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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칼럼] 절대평가가 교육개혁의 답이다

입력
2017.03.1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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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석차 매기려는 상대평가

교사 태만과 사교육 열풍 불러

걸림돌 3점 세트부터 제거해야

우리 교육이 아프다. 가르쳐야 할 학교나 교사는 경쟁이 없고, 배워야 할 학생만 지독한 경쟁을 한다. 학교나 교사는 왜 경쟁을 안 하나? 교육과정이 같기 때문이다. 학교가 어딘들, 교사가 누군들 차이가 없다. 상대평가 때문이다. 전교 석차를 내려면 같은 시험을 봐야 하고, 같은 시험을 보려면 같은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교사가 노력할 게 별로 없다.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다른 학교와 비교하지 않는다.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정해져 있으니 학교시험에 대비하는 내신 사교육이 가능하고 유용하다. 교육당국은 사교육을 없앤다며 입시에서 내신 비중을 높이지만, 학교시험을 중시하면 중시할수록 학생들은 학원으로 더 가게 되어있다. 학교내신시험이 수능이나 논술보다 더 지식중심의 시험이다. 지금까지의 실증적 결과도 그렇다. 그래도 교육당국은 학생부 내신을 높여야 공교육이 정상화된다는 잘못된 전제를 바꾸지 않는다. 심지어 비교과 중심이라는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을 계속 높여 대치동을 살찌우면서 학부모를 괴롭히고 있다.

그럼 교육과정을 자율화하고 절대평가(성취평가)를 도입하면 될까. 교사마다 자기가 개발한 교재를 쓰고, 교사마다 자기가 낸 문제로 시험을 봐서 학생들을 절대평가 하면 될까. 그렇다. 된다. 교육과정 자율화와 절대평가(성취평가) 도입이 교육개혁의 핵심이지만 지금은 실행이 불가능하다. 크게 세 가지 이유다.

첫째, 교사들의 반발이다. 교사들 본래의 순수한 교육 열의와는 별개로 지금의 획일적 교육과정이 자율적으로 바뀌면 교사들의 근무환경도 무경쟁체제에서 경쟁체제로 바뀐다. 이에 대해서는 교총이든 전교조든 반대한다. 우리 사회에서 퇴출까지 가능한 중간평가가 없는 유일한 집단이 바로 교사들이다. 그걸 조금이라도 가능케 하는 게 학생과 학부모가 참여하는 교원능력개발평가인데, 교원평가 관련 법률개정안은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 묶여 있다. 야당의 지지기반인 전교조의 절대 반대가 배경이다.

둘째, 소위 SKY 등 명문대의 방해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학벌사회의 표상이 소위 SKY다. SKY는 학생을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잘 뽑아서 명문이다. 그리고 이 명문대 출신이 우리 사회의 상류 기득권층을 형성해왔다. 그런데 초중등학교에서 상대평가를 없애고 절대평가를 하면 명문대는 손쉽게 우수학생을 뽑던 우월적 지위가 흔들린다. 교육부는 초중등교육을 왜곡시키는 명문대 입시제도를 바로잡으려고 온갖 수단을 강구했으나 실패했다. 대학자율화라는 명분을 앞세운 명문대의 반발 때문이다.

셋째, 우리 국민의 잘못된 선입견이다. 유교전통의 사회는 서열구조에 익숙하다. 그래서 우리는 별 이유도 없이 모든 일에 순위를 매겨야 속이 편하다. 공부는 물론 싸움도, 잘 생긴 것도 심지어는 인간성도 짱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개성보다는 일등에 집착한다. 소위 일등병이다. 명문대는 이런 인식을 파고 든다.

절대평가만 하면, 대부분의 교사들이 '수'나 '우'를 줄 것 아닌가. 하지만 그것도 얼마든지 가려낼 수 있다. 일 년에 한두 번의 전국적 학력평가 시험을 거치면 각 학교의 정실평가 여부가 드러난다. 물론 학력평가의 개별적 결과는 본인 이외에는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교사들은 자신들의 교육성과가 적나라하게 비교될까 봐 전국적 학력평가에 반대한다.

교육 개혁을 가로막아온 3대 요인 어느 하나 쉬이 제거하기 어렵다. 이 걸림돌을 없애고 교육 개혁 핵심인 교육과정의 자율화와 내신 절대평가(성취평가)에 성공하면 우리 교육의 그림이 달라진다. 학교와 교사들의 경쟁이 불가피해지고, 학생들은 국어, 수학, 영어 성적을 위한 무한 경쟁에서 해방된다. 사교육도 설 땅을 잃는다. 대학은 선발 경쟁이 아닌 교육경쟁으로 명문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대학의 서열화가 깨지는 대신 전공별, 학과별 우수 대학이 나타난다. 학벌 사회의 폐해가 줄어들 것임은 물론이다.

정두언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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