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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라' 재출간해도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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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라' 재출간해도 문제 없다?

입력
2017.09.1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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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음란물로 판정, 금서가 된 마광수 '즐거운 사라',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
1990년대 음란물로 판정, 금서가 된 마광수 '즐거운 사라',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

5일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별세가 알려지며 그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즐거운 사라’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대학생 사라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담은 이 소설은 1995년 대법원에서 음란물로 판결 난 후 ‘금서’가 됐다. 마 교수 별세 후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에서는 ‘예약한도 초과’가 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음란물 판결 26년이 지난 지금 ‘즐거운 사라’는 여전히 출간될 수 없는 책일까. 지금도 ‘즐거운 사라’ 같은 금서가 등장할 수 있는 것일까.

소설 ‘즐거운 사라’는 1987년 출판물 해금 조치 이후인 문민정부에서 지정된 금서다. 이념이나 정치성이 아닌 음란성이 기준이 돼 파장은 더 컸고 논란은 뜨거웠다.

1970~80년대 출판계는 ‘금서의 시절’이었다. 김지하의 시집 ‘오적’이 1970년 5월 반체제 도서라는 이유로 금서가 됐고, 김지하는 반공법(국가보안법의 전신, 1980년 폐지) 위반으로 체포됐다. ‘사상의 은사’로 불린 고 리영희 한양대 교수의 대표작 ‘전환시대의 논리’는 1974년 국가 체제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금서가 됐고, 리 교수 역시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1974년 긴급조치 9호부터 전두환 정권 말기까지 이 책을 소지하는 사람 모두 체포됐다. 리 교수의 전작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역시 반공법 위반으로 1977년 금서가 됐다.

1979년 인문서 ‘해방전후사의 인식’, 1984년 함세웅 신부의 ‘해방신학의 올바른 이해’, 1986년 박현채의 ‘한국경제구조론’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도 금서가 됐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자이자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는 1986년 금서가 됐다.

월북 문인들의 책도 금서였다. 1987년 6.29 선언을 기점으로 한 ‘출판자유화 조치’로 판금도서 650종 중 431종이 해금 돼 정지용ㆍ김기림ㆍ백석ㆍ임화의 시, 이기영ㆍ박태원ㆍ한설야의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1990년대에는 외설과 퇴폐라는 딱지가 붙은 금서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1992년 ‘즐거운 사라’를 시작으로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 이현세 만화 ‘천국의 신화’ 등이 잇달아 법정에 섰다. 금서의 기준이 이념에서 외설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전에도 정비석의 ‘자유부인’(1954), 염재만의 ‘반노’(1975) 등 성과 관련된 금서들이 있긴 했으나 사회적 파장은 ‘즐거운 사라’만큼은 아니었다.

2017년에도 금서는 존재한다. 간행물 윤리위원회가 출판물의 유해성 여부를 판단, 청소년 유해물에는 ‘19금’ 표시를 해야 하며, 유해물은 출판 유통을 금지한다. 위반 시 3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8월 기준 올해에만 13종이 ‘유해물’로 판정됐다.

‘즐거운 사라’와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각각 1995년, 2000년 대법원에서 ‘음란물’로 확정 판결 받았다. 이 책들이 다시 출간되려면 두 사건의 유죄 판결이 재심을 통해 번복돼야 한다. 판사 출신 도진기 작가는 “2008년 대법원이 ‘문학성이 깃들어 있으면 음란물이 아니다’라며 음란물 판정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며 “‘즐거운 사라’가 재출간된다면 음란물 판정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법원은 1991년과 1996년 ‘즐거운 사라’와 ‘내게 거짓말을 해봐’ 출판 당시 사회 통념을 기준으로 음란성을 판결했을 뿐이고, 2017년에 이 책을 쓰고 출판하는 것은 각각 ‘다른 사건’이기 때문에 재출간물을 음란물이 아니라고 판결해도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도 작가는 같은 이유로 “초판이 중고로 거래된다고 해도 처벌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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