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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는 도시공간 청년에 내주고, 그들의 콘텐츠로 활력 불어넣어야”

입력
2018.08.04 09:00
수정
2018.08.04 10:53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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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이스 노아’ 시작한 이유

창업센터 많지만 입주 절차 복잡

누구나 조건 없이 만나고 교류할

청년 공간모임 고민하다 만들어

# ‘무중력지대 대방동’ 운영은

고시촌이라 거실 없는 청년 많아

공유거실 콘셉트로 라운지 조성

컬러프린터가 특히 반응 좋았다

# ‘민간 안심부동산’ 준비 중

기업ㆍ건물주 등에 공간 기부받고

청년들이 도전하도록 만들 생각

잘 육성하면 그게 바로 도시재생

정수현 앤스페이스 대표는 “청년들을 공간의 이용자로만 보는 관점을 뛰어넘어, 이들을 다양한 공간창업자로 육성할 때 지역에 생기가 돌고 도시재생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수현 앤스페이스 대표는 “청년들을 공간의 이용자로만 보는 관점을 뛰어넘어, 이들을 다양한 공간창업자로 육성할 때 지역에 생기가 돌고 도시재생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년이 마음 편히 이용할 공간을 조성하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시도죠. 하지만 다음은요? 더 궁극적 목표는 공간의, 부동산의 단순 이용자로 남는 게 아니라 청년 스스로 생산의 주체가 되는 거잖아요. 역세권 상가 공실률은 높아 가는데 정작 청년들은 마음 놓고 창업할 안심부동산이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수현(34) 앤스페이스 대표는 청년 창업가보다 ‘공간 유통 전문가’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베테랑이다. 2012년 청년들이 하루 5,000원의 이용료만 내고 자유롭게 쓰는 사무실 공간 ‘스페이스 노아’를 만들어 히트했다. 1인 사업가 및 창작자들의 방주를 표방한 스페이스 노아는 여러 청년 모임을 끌어들이며 소위 룸살롱의 거리 북창동에서 ‘지식인 살롱’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서서히 영역을 확대하는 ‘청년회관’들의 효시 격인 셈이다.

2014년부터는 청년공간 모델이 된 ‘무중력지대 대방동’을 위탁 운영해 회원 2,500여명을 끌어들이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듬해에는 회의실, 스터디룸, 연습실, 연회장 등을 시간/일 단위로 예약할 수 있는 플랫폼 ‘스페이스 클라우드’를 출범했고, 이 청년 벤처는 국내 최대 모임공간 서비스로 성장했다. 올해는 더 많은 청년의 공간창업을 지원할 사회공헌재단 설립도 준비 중이라는 정씨를 지난달 30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났다.

-창업 전 교육시민단체 활동 이력이 인상적이다.

“청어람 아카데미와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하 사걱세)에서 일했는데 각각 단체에서 공간과 청년에 대한 고민이 쌓였던 것 같다. 청어람 아카데미에서는 4년간 교회가 사회에 제공한 공간의 대관 및 관리 업무를 했다. 공간을 공유하기만 해도 수많은 시민, 사회, 문화단체에 얼마나 잘 쓰일 수 있는지를 배웠다. 하나의 캠퍼스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스페이스 노아가 빠르게 성장한 것도 그 덕이다. 사걱세 대학정책팀에서 일할 당시엔 막 스타트업 문화가 시작되던 참이었는데 청년들이 사무실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걸 많이 봤다. 창업 관련 센터도 많았지만 입주 절차가 복잡하고, 이미 완성된 비즈니스를 가진 팀에만 기회가 갔다. 누구나 조건 없이 시작하고, 만나고, 교류할 사회적 자본이 드물었다. 그런 고민이 앤스페이스 창업의 토대가 됐다.”

-콘텐츠가 스페이스 노아 등 공간을 어떻게 키웠나.

“창의적 그룹에 공간을 무료로 빌려 주거나 할인해서 공간 안에 콘텐츠가 끊이지 않게 했다. 실례로 스페이스 노아 내부 벽 한쪽을 청년 작가들에게 무상 전시공간으로 열어 뒀다.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작가가 작은 갤러리를 열고 사람들을 모았다. 이들은 전시 공간을 얻어 좋고, 스페이스 노아는 공간을 알리고 카페 수입을 올려 좋았던 거다

무중력지대 대방동이 1년 만에 회원 2,500명의 공간이 된 것도 입주업체이자 사회적기업인 ‘어썸스쿨’의 기여가 컸다. 큰 이벤트를 통해 한 번에 200~300명이 공간을 찾다 보니, 한 번 찾아와 본 분들의 멤버십이 형성되고 이들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었다. 그게 커뮤니티 공간의 핵심이다. 이용자와 콘텐츠가 가져오는 사람의 자원, 현금과 문화의 흐름이 입혀지며 공간의 가치가 높아지는 전략이다.”

