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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노먼 볼로그(9월 12일)

입력
2017.09.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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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녹색 혁명을 선도한 미국 농학자 노먼 볼로그. worldfoodprize.org
1960년대 녹색 혁명을 선도한 미국 농학자 노먼 볼로그. worldfoodprize.org

인류 식량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과학자를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미국 농학자 노먼 볼로그(Norman Borlaug, 1914~2009)를 꼽을 것이다. 그는 50년대 멕시코에서 병해충에 강하고 수확량이 최대 4배에 이르는 ‘난쟁이 밀’ 등 여러 품종을 개발, 수억 명을 기아로부터 해방시킨 ‘녹색 혁명의 아버지’다. 9월 12일은 그의 기일이다.

미국 아이오와 주 소드(Saude) 출신인 그는 어려서부터 농사를 배우고 또 도우며 성장했다. 어떤 농장 풀은 더 푸르고 또 어디는 왜 시원찮은지 등 아무도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들도 그 무렵부터 쌓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공황기 남부의 굶주림도 체험했을 것이다. 미네소타대 임학과에 진학한 그는 식물병리학자 엘빈 스타크먼(Elvin Stakman)을 만나면서 전공을 바꿔 식물 병리학과 유전학으로 42년에 박사 학위를 땄다. 2차 대전 중 그는 듀퐁 사에 취직해 전쟁 물자 생산ㆍ개발 업무를 도왔다. 그리고 2년 뒤, 록펠러재단의 멕시코 농업프로그램 연구원이 됐다.

식량문제는 전후 세계의 숙제였다. 출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보건ㆍ위생의 진전으로 수명이 늘어났지만 식량 증산은 그 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멕시코, 인도 파키스탄 등이 대표적 국가였다. 멕시코에 도착한 직후 그는 아내에게 보낸 첫 편지에 황폐한 농지 등을 묘사하며 “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그는 실험실보다 소노란 사막과 중부 고원 농지의 뙤약볕 아래에 머문 시간이 더 길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배 등을 통해 특정 기후에 강한 품종, 병해충에 강한 품종 등을 개발했고, 2기작 품종을 만들어냈다. 난쟁이 밀은 엄청난 양의 이삭을 품고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을 수 있도록 튼튼한 줄기를 지닌 키 작은 품종이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63년 멕시코는 밀 수출국이 됐고, 파키스탄과 인도도 각각 68년과 74년 곡물 자급자족국가가 됐다. 그의 기술은 중국과 필리핀 등지로 전파돼 신품종 쌀 개발 등에 응용됐다. 70년 그는 과학자로서는 다시 없을 영예인 노벨평화상을 탔다.

근년에는 환경(농약ㆍ비료, 물 과다 소비, 품종 다양성 저하 등)과 사회경제적인 부담(소농 격감, 농촌 빈부차 확대 등)으로 득보다 실이 크다는 비판도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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