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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친밀감이라도 좋다... 폭탄주에 빠진 대한 '酒'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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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친밀감이라도 좋다... 폭탄주에 빠진 대한 '酒'국

입력
2015.01.0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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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성인 2명에 1명꼴로 마셔

폭탄주 종류로는 소맥이 많아

빨리 취하고 서먹서먹함 없애

직장 회식 등에서 자주 애용

독주보다는 숙취 현상 적지만

알코올 함량은 높아 과음 삼가야

회사원 정(23ㆍ여)씨는 최근 친구들과 송년 모임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은 일명 ‘소맥 폭탄주’를 10잔 넘게 마셨다. 정씨는 친구들과 만나면 자주 소맥 폭탄주를 습관처럼 마신다. 기분에 따라 카페인 함량이 높은 에너지 음료나 이온 음료를 섞어 마시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는 폭탄주가 널리 퍼져 있다. 국민 2명 가운데 1명이 폭탄주를 마신다는 통계도 나왔다.

폭탄주는 1900년대 초반 미국의 탄광, 벌목장, 부두 노동자의 음주문화에서 비롯됐다. 벌이가 시원찮은 노동자들이 값싸게 빨리 취하기 위해 술을 섞어 마시는 ‘보일러 메이커’(boiler maker)가 폭탄주 원조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도 바텐더가 맥주잔에 위스키 잔을 떨어뜨려 건네주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 노동자들이 즐기던 폭탄주 문화가 1980년대 법조계, 정계, 언론계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음주자 중 55.8%가 폭탄주 마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7~8월 전국 17개 시ㆍ도에 거주하는 만 15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음주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음주 경험자 가운데 55.8%가 폭탄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는 2012년 32.2%보다 70% 이상 늘어난 수치다.

폭탄주 경험자에게 마신 적이 있는 모든 폭탄주에 대해 조사한 결과, 소주와 맥주를 섞는 일명 ‘소맥’이 96.0%였고, 위스키와 맥주가 34.4%, 소주와 과실주가 2.6%, 맥주와 과실주가 1.4% 등의 순이었다. 폭탄주를 마시는 비율이 늘어난 것은 ‘소맥’을 회식 등 술자리에서 많이 마시기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식약처는 분석했다.

특히 카페인이 많이 들어 있는 ‘에너지 음료’와 술을 함께 섞어 마시는 에너지폭탄주 경험자는 2012년 1.7%에서 2013년 11.4%로 급증했다. 음주 중 에너지 음료를 마시는 비율로 2012년 6.2%에서 2013년 24.7%로 늘었다. 2012년에는 30~50대 등에서 에너지폭탄주를 마시는 사람이 없었지만 2013년에는 30대 14.2%, 40대 6.9%, 50대 4.4%, 60대 6.9%로 모든 연령대로 음주문화가 확산됐다.

우리 국민의 1회 평균 음주량은 맥주 1잔(200㎖)을 기준으로 남자는 6.5잔, 여자는 4.7잔을 마셔 국민들이 생각하는 적정 음주량(남자 4.9잔, 여자 3.8잔)과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저위험 음주량(남자 5.6잔, 여자 2.8잔)보다 많았다.

폭탄주는 다양한 사람이 만나는 낯선 자리에서 어색함을 녹이는 데 제격이고 빨리 취하지만 수분이 충분해 다음날 탈수현상에 의한 숙취는 적다는 긍정론도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폭탄주는 다양한 사람이 만나는 낯선 자리에서 어색함을 녹이는 데 제격이고 빨리 취하지만 수분이 충분해 다음날 탈수현상에 의한 숙취는 적다는 긍정론도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어색함 없애고 친해지는 데 제격”

왜 우리는 폭탄주를 즐겨 마실까?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신의 저서 ‘도시 심리학’(해냄 발행)에서 “폭탄주 문화는 친해야 하는 사명감과 친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 욕구 사이의 딜레마를 해소해주는 솔로몬의 지혜”라고 했다. 하 교수는 “다양한 사람이 만나는 낯선 자리에서 어색함을 녹이는 데 이만한 ‘돌격대’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이 친해지려면 대화를 많이 나누고 취향을 살피며 성격까지 맞춰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정공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칫 ‘함께할 사람이 못 된다’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일단 ‘우리는 친하다’는 최면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선 이런 정공법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하 교수는 지적한다.