-무중력지대 대방동 위탁운영에 뛰어든 이유는.

“7년 가까이 쌓은 노하우가 갖춰진 상태였다. 330㎡(약 100평) 규모 공간을 운영할 때 필요한 기본 시설과 비용 관리, 커뮤니티와 각종 프로그램 운영법, 사람들을 끌어오는 노하우 등까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노하우를 굳이 우리만 가질 이유는 없었다. 독점기업이 될 것도 아니었고, 비영리단체 출신이라 서툰 청년 누구라도 우리 매뉴얼만 익히면 공간을 관리하고 지역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공명심도 있었다. 그걸 무중력지대라는 사업을 통해 할 수 있어 신났다.”

-운영 당시 특별히 집중한 부분은.

“무중력지대 대방동 인근은 고시생이 모인 지역이라 거실이 없는 청년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공유거실의 콘셉트로 라운지를 만들고, 협업공간에 부엌을 넣어 교류를 촉진했다. 컬러프린터를 종이만 가져오면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던 게 특히 반응이 좋았다. 창업하려는 청년, 고시생, 대학생, 그냥 동네 청년 등이 다 섞여 서로를 신기하게 보기도 하는 재밌는 공간이 됐다.”

-교류 활성화가 중요한 까닭은.

“당시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게 청년 자살률, 고독사 등이다. 청년들이 모든 문제를 혼자 감당하다 보니 고립되지 않나 생각했다. 실패와 경험 부족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커뮤니티에 와 도와줄 사람을 찾고 같이 풀어 보는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공유기반의 확대는 청년 삶의 기반이나 커뮤니티 부재를 해결하는 첫 과정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현재는 위탁운영을 중단했는데.

“청년공유공간은 공공기관에서 만든 좋은 사례이고, 앞으로도 그런 사례가 더 많아질 거다. 무중력지대 대방동도 다른 기관이 이어받아 잘해나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플랫폼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기도 하고, 그다음 담론과 고민으로 넘어간 상태다. 지방자치단체 등이 조성한 청년공간에서 청년은 장소를 이용하고 채우는 주체들이다. 여전히 이 공간을 필요로 하는 세대들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다음 이행기 청년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공간 생산의 주체가 돼 보고 싶어 한다. 공동의 가게를 차려 자신만의 상품을 팔아 본다거나, 편집상점을 운영하는 등의 목표가 있다는 거다. 청년이 이용자를 넘어 성공한 운영자, 소유자가 되게 하려면 뭐가 필요할지 고민할 단계다. 안 쓰는 도시 공간을 청년에게 내주고, 그 안에 청년들이 활력을 불어넣게 해야 한다.”

-구체적 대안이 있나.

“스페이스 클라우드 서비스에 입점한 공간운영자(연습실, 스튜디오, 카페 등 공간을 제공하고 이용료를 받는 업체)가 7,000개의 팀인데 이들 중 60~65%가 20~30대다. 퇴사하거나 입사하지 않고 스스로 공간에서 뭔가를 만들어 내 보려는 이들이다. 문제는 이들 중 1년 안에 폐업하는 팀이 적지 않다. 원인을 들여다보니 대체로 자기 콘텐츠가 없는 경우,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부동산 비용이다. ‘스페이스 비즈’란 채널을 만들어 청년 공간 창업자들이 자기 콘텐츠 질을 높일 방안을 공유하고 있다.”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로컬임팩트라는 비영리 재단을 준비 중이다. 공익신탁법을 기반으로 유휴공간이 있는 기업, 건물주 등으로부터 이들 공간을 기부받고 기부금 영수증을 내줄 생각이다. 비어 있는 곳은 방치할수록 상권을 되살리기만 힘들어진다. 기부받은 동안 청년 등 작은 비즈니스 그룹에 이들 공간을 민간형 안심부동산 방식으로 내주고 여러 도전을 하도록 할 생각이다.”

-정책적 관심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청년들은 여러 공간이나 재원의 이용자, 대상자로만 정책이 만들어져 왔는데, 청년들이 내 공간에서 보다 생산적인 내 것을 만들어 내고자 할 때 이 수요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 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외국인들이 도쿄는 가고 서울엔 안 오는 이유가 독특한 상권, 지역색 없이 프랜차이즈만 넘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2030 창업자들에게 자기다운 공간을 조성할 감각은 넘친다. 이를 잘 육성하면 지역에도 활력이 생기고 그게 바로 도시재생으로 이어진다.”

글ㆍ사진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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