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지평선]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의 그늘

입력
2017.06.19 16:59
0 0

우리나라 비정규직 문제 악화의 시점은 1998년이다.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신탁통치’를 받아야 했던 그해에 노동유연화 정책에 따라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가 각각 합법화했다. 그 이후 전 같으면 정규직을 썼을 일에도 비정규직을 쓰면서 정규직에 비해 고용조건, 임금, 복지 등에서 턱없이 열악한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50% 이상이 될 정도로 급증했다. 부지불식 간에 정규직 일자리는 손 꼽을 정도로 줄어들고, 질 낮은 비정규직이 고용시장에 넘쳐나는 상황이 됐다.

▦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선언은 공공부문부터라도 질 낮은 일자리를 없애겠다는 얘기다. 정부와 공공기관 등이 앞장서면 민간도 따라 나서리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실제 그런 기대가 현실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문 대통령 선언 후 기업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계획 발표가 이어졌다. 롯데그룹은 3년에 걸쳐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SK브로드밴드는 초고속인터넷 설치ㆍ수리업무를 하는 파견근로자 5,200명을 자회사를 설립해 정규직으로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 비정규직 비중이 높은 은행과 건설업계 등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동참 선언이 이어졌다. 언뜻 보기엔 대통령의 선언만으로도 비정규직 문제가 크게 해소될 것 같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비정규직 수백 명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앞장서 밝힌 A 기업의 속사정만 봐도 그렇다. 한 임원에 따르면, 이 회사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커녕 있는 정규직도 대량 해고해야 할 상황이었다. 지사(지점)의 대거 축소 계획도 이미 서 있었다.

▦ 하지만 경영진은 문 대통령의 선언에 맞춰 가장 먼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을 밝혔다. 경영진의 계산은 다른 게 아니었다. 사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재배치하는 대신, 위탁업체와의 점진적 계약 해지를 통해 정규직 전환 인력의 세 배에 달하는 콜센터 등의 파견직 근로자를 해고한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뉴스에는 300명의 정규직 전환 얘기만 알려지겠지만, 그 이면에선 900명의 감춰진 비정규직 근로자의 일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식이다. 모르긴 몰라도 ‘눈 가리고 아옹’하는 건 비단 이 회사뿐만 아닐 것이다. 비정규직 정책의 그늘도 살펴야 할 이유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