하 교수는 이때 폭탄주가 필요하다고 했다. 같이 일하려면 경계심을 풀어야 한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통해 알고 있다. 그렇다고 친한 친구처럼 은밀한 얘기를 나누는 관계가 되고 싶지는 않다. 가까워졌다는 느낌과 개인의 정체성 유지라는 딜레마에 놓일 때 폭탄주는 편리하게 ‘가짜 친밀감’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노래방이 회식의 빠질 수 없는 장소로 여겨지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노래방에선 ‘우리끼리니까 괜찮다’는 인식 속에 철저히 망가질 수 있다. 좁은 장소에 한꺼번에 들어가 목이 쉬도록 노래 부르고 땀을 한바탕 흘리고 나면 ‘왠지 친해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빨리 흡수되는 폭탄주 숙취는 적어”

술 그것도 독주를 마신다면 폭탄주가 오히려 낫다는 주장도 있다. 신장내과 명의인 김성권 서울K내과 원장(전 서울대병원 교수)은 폭탄주를 추천한다. 김 원장은 “독한 술은 마시는 순간 위벽이 상해 흡수가 느리지만, 7~10도쯤 되는 술(폭탄주)은 흡수가 잘 된다”며 “폭탄주는 빨리 흡수되기 때문에 빨리 취하지만, 수분이 충분해 다음 날 탈수현상에 의한 숙취는 적다”고 했다.

인체에 들어온 알코올 10g을 처리하려면 물 100g이 필요하다. 알코올 도수 40도인 양주 한 잔(30㏄)에 든 알코올 양은 9.6g(30×0.4×0.8, 0.8은 에탄올 비중. ㏄나 ㎖ 등 부피로 표시된 알코올을 무게로 환산하므로 이를 제곱함. 물 비중이 1이므로 부피를 그대로 무게로 바꿀 수 있음), 양주잔에 든 물은 20.4g(30㏄-9.6g)이다. 알코올 9.6g을 처리하려면 물 96g이 필요하지만 양주 속의 물만으로는 75.6g(96-20.4) 부족한 셈이다.

18도짜리 소주 한 잔(50㏄)은 7.2g의 알코올, 42.8g의 물로 구성돼 29.2g(72-42.8)의 물이 부족하다. 알코올 도수 5%인 맥주 한 잔(300㏄) 알코올은 12g(300×0.05×0.8), 물은 288g으로 맥주는 물이 남는다. 맥주를 많이 마시면 자주 화장실에 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맥주 270㏄와 양주 30㏄를 섞은 폭탄주(300㏄)는 알코올 양이 21.6g, 물은 278.4g쯤 된다. 알코올 도수는 7%다. 알코올(21.6g)을 대사하는 데 필요한 물(216g)보다 63g이 남는다.

문제는 ‘양주+맥주’ 또는 ‘소주+맥주(소맥)’는 알코올 양이 적지 않다는 것. 양주 폭탄주 한 잔은 21.6g, 소맥은 17.2g의 알코올이 함유돼 있다. 따라서 피하기 힘든 술자리라면 맥주와 양주(소주)를 각각 반 잔(50%)씩만 섞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 잔씩 섞은 양주 폭탄주 알코올은 10.8g, 소맥은 8.6g이다.

이를 3잔 이내로 마시면, 수분 부족에 의한 숙취를 줄일 수 있다. 해장은 잠들기 전에 하는 것이 더 낫다. 김 원장은 “술마실 때 적절히 안주를 먹는 것이 저혈당 예방에 좋으며, 잠들기 전 꿀물 등으로 당분과 수분을 공급해 주는 것이 다음날 숙취를 줄여 준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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