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비판하시는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느낀다.”

최근엔 사교육 반대에 앞장서 온 한 시민단체 간부가 자녀를 서울 강남의 고액학원에 보내 영재학교에 입학시킨 사실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의 자녀는 사교육 1번지라는 강남 대치동에 위치한 학원에 다녔으며 올해 영재고에 합격했다고 한다. 이 간부 또한 각종 강연에 출연해 “과도한 사교육 반대” 등을 설파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하니 여론이 격분할만했다.

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장황하게 해명을 했지만 솔직히 그의 자녀가 타고난 영재인지 아닌지, 얼마짜리 학원에 얼마 동안 다녔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눈길이 간 건 “지금은 다수의 학부모가 사교육을 시키기에 안 시키는 사람만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는 일반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그의 인식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사교육의 주범이 공교육의 실패라고 말한다. 공감은 하지만, 이런 의문은 아직 풀지 못했다. 정말 그 뿐일까. 그렇다면 지금의 중장년 세대가 학생이던 시절, 학교 교육은 사교육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말 훌륭했던 걸까. 만약 공교육에 지금보다 많은 투자가 이뤄져 질이 높아진다면, 한국 사회에서 사교육은 정말 자취를 감출 수 있을까.

특권학교를 폐지하고, 대입 제도를 개선하는 등 새 정부의 교육 개혁 작업이 한창이지만 뭐가 대단히 달라지겠느냐는 자조가 앞서는 건 그래서다. 대학에 서열이 있고, 그 서열이 취업의 안정성, 소득의 격차, 사회적 네트워크의 크기와 질을 결정하는 한 빚을 내서라도 사교육을 시키려는 부모들의 열정을 누그러뜨릴 수 없을 것이다.

그 뿐인가. 연간 40조원이 넘는 시장이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사교육 종사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부모들의 심리를 자극할 테다. 교육제도가 바뀌면 2, 3년 뒤 사교육 시장이 최대 호황을 맞는다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도처에 공범들이 널려있는데 어느 한 명의 범인을 잡는다 한들 대단한 변화를 기대하긴 무리다. 사교육 해소, 그러니까 교육의 정상화는 긴 안목으로 인내심을 갖고 사회 전체 구조를 조금씩 바꿔나갈 때 이뤄낼 수 있는 지난한 과제다. 이런 현실에서 사교육은 개개인의 로맨스일 수도, 불륜일 수도 없다. 그러니 본인 자녀의 사교육을 로맨스로 포장하든 말든 최소한 남의 사교육을 불륜으로 몰아세워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장관이든 교육감이든 시민단체 간부이든, 공과 사는 분리해야 한다고 대중 정서를 자극하는 호소를 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이영태 정책사회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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